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긍휼의 수여자(granter) 하나님
호세아 1:6-7
6.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의 별명은 "사랑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고멜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받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으로 그들을 고치시고 용서하시며 긍휼히 여기시는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외쳤던 것입니다. 호세아는, 끊임없이 죄악을 향해 달려가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그의 아내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처럼 호소력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던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이 매우 번영하여 부와 사치와 자기만족과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외롭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를 비롯하여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아 이름을 이스르엘(יִזְרְעֶא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둘째 아이로 딸을 낳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로 루하마( לֹא רֻחָמָה)'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로 루하마'는 '긍휼(은총,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루하마(רֻחָמָה)'는 '긍휼히 여기다', '깊이 사랑하다'라는 동사이며, '로(לֹא)'는 '아니다(no, not, none)라는 의미의 부사입니다. 이 두 낱말이 합쳐져서 '로 루하마'라는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둘째 딸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을 더이상 긍휼히 여기거나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더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고 그 나라를 폐하겠다고 하시면서, 남 유다를 향해서는 긍휼히 여겨서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합니다.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립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겔 33:13-20)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앞의 말씀을 언급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하나님은 이처럼 악인이라고 무조건 죽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가 그 길에서 회개하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자비하고 긍휼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4)
악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죽으라고 말을 듣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이제는 더이상 참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듯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그들의 행위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시며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 기준을 갖고 거기에 맞추어서 선과 악을 판단합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인간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선과 악을 구별하여 하나님까지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상태를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모순되는 것 같은 구절들을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뜻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것이 모순이 아니라 정말로 짝이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 이외의 어떠한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세상에서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의인도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우리의 죄를 깨달을 뿐이며, 율법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선생' 즉 '가정교사'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어느 곳에서는 우리의 행위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9-10)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또 다른 곳에서는 행위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우리가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7-19)
이것은 우리의 행위로 구원이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 구원을 받은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그들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선한 열매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선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매순간 감사와 기쁨과 평안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인의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밖으로 나와서 악한 열매를 맺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하심이 임하므로 환난과 곤고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평생 자기가 원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좇아다니지만 그것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것의 종노릇만 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6-9)
인간은 항상 다음의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않는 사람 (2) 참고 선(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과 불의(세상)를 좇아 악(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 그런데 이는 선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선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열심히 말씀을 듣는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영생을 소유한 자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영생을 소유한 자라면 율법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행함으로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행위로 증명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즉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의인이라는 것을 삶 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그런데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은 선과 악의 기준을 성경에 두지 않고, 세상의 윤리와 지식에 둡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의 가치관으로 하나님까지 판단하며 불공평하다고 심히 교만한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과 악의 기준은 오직 성경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를 따른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을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이십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우상숭배와 음란한 생활을 하고있는 이들의 행위를 본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사망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그것들을 보지도 못하도록 들어가는 순간에 모두 없애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라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그런데 선하신 하나님을 닮아서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라고 구원하셨는데, 악한 열매만 맺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공평한 것이며 불의를 행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시거나 불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더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고 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그 말씀은 선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므로 결코 악을 행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획일화' 또는 '평등'과 같이 모든 것이 똑같은 것을 공평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주로 살라고 하십니다. 공산주의는 우리가 당연히 따르면 안되지만, 민주주의도 무조건 따를 수 없는 이유는 다수에 의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한 일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평등'이라는 말이 없고 '공평'이라는 말만 있는 것입니다. '평등'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 물들어있는 우리는 세상의 지식인 견고한 진을 머리에 새긴 채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다보니 하나님의 공평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과 맞지 않기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며, 거기에서 하나님까지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는 경거망동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상에서는 '평등'을 외치며 하나님과 반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공평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도 사회에 나가서 평등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평등을 외치신 적이 없습니다.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위치로 올려주신 것이 아니라, 원래 에덴동산에서의 모습인 남자를 돕는 베필로 즉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신 것입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신 것이지 남녀 평등을 만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천국과 회개에 대해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가르치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또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종과 상전의 관계를 잘 지키며 권위에 순종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성경은 노조를 구성하여 권위에 도전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그러므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역하는 북 이스라엘을 향해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며, 다윗과 약속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남쪽 유다는 긍휼을 베풀어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시는 것에 대해 피조물인 우리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며 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왕상 21:21, 27-29)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며 또한 긍휼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심는대로 거둔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에는 심는대로 거두게 되지만,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심은대로 다 거둔다면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악을 밭갈아서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으며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죄인들입니다(호 1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뿌린 악을 다 거두게 하지 않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엇이 불공평하다고, 무엇이 원망스럽다고 감히 입을 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로마서 9장을 보면 우리가 누구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그릇과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 9:18-23)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의를 심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을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민주주의의 '평등'이라는 가치관이 교육되어 생활화 된 우리에게 있어서 '평등'이라는 말을 버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공평하다'는 것조차 '평등'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평은 평등한 것도 포함하고 있지만, 평등한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린 아이에게 남자 어른이 들 수 있는 똑같은 짐을 들고 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공평할까요? 아닙니다. 그것이 평등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공평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공평하다'라는 말을 '평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특히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감히 입을 열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밥그릇도 만드시고 컵도 만드시는데, 컵이 왜 자기를 밥그릇으로 만들지 않았냐고 불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을 먼저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가당치 않은 말이지만, 우리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며 긍휼을 거두어가기도 하신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생각과 언행을 조심하며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계속해서 버리고 또 버리는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즉 우리의 자아를 말씀 앞에서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과감히 무릎을 꿇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히 주님 앞에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이 너무나 많은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었던 저를 지금도 사랑하셔서 주께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에 어찌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세상의 지식과 세상의 관습에 물들어서 성경과 반대로 살아왔음을 느낍니다.
저는 그것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성경을 읽고 판단했습니다.
성경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판단했어야 하는데 저는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감히 제 상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큰 죄를 저질렀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리고 이제라도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직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감히 인정하며 이제부터는 오직 성경 말씀대로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하오니 제 속에 있는 세상적인 지식과 가치관 등을 모두 다 빼내어 주옵소서.
무엇이 세상적인 것인지, 무엇이 성경적인 것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사오니 주여, 가르쳐주옵소서.
그래서 정말로 주님 말씀대로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쁨이 되며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으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가운데 거하고 싶습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로서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여 선한 열매를 맺으므로 저를 통하여 주께서만 영광받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