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6일 나무날
모닝콜이 울린다.
우앙~ 더 자고싶다.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못 느꼈던 피곤함.
두뇌 에너지를 너무 소진해서 그런 모양.
이젠 좀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이 이번 주 마지막 제니스 밥상이다.
마지막까지 온 정성을!
출근(?)길에 텃밭에 들렀다.
원래 오늘 반찬은 시금치 나물이었다.
작은별 시금치를 시현 편에 받는 게 원래 시나리오.
But, 시현님께서 어제 외가에서 주무시는 바람에 펑크.
그 사실은 어제 알게 되었다.
작은별은 아침 일찍 마륜정까지 오셔서,
곰돌이 차편으로 보내주시겠단다.
그러지 마시라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고 했다.
이젠 배짱이 좀 생겼나?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러던 중 어제 들른 스컹크 집에
절친 오이 농부 병문이 형이란 분이 오셨는데,
마침 올가을 첫 오이라며 한가득 주고 가셨다.
그걸 삼남매가 애들 반찬 해 주라고 다 준 것이다.
그래서 시금치 나물이 오이 무침이 되었다.
텃밭에서 무 6개와 쪽파를 뽑았다.
자급자족 느낌 살짝. 기분 묘하게 좋다.
오늘은 8학년과 밥상 수업하는 날.
어제의 7학년보다 한결 연륜이 느껴진다.
재민인 날 보니 어제 까르보나라가 또 생각나는지
입덧하기 직전 표정이다(라고 내가 느꼈다).
찬이가 그런다.
까르보나라... 맛은 있었는데 더는 못 먹겠더라고.
참고로 찬이는 어제 2회 리필까지 해서 먹었다.
애들한테 그랬다.
왜 고급 레스토랑 가면 새 모이만큼 주는지 아느냐고.
양 많이 주면 그땐 좋은데, 담엔 또 안 간다고.
거기만 생각하면 김치 생각이 나기 때문이라고.
그걸 아는 내가 어젠 왜 많이 못 먹여 가슴 아파 했으까잉~ㅎ
오늘 아침 잘 드셨냐니까 네! 한다.
그런데 빵이 모자랐단다.
늘 모자란단다.
쨈 한 병도 깨끗이 비워져있다.
쨈도 모자랐단다.
걸음했던 태언맘 신혜진과 은하수가
든든한 8학년을 보더니 그런다.
"오늘은 어른 도우미 없어도 되겠네~"
그러라고 했다.
이따 밥모심하러나 오라고.
우거지 유부국 & 오이무침 팀을
가위바위보로 나눈다.
역시나 노련미가 있다.
큰 손 초은이가 오이무침 양념장을 맡았다.
젓장을 간도 안 보고 팍팍 넣고선 쿨하게 한 마디.
"짜다"
영광이 재민이가 간을 보더니 아주 죽을 맛이다.
"야아~~ 너무 짜!!!"
나도 맛을 봤다. 헉! 심히 짜다.
그래도 초은인 표정도 안 변한다.
은성인 짝다리 짚고 오이를 썰고,
찬이는 무청을 삶는데
굵은 부분부터 먼저 넣는 요령도 안다.
(내가 감탄하니 하다보니 그냥 이렇게 된건데요? 한다)
도익인 요리책 보고
된장, 들기름, 마늘, 새우가루로
맛깔난 국 양념장을 만들고,
재민인 귀찮을 법도 한데
싫은 내색 없이 항아리에서 고추장을 혼자 퍼 온다.
영광인 청양고추 송송 썰어놓고선
계속 이거 언제 넣느냐고 백 번은 묻는다.
예림인 능숙하다.
팽이버섯 좀 다듬어줘 하면 어느새 완성.
데치지도 않은 유부 한 개만 먹어보면 안되냐고 조르기도.
그때 밖에서 웅성웅성.
앗! 주미가 돌아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주미가 공양간으로 달려온다.
정말 이산가족 상봉처럼 한참을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
흑진주처럼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더 예쁘다.
반가워 주미야!! 보고싶었어.
주미의 사촌언니이자 은서의 동생인 서영이도 왔다.
초은인 그새 뭘 어떻게 했는지
완성된 오이무침 맛을 보니 맛나다.
짜지 않다. 오히려 약간 싱겁다.
도대체 뭘 한 거야?
소금 약간을 더해 버무리고,
항아리 뚜껑에 소복이 담는다.
마지막 통깨로 마무리하니 그럴싸.
"초은아, 맛있다!"
"네"
"........ (뻘쭘)"
양념장에 우거지와 양파를 넣고 조물조물.
멸치 육수에 넣고 15분간 푸욱 끓이는 동안
밥은 뜸이 잘 들고 있다.
11시 40분.
잠시 나왔다.
효안이가 아파 다하지 방에 누워있다길래
보러갔는데 없어서 그냥 나오다 신난다를 만났다.
"이모님~ 이제 여유가 좀 생기셨나봐요. 이 시간에 어슬렁거리고~"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네. ㅋㅋ
이제 드디어
아이들이 무지 신기해했던
데쳐서 꼭 짠 유부를 넣을 시간!
아이들이 또 모여든다.
