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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평설>
서정적 감응(感應)과 따뜻한 인식의 지평
-4인 시집『그리움은 희망이다』, 그 서정의 시학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김동명학회 회장)
1. 시적 상상력의 확장과 신비한 매혹
모름지기 자아의 변형에 의한 따뜻한 감성적 시학으로, 지극히 매혹(魅惑)적인 시적 상상력을 소유한 특정한 이들의 고뇌를 가슴 차오르도록 공감할 수 있는 내적 충만의 여지를 열어놓은 따뜻한 서정성이 합일된 시편의 해명은 영감의 비의를 해명하는 지극히 합목적적인 소중한 생산적 행위’이다. 이 점에 있어 “시의 기능은 세계의 슬픔과 조화시키는 것이다.”라는 하우스만(Alfred Edward Housman)의 시론에 친숙하게 근접한 4인의 시인들이 묶어낸 「4인 시집『그리움은 희망이다』, 그 서정의 시학」은 현실적 모자이크로 미적 퇴행을 거듭하는 답답한 한국 시단의 특유한 작금의 현상에서, 활력이 넘쳐나는 생명감으로 퇴색된 일상의 감동을 다시금 회복시키려는 힘겨운 행위로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다.
또 그렇게 세월이 흘러 최근에 우리 시단의 원로 격인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시인의 다섯 번째 공동시집『그리움은 희망이다』(문학과 사랑, 2023)가 출간되었다. 시집의 편집구성은 일체의 격식 없이 출생연대 순으로「조병기 시인 편, 허형만 시인 편, 임병호 시인 편, 정순영 시인 편」, 그리고 표4에 임애월 시인(『한국시학』편집주간)」의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이 우선시되는 작금의 우리 시대,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디지털 시대의 가벼운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묵직한 삶을 자연스럽게 고집하는 시편들에서는 따스하고 정감 있는 사람 냄새가 난다.”라는 담백한 시평과 함께 비교적 균형감각을 지닌 개인별 20편씩, 총 80편이 결(結) 고운 모직물의 직조로 치밀한 구성심리학의 모양새를 갖춘 일면이다.
오랜 날 평자 그 나름으로 ‘우리의 삶에서 특정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때로는 운명적임을 일깨워왔듯이’ 계간『한국시학』의 임병호 발행인과는『화홍시단』(1965)을 통해 맺은 연으로 60년 남짓한 시간대를 지나치면서 함께 겪은 문단 생활도 우연일 수 없다. 까닭에 시적 비평이나 해석에서 또 하나의 현저한 양상은 ‘새롭고 신선한 언어 감각’에 동질감의 시적 감동이 확산이 된다는 보편적 견해에 공감이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의도적인 실험 시나 낯설음을 지향하는 포스트모던한 시에서 때로는 장애가 된다. 여기서 표현과 기법의 신선함은 독자에게 후광효과(hallo effect)의 효용성을 불러내기에 언어결합의 배제가 무의미함은 거시적 관점에서 지켜볼 일이다.
그간에 지극히 현대적인 특이성을 시 의식으로 수용한 4인의 일체감은 마치 칼 지브란이 『예언자』에서 “그 길이 힘겹고 험난할지라도(p.583), 비록 그 날개 속에 숨겨진 칼이 상처를 입더라도(p.585)"와 같은 추이(推移)를 예감하여 이행시켰듯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공동시집에 수록된 시편 중 개인별 5편씩을 논의의 대상으로 선별하여, 다소 인상 비평에 치우칠 것이나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으로 미래가 암울한 사회현상을 관망하며 지극히 선하신 창조주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라는 일깨움의 맥락에서 4인의 빛나는「서정적 감응과 따뜻한 인식의 지평」을 조심스럽게 열어가기로 한다.
