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문 사태와 종교 탄압
중국은 올해 두 가지 중요한 기념일이 겹쳐 있다. 하나는 5·4운동 100주년이고, 다른 하나는 천안문 사건 30주년이다. 5·4운동은 한국의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중국 근대화운동의 출발점이고 천안문 사건도 일정 부문 5·4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1989년 북경의 천안문 광장 시위(중국에서는 6·4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30주년을 맞아 세계 도처에서 잇따른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해 4월 15일을 시작으로 학생들과 시위자들은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북경 천안문 광장에 모였다.
유사한 시위들이 중국 수백개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시위 가담한 학생수를 약 100만 명 정도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소비에트연방과 공산정권들을 무너뜨리는 유사한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어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시위들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 중국공산당 리더인 덩사오핑(1904-1997)은 시위대에 대해 무력 진압을 명령했다.
군대가 시위대에게 발사 명령을 개시한 1989년 6월 3~4일에 얼마나 많은 시위대가 사망했는지 역사가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정부는 약 1만 명의 학생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중국공산당은 경찰과 병사 23명을 비롯해 몇 백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서구 학자들은 천안문 시위 원인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덩사오핑의 경제 개혁이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고 자본주의 경제가 중국의 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낳았다. 그러나 만연된 부패는 부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켰고 어떤 민주화도 뒤따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식인들과 학생들 특히 억압 속에서 불길같이 확장일로에 있던 가정교회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인권은 신이 주신 권리 즉 신권(神權)임을 자각하고 시위에 나선 것이다. 마침 소련과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도 한 몫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의 일반적 설명들은 경제 요인과 민주주의 운동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으나 천안문 사태와 종교 사이의 중대한 연결고리가 있었다고 인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중국 정부가 인정한 삼자운동(three self Movement) 참여 교회 외에 가정교회들은 온갖 핍박과 규제 속에서도 퍼져나가 마침내 천안문 사태 당시 시위대로 참가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가정교회 소속 기독교인들이었고 천안문 사태 이후 가정교회는 부흥에 큰 힘을 얻어 성장했다.
가정교회 사역자들을 배출하는 신학교가 도처에 세워졌고 그 당시 필자의 졸저도 중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신학교 교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덩샤오핑의 개혁들은 문화혁명 이후 이뤄졌으며 이 개혁운동에 희망을 걸고 봤지만 천안문 사태를 잔혹하게 억압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중국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는 환멸을 느끼고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기독교 신앙 귀의자가 증가했다.
홍콩의 Jonathan Chaw 박사는 대륙의 1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통계 발표를 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막측하여 한국처럼 중국도 민주화와 인권회복뿐 아니라 복음박해국에서 복음선교국이 되기를 기도한다.
출처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466
천안문 대학살 그리고 30년 후의 종교 박해
마르코 레스핀티(Marco Respinti)
6월 4일 워싱턴 D.C. 미 의회의사당 웨스트론에서 열린 천안문 대학살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재단이 주최했다. 비터 윈터는 여러 공동 주최자 중 한 주체로 참가했고,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성향의 연사가 20여 개의 인권단체를 대표해 연설했다. 몇몇 미국 정치인들도 군중을 향해 연설했고, 낸시 펠로시(D-CA) 하원의장도 예고 없이 행사에 찾아왔다. 본문은 필자가 추모 집회에서 연설한 내용의 전문이다.
내외 귀빈 여러분, 유혈 사태를 기리는 중요한 행사에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연설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30년 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권을 쥐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어린 학생이 대부분이었던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대학살 하라 명령했습니다. 서구 소식통에 따르면 만여 명이 무참히 살해됐습니다.
오늘날 이 잔인무도한 중국 공산주의 정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있고, 수억 명의 사람들을 가혹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박탈하고, 인권을 짓밟으며, 종교적 신념을 박해하고 있죠. 중국 공산당은 신학 교리에 대해 논하지도 않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정권은 모든 종교를 똑같이 박해합니다. 우리 비터 윈터는 이 광범위한 권리 침해를 매일 온라인상에 8개 언어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산당의 종교 박해와 천안문 광장에서의 대학살 사이에는 밀접한 연계성이 있습니다.
천안문 사태는 일반적으로 가정교회 부흥에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받아들여진다. 천안문 사태를 잔혹하게 억압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중국 공산당은 가망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알아보고 중국에 보고하도록 자국 최고의 학자들을 동유럽에 파견했다. 그들은 몇몇 동유럽 국가들에서 공산당에 맞서도록 대중을 동원한 가장 중요한 유일한 요인이 종교였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 결과들이 중앙 공산당 학교에서 모든 간부를 위한 필독서가 되었다고 전했다. 간단히 말해, 결국 21세기 중국을 이끌어가게 될 새로운 세대의 중공 간부들은 소비에트 연방과 그 위성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주된 이유가 종교이며, 종교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중국이 동일한 운명을 뒤따르는 것을 피하는 데 필수적임을 학습하면서 성장했다.
현 공산당 총서기이자 국가 주석인 시진핑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중국의 종교 탄압은 그의 통치 아래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2018년 2월 1일 발효된 신종교사무조례는 지난 수십 년 중 가장 제한적인 성격을 띱니다. 시진핑은 종교가 엄격히 통제되지 않을 경우, 공산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천안문의 교훈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미국이라는 이 나라는 완전히 상반된 사상 위에 건립되었습니다. 자유는 곧 사람들의 심장이며, 종교적 자유는 미 헌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는 시민의 첫 정치적 권리입니다. 미국은 신앙의 권리, 공개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오늘 수정헌법 제1조를 바꿔 말해보겠습니다. “중국은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언론의 자유, 또는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천안문 사태를 기억합시다!
https://ko.bitterwinter.org/tiananmen-and-the-persecution-of-religion-30-years-af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