500g짜리 두 봉지인데
내가 보기에 많아 보인다.
내가 우선 반 봉지만 넣자고 했다.
아이들이 입을 모아 그런다.
"다 넣어도 될 것 같은데요."
안 믿는다.
니들이 몰라서 그래.
유부가 얼마나 부는지 알아?
양보하여 일단 3분의 2만 넣는다.
커다란 들통 위로 유부가 넘실넘실.
그런데도 애들은 계속 중얼중얼.
"다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다 넣어요!"
에잇, 모르겠다. 전량 투입!
마지막으로 대파와 청양고추 넣고 마무리.
구수하면서도 얼큰한 국물맛이다.
유부를 전량 넣은 건 백번 잘 한 일이란 걸
첫 아이가 국 뜰때 이미 깨달았다.
아그들아, 너희들이 옳았다!
강화도팀들도 오시고,
하늘친구방 페인팅 작업을 위해 은서맘도 오셨다.
좋다. 멀리서 오신 분들에게 밥을 대접할 수 있어서.
민정맘도 오랜만에 함께 했다.
예승이 반가운 합격 소식을 전해 준 소리샘도.
(또 자기 까르보나라는 어딨냐며...)
무지개, 은하수, 푸른솔....
"오늘 밥상은 우리 8학년이 차렸어요!"
여기저기서 박수.
아이들과 함께 차린 밥상이라 나도 좋았다.
고맙고 이쁘고.
나도 오늘은 맛있게 편안한 맘으로 밥모심.
.
.
.
소성에게 저녁 메뉴 '만두국' 설명.
오늘도 잘 할 자신있어 보인다.
어제 무 생채도
텃밭에서 직접 뽑아다 무쳐먹은 아이들이니 뭐..
만둣국 육수만 내 놓고 갈까하는데
댕댕이가 들어온다.
혼자 막 무슨 일을 한다.
뭐 도와줄까 했더니 그제서야
잔치 때 쓸 그릇을 씻어달라고 한다.
같이 하자고 미리 말하지 했더니
한 주 동안 힘들었을 것 같아 미안해서 말 안 했단다.
이그....
감자가 도와주셔서 한결집에서 가마솥도 옮겨왔다.
운동장에선 엠프 테스트 노래로 내 꿈이 걷는다~~
잔치 분위기가 슬슬 난다.
푸른솔, 함박꽃, 태언맘도 왔다.
강화도 오늘이께서 혹시 새참 없냐 하신다.
미안했다. 미리 챙기지 못했다.
서둘러 김치전을 부쳤다.
함박꽃과 태언맘은
몽피의 주문으로 연포탕을 끓이고,
푸른솔은 또(!!) 마늘을 까신다.
두더지가 오셔서 댕댕이에게
서로살림 모임 꼭두쇠를 점지하시고,
댕댕이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살림 쪽은 김계수 선생님이 맡으셨다.
공양간으로 고기가 배달됐다.
태연이 아빠께서 잔치 때 드시라고 보내주신 것.
진료 땜에 직접 못 오셔서 고기만 보내신다고.
정성스런 편지도 함께 보내셨던가 보다.
고기를 굽고 있는데 누가 내 허리를 뒤에서 꼬옥 안는다.
민들레다.
태연이 아빠 편지 읽고 가슴이 찡했다며 눈물 글썽.
"태연 아빠,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죠?"
육수만 내놓고 가려던 걸음이 자꾸만 늦어져
결국 아이들이 끓여준 만두국까지 먹게 되었다.
진짜 제법이다.
내일 아침은 녹두죽에서 누룽지로.
녹두는 털었는데 아직 안 골랐나 보다.
그래, 내일은 간단히 누룽지 먹자.
메뉴 바뀐 걸 아직 모르는 남현,
밥상 차림표 보더니
"녹두죽에 넣을 찹쌀 불려놓을까요?" 한다.
나보다 낫다.
보리밥이 손을 끌고 나와 선물이라며
노랗게 떠오른 보름달을 보여준다.
맛있게 보인다. 히~!
나오는데 강화팀들이
하우스에 불을 켜고 야근이다.
오늘, 예찬, 지민, 연서 그리고 몽피님 고마워요.
저녁 드시고 하세요!
사랑어린 공양간은,
우리 모두의 공양간이라고 한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라고 한다.
그 공양간에서 나흘 동안 잘 놀았다.
내일은 잔치 준비차 밥상팀들은
아침 10시에 모이기로 했다.
"내일부터 밥상 식구들이 고생하겠죠^^
서로 힘을 보태가며 즐겁게 하시게요. 고마운 맘이에요."
댕댕이 문자다.
낼 봅시다!
첫댓글 "사랑의공양간" ^^
달밝은밤..고마운마음가득~^^♥
국이 완전 맛있었다던데요^^
오늘은 졸지 않고 마무리하셨네^^
아마도 붉은 달. 빛. 때문!
고마워요, 제니스~
오랜만에 카페에서 제니스 글 읽는 재미가 넘~ 좋았어요.
너무나 사랑스러운 제니스
제니스가 종종거린 한 주 공양간이 얼마나 반짝반짝였는지 모르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