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 안의 이스르엘은?
호세아 1:1-5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3.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 말엽부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B.C. 722년까지 약 40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이 기간은 왕이 6명(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이나 바뀌는 정치와 경제와 종교적으로 매우 혼탁한 시기였습니다.
참고로 호세아의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예수님과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הֹושֵׁעַ)'라는 이름은 히브리 음역으로도 '호세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구원자(salvation)"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יְהֹושֻׁעַ)와 같은 말입니다. 원래 여호수아의 이름도 '호세아'였으나 모세가 '여호수아'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이는 '구원자'라는 뜻에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며 '여호와'가 추가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예수아(יֵשׁוּעַ)'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스 2:2, 느 7:39). 이 이름들은 모두 히브리어이며, 헬라어로는 예수를 '이에수스(Ίησους)', 라틴어로는 '예수스(Iesus)', 라틴어의 'I'는 영어로 'J'로 발음이 되므로 Jesus가 된 것입니다.
호세아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아내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계획하실 때에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갖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데려와서 끊임없이 호세아로부터 떠나서 또다시 음란을 행하는 아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호세아 선지자가 느끼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우실 때에 경험을 통해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괴로운 결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비록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자기의 길로 갈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호세아서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이스라엘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 하나님께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취하여"라는 말은 동거하라는 말이 아니라 결혼하라는 말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거룩을 더럽힐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을 실재상황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한 처녀 때에는 음란하지 않았지만, 결혼 후에 음란해졌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을 보면, 정결한 처녀가 아닌 여자의 결혼은 그녀의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특별히 구별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법이 강했습니다.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찌니 과부나 이혼 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찌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레 21:13-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음란한 가정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음란한 여자(아내)는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말하며, 음란한 자식은 이스라엘 사람들 개개인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은 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에 요나처럼 하나님께 계속해서 대들고 도망가는 선지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지자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따라서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적인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세상적인 지식과 윤리 때문에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싸우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합리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이치에 맞는 말"을 하며, "윤리적"이며 "도덕적"이며 "누가 들어도 타당한" 말을 하여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신의 의가 대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려면 머리에 쥐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어려운 것입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북이스라엘이 강대국을 이룬 여로보암 2세때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를 보면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대로, 강대국이 되는 나라는 그것이 어느 나라이건 항상 그것과 비례하여 타락도 함께 하늘을 찔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2세는 아합 왕가를 멸망시킨 예후의 3대 후손입니다. 그런데 예후는 열심히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모두 전멸시켰으나,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웠던 금송아지는 없애지 않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대 후에는 왕위에 서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왕하 10:30). 그래서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인 스가랴가 왕위에 오른지 6개월만에 살룸이 모반하여 그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합니다. 즉 스가랴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를 죽인 살룸도 한 달만에 므나헴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므나헴이 10년간 사마리아에서 왕이 됩니다. 므나헴은 너무나 잔인한 사람이어서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칼로 가르는 일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므나헴 때에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으나 2년만에 베가가 브가히야를 죽이고 왕이 됩니다. 그러나 베가 역시 앞의 왕들처럼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며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20년만에 호세아(선지자가 아님)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호세아왕을 끝으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일이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아내를 통해 낳은 첫째 아들의 이름인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의 뜻 안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르엘(예즈레엘 יִזְרְעֶאל)'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God sows)' 즉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와는 좀 다릅니다. 그들은 씨를 한 줌 손에 움켜잡고 뿌리기 때문에 씨들이 옥토, 돌밭, 가시밭, 길가 등으로 여기 저기 날아가서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듯 흩어 뿌리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흩어버리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여 창기처럼 음란히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기 위해 흩어 뿌리는 것은 흩어짐과 동시에 또한 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징계를 통해 흩으심과 동시에 또한 그들을 회복시키실 계획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만든 것을 섬기며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말은 그들 자신이 그들의 주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들이 그들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섬기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된 피조물"이 오히려 자신들의 번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순간은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첫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르엘의 피"라는 것은 예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르엘에서 아합의 가문을 멸절시켰던 것을 말합니다. 