2. 행간의 여백 좁히기와 느림의 시학-조병기 시편
차제에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아니하고 함께 어우러진 대상물을 접합시켜 시 심리에 춘정(春情)을 자극적으로 충동하고 있음은 주지할 바다. 모처럼 “천상엔 별, 지상에는 꽃, 그리고 사람의 마음엔 시(詩)‘라는 일깨움처럼 생명의 봄이 바다와 달을 배경으로 지상에 동백꽃을 피워내는 시적 묘미로 황홀감에 만끽할밖에 없다. 이처럼 생명감이 가득 밀려오는 바다와 달을 원경으로 배치하여 대상의 미세한 움직임도 치밀하게 통합시킨 동작의 일관성은 시적 역량의 양상이다.
일단 조병기 시인의 시편의 틀 짜기로 꽃을 질료로 삼은 시편을 선별하여 그 중량감과 서정성의 미감에 접근하기로 한다. “꽃이 꽃에게 묻는다/너는 전생에 무엇이었느냐고/꽃이 꽃에게 대답한다/아마도 엄마였을 거라고(꽃이 꽃에게)”의 보기에서나 또는 ’벙긋이 뜨락에 내려 낮달 하나 품었으리라‘는 기대감에 가슴 졸이며 “울타리 기대서서/너울이는 환한 웃음//모시옷 물들여 입고/신행(新行)길을 떠나요(수국)”에서 꽃가지의 틈새로 하늘에 걸린 낮달 하나’의 조화는 몽환과 같은 환상의 조합이다.
까닭에『카프카와의 대화』에서 구스타프 야노흐가 “고향을 알기 위해서는 타향으로 떠나야 한다.”라는 그 역설만큼이나 그 자신은 더없이 시사(示唆)적이고 효용성을 지닌 감각으로 ‘꿈에라도 뵐 수 있었으면 먼 하늘 창가 환한 미소’에 의한 “하얀 꽃으로 피어날까/미움도 애정이라/강물에 흘려보내고/꽃이되어 오시려나(백합)”의 예시에서나 “청보리는 언제 익을까/접시꽃처럼 목 빠지게/어머니를 기다렸지만/어머니는 이팝나무가 되셨나 보다”에서 그 가난하여 ‘꿈보다 흰밥이 먹고 싶었던 유년 시절이 새삼 눈물겹다. 또 한편 우연의 일치일 것이나 “젊은 이름도 묻어버린/오촌 당숙은/하늬바람 억새꽃 머리칼 흩날리며/이 가을을 보내고 계실까(장사익)”을 나직하게 읊조리다 보면 놀랍게도 평자 그 나름의 「영원한 한국인의 소리-장사익의 소리판」에서 “자연의 소리 거슬리지 않은/진도의 소리와 口音/범패가 신명나게 조화된 소리판,/봄의 노래와 환희의 춤사위다.”가 새삼 입증될 따름이다. 그렇다. 시격(詩格)이 담백하여 감성마저 경건한 시인에게 이처럼 한 편의 시는 ‘꽃은 비에 젖어도 꽃의 향기는 비에 젖지 아니하듯’ 충직한 독자에게 일상의 감동을 회복시켜주기에 깨끗한 세상을 가꾸려는 본질적 의미가 확장되기에 그 존재감은 못내 명백하다.
