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는 효과적인 사람의 출발점을 “나는 무엇을 공헌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찾았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내가 있음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묻는 것이다. 조직에서든 공동체에서든 자신의 능력보다 그 능력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 ‘Room’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하고 싶다. “함을 통해 Room이 생긴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서 위로가 일어나고, 회복이 시작되고, 용기가 생긴다. 때로는 길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랬다.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 상처를 싸매고 자신의 짐승에 태웠으며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았다. 예수께서는 그가 그렇게 한 이유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단순히 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오랜 장벽을 넘어 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었다. 한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공헌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곁에 있어주는 것,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어려서 부모의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한 형제가 있다. 그런데 그는 동생들과 친구들을 품고, 함께 있어주며, 자신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부모까지 품는다. 이제 사람들이 그에게 가면 위로를 얻고, 힘을 얻으며, 다시 용기를 낸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을 품는 그릇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편 128:1)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
성경에서 복은 단순히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드러커가 “무엇을 공헌할 것인가?”라고 물었다면, 성경은 그 질문을 더 깊게 만든다.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될 것인가?”
공헌은 자기소모가 아니다. 그러나 희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내어주셨다. 그리스도인의 공헌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생명을 사랑으로 흘려보내는 자기 내어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을 넓히신다. 더 많이 품도록, 더 깊이 사랑하도록, 더 오래 기다리도록, 더 넓게 섬기도록.
공헌은 내가 누군가의 삶에 무엇을 더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 사람에게 일하실 Room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작은 공간 하나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수 있다. 하나님 사이즈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