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두부밥
황유원
어느 날 눈을 감고 사후 세계에 갔다
사후 세계에서 너무 배가 고파 들어간 밥집 메뉴판에
마파두부밥이 있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는 호기롭게 마파두부밥을 시켰다
사후 세계이니 매운 것도 괜찮겠지
얼굴이 얽죽얽죽 얽은 할머니가
벌건 마파두부밥이 담긴 접시를 두 손으로 들고
조심조심 걸어와 내 앞에 내려놓고는
다시 조심조심 걸어 주방으로 돌아갔다
사후 세계인데도 저렇게 느리다니
나는 저 노파가 산 사람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쨌거나 마파두부밥은 왠지 하나도 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것은 매웠고
너무 매워서 땀과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사후 세계인데 땀이라니 눈물이라니
비라니
어느새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얼굴이 얽죽얽죽 얽은 할머니는
마차 사고로 잃은 남편을 그리며 꺼이꺼이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소리 없이
문가에서 울고 있었다
사후 세계에서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다니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지려는 입을 급히 틀어막고
마파두부밥을 얼른 한술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늙어서 더는 일할 수 없게 된 소를
도축하여 잘게 썰어 만든 소고기가
밥알 사이사이에 박혀 있었다
사후 세계에서 먹는 마파두부밥 맛은
아무래도 사후 세계 맛이 났고
거기 든 모든 것은 죽은 것이었고
나도 어쩌면 이 가게를 나서다가
저 자욱한 빗길을 돌진해 오는 마차에 치여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파는 내가 죽은 채로 찾아오면
나를 기억하고는 다시 조용히
벌건 마파두부밥을 내어줄 테지
그러면 나는 또 너무 매워서
땀과 눈물을 비 오듯 흘리다가
어느덧 비 오는 문가에 서서 죽은 나를 떠올리며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내
아내를 쳐다보고는 화들짝 놀라
그동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말겠지
ㅡ계간 《문학과 사회》(2024,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