3. 담백한 시격과 개아의 일상화-허형만 시편
또 한편 해체주의자인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책의 그늘은 깊고 넓기’에, 인간의 잠든 영혼마저 흔들어 깨우는 위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하였듯이, 비열한 냉소주의에 의한 무책임한 행위에서 빚어진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조국의 암울한 현상에서 허형만 시인의 시편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생명감이 빛난다. 차제에 차별성이 특이한 그 자신의 시편은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미래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우리가 인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베풀며 소외된 타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더 큰 꿈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음’을 지혜로운 삶의 잠언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그처럼 일관성을 지닌 그 자신의 시 의식은 마치 시선집 『따뜻한 그리움』에 맞물린 연계 층위로 ’미래를 지향한 밝은 꿈이 실현되지 않으면 불가능은 현실로 치환될 수 없기’에, “지상엔 눈발처럼 강풍에 흩날리는/한 생애 켜켜이 쌓인 시간들(폭설이 내린 뒤)”도 그렇거니와 “우주의 가장 부드러운/발걸음이 햇살에 빛나는/저 파동을 보아라.//너와 나의 관계도 그렇지 않은가.(관계)”의 그 당위성은 못내 진리와 자유, 그리고 화평을 수호할 정신작업의 종사자들이 최소한 자기성찰과 사고가능성(思考可能性)을 통해 삶의 일상에서 시대적 소임의 엄숙한 수행을 다독여주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차제에 상징적 표현의 수법을 위해 둥근 생명의 기호인 마침표(.)로 시적 감흥을 응축시키되 우주의 섭리에 조화롭게 결부되는 짜 맞춤의 섬세한 조각을 사실상 하나씩 분절되는 동작을 오버랩을 시키는 그만의 의중은 “형제요 자매요 꽃이요 별이니/위로와 평화의 불씨를 간직한/따뜻하고 포근한 바람입니다.(우리는 서로 적이 아닙니다)”의 보기나 “신선한 바람에 맑아진 눈빛 같은/또 하루의 빛나는 언어를 찾아 나서기 위해/사내는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신발 끈을 묶는 이유)”에서 새삼 확증될 것이나, 그 자신의 진정성을 최소한 여백의 틈새마저 음미하고 풀어낼 일이다.
또 한편 그 자신이 시의 행간에 걸려있는 ‘반짝 빛나는 햇살의 정서’를 절감케 하고 있음에 세심한 주의력 또한 기울여야 할 것이기에 “겨울, 한순간의/반짝 빛나는 햇살이여/허락하신다면/이 아침/성자를 보게 하소서.(허락하신다면)”라며 시의 정서적 표출에 문장의 부호 하나도 소홀하게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경계의 교시(敎示)는, 삶의 일상에서 ‘창섭 형!’하며 허물없이 친근감을 유지하는 서로 간의 인간관계만큼이나 감사하게도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는 현재성이다.
4. 시 심리의 변주와 절제된 서정성-임병호 시편
각론하고 불확실한 시간대에도 기억에 남겨두어야 할 것은 질서의 무너짐과 으깨어진 도덕성에서 비롯된 불감증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탯줄을 묻은 향리에서 평생을 몸담아온 임병호 시인은 시편을 논의하기에 앞서, 평자와 의기투합하여 대학 신입생인 1965년 봄『華虹詩壇』의 결성 또한 결코 우연일 수 없다. 특히 몇 년 전 평자가 임병호 시인의 시편인「안개를 열다」,「이별주의보」의 작품 평에서 '분노, 시기심, 울부짖음, 예정된 이별 등'이 개인적인 그림자의 투사(投射)로 일어나는 제 현상을, '맞잡았던 손 뒤돌아보고' 시적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미끄러짐의 시학적 접근을 시도하여 '눈물 적셔 입안에 밀어 넣어주는 초코파이가 뜨겁다' 긴장 뒤에 안도감을 안겨주는 그의 시적 특이성을 흥미롭게나마 지대한 관심사로 지적한 바 있다.
차제에 지극히 문명 비판적인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가늠하지 않더라도 “15층 1502호 사람인 줄 아는가./내 옆에 와서 앉는/비둘기는 더욱 인간적이다(인간적)”도 그렇거니와 혹여 ‘살아온 세월 뒤돌아보면 뉘우쳐지는 일 많지만’ “이제 남은 여정은/詩 곁에서 살다가/저쪽 세상으로/강물처럼 흘러가는 일이다.(詩 곁에서)”를 통해 애틋한 정감을 시적 질료로 비중 있게 다루면서도 잠재된 전의식(前意識)을 일깨워 ‘시 곁에 살다가 강물처럼 흘러가리라’라는 유지를 흘려내는 선문답 식의 시적 행위는 비장감이 묻어있다. 또 하나 여기서 잠시 묵언으로 관망할 것은 깊은 영혼의 틈새에서 묻어나는 가슴 찡한 삶의 그늘, 견고한 외로움 앞에서 섬세한 감정을 추스르고 절제하며 그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가운데 표제 시인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처럼/지금 살아 있다는 얘기 아니냐,/옳거니, 그리움은 희망이다.(그리움은 희망이다)”와 같이 절제된 서정성의 합리적 해법은 이채롭다.
