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작은 거북이가 뒤집혔다.
주변의 거북이들은 모두 검은데, 배를 드러내고 누운 이 거북이만 하얗다. 백일점이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누워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배영 하기 위함도, 사람처럼 편안히 드러누운 상태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위기다.
주변의 동료 거북이들이 하나둘 그 주변으로 모여오기 시작한다.
하던 일을 뒤로하고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위기 상태라는 것을 안 것이다.
몰려온 거북이들 때문에 뒤집힌 거북이의 배가 더욱 하얗게 보인다.
거북이들이 뒤집힌 거북이를 에워싸고 지탱하는 사이,
몇 마리는 그 거북이 밑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뒤집혔던 거북이가 손바닥 뒤집듯 다시 뒤집혔다.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거북이들은 이내 흩어지기 시작한다.
위기에 처했던 거북이도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마치 잠시 파문이 일었다가 사라진 호수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전 그 물속에서는 동료 거북이들이 한마음으로 모여와
절망 가운데 빠진 한 거북이의 생명을 구원한 일이 있었다.
그 아름다운 본능에,
아니 그 아름다운 본능을 거북이 안에 담아주신 분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잠언 24:11)
강도 만난 이웃을 두고 그냥 지나쳐가는 이들을 주님은 보셨다.
자신을 안다는 자들이었다.
예레미야도 탄식한다.
“공중의 학도 자기 철을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이주해 올 때를 지키는데
내 백성인 너희는 나 여호와의 요구를 알지 못하고 있다.”
(예레미야 8:7)
선악이나 도덕의 문제를 넘어, 자신 안에 있는 본능을 억제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일이 있다.
뒤집힌 마음이 먼저 구원을 얻는 것이다
사람의 궁핍을 보고도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은 단순한 행동의 문제가 아니다.
성경은 그 마음의 상태를 묻는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요한일서 3:17)
오늘 내 주변에도 뒤집힌 채 누워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뒤집혀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은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뒤집힌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 곁으로 선뜻 다가갈 수 있기를.
나 역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사람임을 기억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