즉 엘리야의 예언이 있은 뒤, 엘리사의 명령을 받아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아합왕가를 모두 죽였던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합 왕가를 전멸시키셨던 이유는 우상숭배의 죄가 극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가를 멸절시켰던 그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후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알을 섬기던 아합 왕가를 죽였지만, 그 역시 우상숭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합을 죽였던 그 이스르엘에서의 피를 예후에게도 갚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없애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그 당시에 활은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활을 꺾는다는 것은 군사력을 없애버린다는 말입니다. 군사력을 없앤다는 것은 곧 나라의 멸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4절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폐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사실 평야지대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지대이며 곡창지대이고,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따라서 전쟁시에는 이곳이 아군에게는 방어요새가 되지만 적군에게는 꼭 차지해야하는 교두보(橋頭堡, bridgehead)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평야지대)의 중앙에는 둥근 바위산이 있는데 이 산을 '다볼산' 또는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산에서 여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의 야빈왕을 물리쳤으며, 기드온의 3백용사와 미디안 군대 13만5천명이 싸웠던 모레산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므깃도(Megiddo, מְגִדּוֹן)'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계시록에서 헬라어(그리스어)로 '아마겟돈(Amageddon, Ἁρμαγεδών)'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이 반복되면서 전쟁터의 상징으로 되어 왔으며, 이곳이 계시록에서 종말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아마겟돈'이라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예후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갖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수행했던 그 자리에서 그 임무를 수행했던 자의 집을 심판 하신다고 하십니다. 정말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즉 윤리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지식과 상식과 지혜와 경험 등 모든 견고한 진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내려놓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앉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르엘 골짜기의 다볼산에 올라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여자 사사 드보라를 우리의 상식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당시에 남자가 아닌 여자가 사사가 되어 재판권을 갖고 모든 백성들을 재판하며 선지자 노릇까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더구나 바락이라는 남자는, 드보라라는 여자가 함께 가지 않으면 전쟁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자의 강함과 남자의 무기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장소가 바로 이스르엘이었습니다. 즉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함께 일어나는 장소이며 동시에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우리의 모든 견고한 진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갖고있는 견고한 진들이 바로 우리의 우상들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칼질하며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 맞는 것만 골라서 지키고, 내가 행하기 싫거나 힘든 것은 어떻게든 합리화나 정당화시켜서 싸워서라도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들이 바로 내 속에 있는 '자아'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자아'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한,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속에서 자기부인을 하지 못하므로 성경 말씀을 대할 때마다 끝없는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호세아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주십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는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순종한 뒤에 더욱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 교만함으로 인해 순종했던 그 자리에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자아를 철저히 부인해야 하며 우리의 의로움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쓰레기와 같은 넝마"와 같다고 이사야서 64장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죽지 못하고 살아서 고개를 쳐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사랑의 주님 안에서 깊은 묵상가운데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받아 아직까지 내려놓지 못한 것들을 하나 하나 내려놓는 작업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라는 우상을 내려놓지 않으면, 축복의 자리가 심판의 자리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려놓는 작업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내 안의 이스르엘'이 무엇인지 가르쳐달라고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분명히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진정으로 회개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역사가 오늘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호세아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끔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보시며 징계를 하시지만, 징계하신 그곳에 새로운 씨앗을 심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면에 우상숭배자 아합가를 멸절시켰던 축복의 장소가 멸절시킨 자를 끊어버리는 저주의 장소가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성경을 보고 알면 알수록 제가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제 생각과 너무나 다른 분이며, 저의 제한된 아이큐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알고있는 성경 상식으로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명령을 내리시면 안 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분명히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런 여자를 아내로 삼지 말라고 하셔놓고, 어떻게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그런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 정도로 한계에 부딪혀서 제 상식과 지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또한 제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저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은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특히 저보다 약하고 어리고 부족한 사람이 제가 모르는 것을 말해주는 것을 마음과 귀를 닫고 아예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이해할만한 도량과 이해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쓰레기 넝마와 같은 저의 의로움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히 교만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른도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고 어른이 있거나 말거나 제가 하고싶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제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제 주장을 내세우곤 했기 때문에 어른이 제 눈에 들어왔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으로 판단하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지도 못했던 죄인입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나마 오늘에라도 제가 이렇게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 속에 있는 '이스르엘'은 어떤 것들인지 주여, 가르쳐주셔서 생각나는대로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께서 흩으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심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더이상 분노하게 하며 살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간해서 제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하오니 저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제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따라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저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