일반적으로 ‘공간은 사회적 산물이다.’라는 기드슨 르페브르의 지적은 ‘생성된 공간’의 개념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현대인들의 존재론적 불안은 공간 상징이 특정한 시인의 정신적 생산물인 시의 형성과정에서 “아주 오랜 친구/서귀포 金龍吉 시인이/전화를 했다.//제주 바다를 건너온/목소리가/반세기 전처럼 청춘이다.(10년 삶)”에서도 확증될 것이나 평생의 지기로서 ‘죽음을 자주 거론하는 화자의 경계심’은 측은지심이다. 또 한순간 3년 전에야 평자가 55년 만에야 김용길 시인의 시비 「서귀포 인연 깊은 땅」 앞에서의 그 벅찬 감회는 못내 인상적이다. 이처럼 시적 응시와 자아의 변주는 합일의 공간을 상오 접목을 시킨 시인의 내면 인식과 합일의 감응이기에 그만의 시적 접근과 시작 행위는 더없이 유의미하다.
5. 자유로운 바람과 경이로운 영성(靈性)-정순영 시편
일단 논의의 초점은 다소 빗겨 가지만, 창조와 모방은 서로 간의 틈새에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 그 점은 마치 인간의 내면 심리에는 자연을 거부하거나 자연과 대립하는 창조의 정신을 지닌 동시에 자연을 모방하고 순응하는 모방 정신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평자와 정순영 시인과의 관계성은 서로 간 문단에서 작게나마 기여해 왔지만, 세월이 지난 탓이랄까? 현재 창간 35주년을 맞는 월간 『ᄒᆞᆫ맥문학』의 상임고문을 현재 두 사람이 담당하고 있다. 각론하고 비교적 ‘풀빛 서정성이 존재감으로 빛날뿐더러 푸른 식물성 언어를 즐겨 사용하는 정신작업의 종사자’인 그 자신이 모처럼 “골고다를 울리는 목소리는/‘지금’보다는/‘어디에’ 있고 싶으냐고/신새벽에 하얀 눈을 내리며 묻는 것이다.(첫눈)”에서 순결한 영혼의 상징을 직물 대상으로 삼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 놀랍게도 다소 부정적인 ‘nowhere’를 ‘지금(now), 여기(here)’라는 구도적 처리로 공감대를 끌어모으는 발상의 전환도 또 그렇지만, “가뿐하게/해맑아서//요단강 위 하늘이 열리고/영생의 날개옷을 휘감고 날아오르네.(갈릴리수양관에서는)”를 통해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그 자신이 천상의 층계를 오르는 순례자의 행보는 ‘핏빛 여명의 은혜를 믿음으로’ 더없이 경이롭다.
그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시편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부끄러운 죄의 옷을 벗고/가장 낮게 엎드려 하늘에 닿아/그 하늘빛으로 씻으면/티 하나 없는 핏빛 세마포 입으리니(귀향)” 또한 끝내 귀향의 한순간도 본향인 천국에 오르는 빛과 은총의 통로로 확정하는 순전(純全)한 믿음은 이처럼 절대적이다. 또 한편 “십자가 아래서 평온한 아내와/아플 때는 얄팍한 가슴이라도 서로 부비고/찬바람 속에서는 시린 볼을 비빈지 반백 년/이젠 요단강에 빠지면 뛰어들어 손잡고 함께 건너가리.(요단강)”에서도 다시금 명증되듯 절망의 상징인 죽음 앞에서도 순결한 영혼이 바람에 흰나비의 윤무처럼 현란한 도시공간의 햇살 너무 눈부셔 구원의 강을 건너는 기대감은 더없이 환열(歡悅)이고 절정이다.
