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베트남에서는 명분 없는 살상이 25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 본토에서는 도시마다 인종 간의 갈등과 긴장이 폭발 직전이었고, 세상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은 히피 문화 속으로 숨어들었다. 인류의 종말을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한 흑인 노인이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What a wonderful world!”
“초록 나무와 빨간 장미를 보았네 / 나와 너를 위해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 나는 생각하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밝고 은혜로운 낮과 어둡고 거룩한 밤을 보았네. / 나는 생각하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루이스 암스트롱이었다. 그는 친구들이 악수를 나누며 건네는 "잘 지내지?"라는 평범한 인사 속에 사실은 "너를 사랑해"라는 고백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자라나 자신이 평생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미래를 기대했다.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그가 바라본 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지난 화요일, 산마리노 친구들과 함께 타가이타이 바투나우 산행길에 올랐다. 새벽 3시 30분, 짙은 어둠 속에서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앞사람의 발걸음을 묵묵히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산 중턱에 다다라 있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눈앞의 세상이 환하게 열렸다. 짙은 산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금빛으로 물든 계곡이 드러났고, 저 멀리 바다까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너른 평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발밑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 계곡 사이를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을 마주할 때마다 감동으로 발걸음이 자꾸만 멈추어 섰다. 인간의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여전히 이토록 아름답게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 역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전쟁과 불의로 온 세상이 어지럽고,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무참히 파괴되며, 신세계를 약속하는 첨단 기술이 도리어 인류를 위협하는 시대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여전히 붙들고 계시는 한, 주님의 세계는 언제나 아름답다.
돌아보면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에 살면서도 늘 불안과 우울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루이스 암스트롱처럼 희망과 생명의 소식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쁜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이들이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끝내 승리를 주실 것을 선포하는 자들이다. 그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지으신 광활한 세계를 마음에 품고, 그 온전한 아름다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세계는 죄악으로 얼룩졌을지라도, 주님이 다스리시는 세계는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는 지금 어느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