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알았다가 그 길에서 떠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고, 어떤 이는 세상의 신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어떤 이는 눈앞의 유혹을 따라가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길을 잃는다. 잠언 7장의 미련한 소년이 그랬다. 그의 길은 스올로 향하고 있었고, 잠언은 거기서 끝난다. 돌아오는 장면은 없다.
그러나 복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가 있는데 누구든지 그 사람을 돌아서게 하면 그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너희는 알라."(약 5:19–20)
이 말씀은 "너희 중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졌다. 떠난 사람은 낯선 이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던 형제다. 그를 돌아오게 하는 일도 혼자 짊어지는 사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지는 책임이다.
한 사람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일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한 영혼의 방향을 바꾸어 파멸로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물론 죄를 덮으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 은혜의 자리로 한 사람을 인도하는 도구일 뿐이다. 회개 또한 우리의 설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다.
성경에는 이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 바나바다. 마가 요한은 첫 선교 여행 도중에 일행을 떠나 돌아가 버렸다. 바울은 그를 다시 데려가기를 거부했지만 바나바는 포기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행 15:37–39). 세월이 흘러 갇힌 몸이 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쓴다. "너는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떠났던 사람이 유익한 일꾼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돌아오게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착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다림과 기도가 있어야 하고, 거절당하면서도 다시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하며, 나도 넘어질 수 있음을 아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흘러야 한다. 사람을 바꾸려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마음이다. 그분은 구원하기에 능하신 분이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떠난 사람 곁에 누군가를 보내신다. 기도하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꼭 필요한 한마디를 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한 영혼을 다시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누군가 떠났다고 끝이라고 말하지 말자. 넘어졌다고 버리지 말자. 아직 돌아올 길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 길 위에 우리를 세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