특히 ‘사망은 끝이 아니라 영생을 향한 갈림길(통로)로 확신하기에 “감사하라/피 흘림의 제사로 얻은 생명은/인생이 죽어서/하나님 은혜로 새로 태어난 것임을(갈림길)”과 같이 그 자신의 경건한 신앙심은 단순히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준이 아니라, 곧 죽음은 창조주의 은총이고 축복이기에 그 자신의 시적 작위는 ‘다함 없는 감사의 찬송’으로 황홀한 정감을 충동적으로 안겨줄 따름이다.
6. 자의적 은폐(隱蔽)와 시적 원정(園庭)
모름지기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비정한 사회일지라도 정신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최소한 소외된 이웃인 타자에게 연민의 정을 거부할 때, 마침내 자신의 어두운 측면을 상대방에게 상호 투시하는 결과의 맞물림은 당연한 처사다. 비교적 시의 본질인 서정시의 구사(構思)가 지극히 어려운 시간대에 그나마 깨끗한 일탈의 정신에 순수서정의 대상인 자연을 그 자신의 시적 생명체로 투영시켜 예술적인 질료와 터치로 인해 변형시킨 생명 외경의 시적 형상화는 감동의 회복에 의한 감미로운 눈물과 천상의 층계를 오르는 고독한 순례자의 행보(行步)로 가늠된다.
일단 4인의 공동시집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된 대다수 시편에서 시적 감응을 불러 일깨워준 그만의 ‘육성과 느낌, 그리고 시의미의 차별성’은 밝음을 열망하는 긍정적 시각에서 동물적이고 금속성인 언어보다 푸른 식물성 언어가 사용되어 서정성의 미감이 한층 이채로운 점이다. 그렇다. ‘과거는 역사이며, 오늘은 선물이며, 내일은 꿈(Dream)이다.’라는 시간의 개념에서 진일보된 관념의 현재성을 소중하게 인식한 까닭에 서로 간 잇닿은 시간대를 ‘생명의 씨앗을 파종하는 농부의 보폭’을 매개로 삼아 결부된 관심은 지극히 매혹적이다. 특히 삶의 일순간 흔들리는 물상을 포착한 뒤에 놓치지 않고 ‘영혼을 관통하는 철저한 집념으로’ 불확실한 시간대에서 인간존재의 탐색을 위하여 불멸의 시혼을 일관되게 추구한 따뜻한 감성과 맑은 영성의 행위는 문제의식 없이 안일하게 현실에 안주(安住)하려는 경비한 시인에 견주어 향방이 부정확한 바람의 출구를 찾기 위해 힘겨운 현상 앞에 이 땅의 어느 시인보다 일치된 집념과 합의에 기인한 4인시 다섯 번째 시집의 간행은 못내 감사할 일이다.
결론적으로 시집에 수용된 특이한 조화로움을 구축한 특성 있는 결과물에 관한 ‘공간과 시각, 그리고 시적 기교와 시 정신’의 모색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정신적인 작업일뿐더러 갈등과 모호성 뒤에 또 하나 빚어진 신비성은 천상을 향한 생명의 언어이며 영혼의 은총이다. 모쪼록 사변성(思辨性)을 수락한 시편들은 일상의 감동을 회복시켜주기에 또다시 간행될 시집에 평자 그 나름의 한결같은 기대치라면, 작은 신의 대변자로서 적확하게 사물의 추이(推移)를 응시하되 서정성의 미적 확장’을 위한 영감의 반짝이는 편린(片鱗)과 어둠의 칙칙함을 말끔 씻겨낼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시대적 소임과 당당한 존재감을 지닌 온전하고도 끊임없는 역할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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