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여기는 독도의 플랫폼입니다 / 유택상
아직은 섬이어서 따개비만 가득합니다
달은 만월의 꿈을 기다리고 환하게 등뼈의 은비늘 벗겨내고 있습니다
수면 위로 생의 숨결을 더듬어가는 회오리
지상의 불빛 심연에 잠기면
언젠가 섬으 꼭대기에 올라 목놓아 부를 점 하나로 찍힌 별자리로,
세월의 음률 서러움 깔고 동해의 배경으로 자맥질하고 싶습니다
점과 점 사이 텅 빈 내부 사이로 파도를 끌어당기고
숨죽이며 밤새도록 깨어 있는 삭은 화석 풀어진 힘으로
침묵을 스크림하는 꽃으로 남고 싶습니다
물거품은 벼랑의 꽃처럼 묘화를 그려내고
파도는 고요하게 강렬하게
이곳 섬에서는 현의 미발굴된 음악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점을 지우고 섬을 지우면 발화되는 독도의 지도
지도를 태우고 색채화를 그려낸 고래
사그락거리는 심안 모서리 한 쪽 송곳 가시 침묵을 꿈꾸며
파도가 일렁이는 은빛 광채를 그리움으로 풀어
갈증의 덫에 모자란 물빛으로 바라보고 별똘별로 바다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밤이면 구름 한 조각도 물보라의 포물선도 인적이 끊어진 이끼의 돌벽
이제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자율기관으로 낡은 문패 대신 이슬을 먹고 자란
혈관의 아스피린으로 살며 불꽃이 되렵니다
섬을 깨우는 핏줄이여,
모태의 동굴 같은 태내의 나이테로 섬의 수면이 잔잔합니다
이곳은 출발과 귀환이 반복되고 되돌이표가 고동치는 새도 시어가는 접경입니다
운석의 꿈이 직물처럼 흐르는 피륙의 광장
독도는 아르페지오를 적어내는 곳입니다
창문이 없는 섬이
오늘은
생명을 잉태한 것을 늘 푸른 바다가 다독이고 있습니다
[최우수상] 그 섬, 빙점 어딘가에 / 최인희
북풍이 소란하던 밤, 빈 방은
바람 차가워 겨울을 마비시키고 살점을 파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시작되었죠
그 섬의 온도는 빙점이었어요, 어디론가
바닷물은 강물보다 굵고 은밀하게 건너갔습니다
메일이 도착했어요
알래스카와 그린란드를 다녀간 그녀의 심장은 한동안 뜨거워지지 않았대요
반을 잃어버린 그녀는
잃어버렸으므로 다시 반을 찾게 될 거라나요
그녀는 긴 날밤을 기다렸어요
질경이처럼 질긴 소리를 숨기며 두 손 모아 합장했어요
서쪽으로 가면 당신을 볼 수 있나요, 섬으로 가는 인편은 요
파도가 높아질 때마다 둘은 더욱 멀어졌습니다
동굴 속에 갇힌 어둠이 은밀한 처녀생식을 계속했어요
우기가 시작되던 날, 먼 바다에서는 피리 소리가 너물거리고
바다의ㅣ신음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서쪽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줄까요
신음도 익으면 음악이 된다는 것을 동쪽은 벌써 배우고 있었어요
세상 어느 구석이든 풀림의 실마리가 있어
적막이 다한 섬은 싱싱한 푸성귀로 살아난다지요
다만 초승달 흐르는
그 섬, 빙점 어딘가에 노란 땅채송화로 피어날 당신을 기다릴테죠
아침마다 동이 터 온다는 걸 알아요
[특선] 타이머 작동 중 / 이종근
- 독도경비대에게
1. 이월이 가면
심란한 겨울이 떠납니다
풍광이 스멀스멀 날리듯 반가운 이가 찾아듭니다
한산한 섬은 푸른 봄을 뒤적거립니다
이월을 이십팔일로 이월하고 나루터에서 삼일절 만세를 외치듯
한산한 섬은 푸른 바다를 선언합니다
2. 삼월이 오면
두 눈에 촛불을 켜고 지켜보겠습니다
누가 구호를 앞뒤로 부르짖는지
누가 만세를 좌우로 가로막는지
하루 이틀 사흘 밤낮 지내어도
더 잘 사는 섬은 집은 아닐 텐데
반가운 이는 대체 어디쯤 있을까
3. 세월이 가고
까마득히 잊히지 않을 나의 섬, 나의 집
섬의 둘레로 차지한 통통배, 갈매기, 바위, 등대, 바람과 구름, 흙과 풀들, 그리고 수많은 아우성, 한숨, 눈물, 분노
외한과 격랑,
아무 일 없었던 대한민국의 변혁 운동처럼
섬은
유폐의 기억이 될 겁니다
재깍재깍-
[특선] 독도에 닿는 법 / 김명숙
내 머리에는 뿔이 달렸어
헤엄치다 보면 나의 블랙홀에 먹잇감이 포획되곤 하지
하루가 무료해지면 지그시 눈을 감고 바닷물에 몸을 맡겨
파도에 이리 저리 밀리고 밀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독도에 이르러 눈을 뜨지
비행청소년은 괜히 생기는 게 아니야
이성을 억누르지 못할 때 비행은 시작되는 거지
그럴 때 설왕설래가 우후죽순으로 자라곤 해
나도 비행청소년이 되고 싶어
허튼소리 해대는 놈들을 이 뾰쪽한 뿔로 냅다 들이받고 싶어
나의 깊고도 둥그런 블랙홀에 빨아들여
몇 날 며칠을 되새김질 해가며 잘근잘근 씹어 먹고 싶어
하지만 영양가 없는 말들로 내장을 채우고 싶진 않아
코도 풀지 않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저들
종국엔 세종대왕도 저들의 왕이라고 우겨댈게 뻔해
차라리 그 검고 흉악한 속내를 갈매기 먹이로나 던져줄래
비수 같이 푸른 독도의 바닷물로 괭이갈매기의 부리를 닦게 할래.
[특선] 섬 / 박금선
혼자 있다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더불어 있어도 고립된 섬이라고
울먹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
뜻이 모이는 곳에 고달픔은
큰 파도 등을 타고 굽이굽이
넘어 서는 걸 보았습니다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떠 있어도
결코 혼자가 아닌 섬
어디에 있어도
어디를 가든
마음 속 바다에 닻을 내리는 일
소통이라는 파장으로 연결되는 순간
가슴이 차고 넘치는 흥분으로
늘 출렁거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랜 세월의 물결들이 스쳐
몸음 또 깎이고 또 깎였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뿌리박은 의연한 모습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의미와
얼마나 큰 뜻을 품고 있는지
잊지 말라고
하늘이 푸르게 내려와
꽃을 피우고 새들을 깃들 게 하였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흰 바다와 더불어 그림처럼 떠오르는 섬
핏줄 속에 흐르는 뜨거움으로
깊은 바다 속 해류처럼
갖가지 염원이 흘러
먼먼 육지로 실려 온 편지
우리 사랑이 견고해 질수록
대양으로 나가는 눈부신 상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