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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살림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 정신을 팔린 것도,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의 온전히 집중을 한 상태 였다고도 말 하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음식을 하는 주방과, 밥을 먹는 교실을 넘나드는 문 턱으로 넘어가려는 중 이었다. 문 턱 옆에는 대용량 온수통에 보리차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길을 지나가려면 내 종아리 정도까지 오는 팽팽한 온수통의 전선줄을 넘어다녀야 했다. 다닐 때 위험 할 수 있으니 보통 살림준비와 식사 준비가 완전히 끝난 후 뒷정리를 할 때 마지막에 한다. 그런데 오늘은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나 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그 전선줄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한 발은 넘어와서 땅을 밣고 있는데, 또 다른 발은 허공에서 전선에 발이 걸려 빠져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건 보통 넘어질 때 내가 순간이동을 한 것 처럼 넘어지겠다! 하는 순간, 바로 넘어져 있는 나를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발이 걸리면서 내 의식에서는 넘어질 것 같다는 것을 알았고 또 몸으로도 느꼈다. 분명 위험을 감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순간 중심이 흔들려 몸이 앞으로 넘어지게 되었다. 몸이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있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보온통을 향했다. 그 보온통도 나 처럼 엎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25L 정도의 물들이 폭포수 마냥 쏟아져 내렸다. 세상이 아주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 온수통이 된것 마냥, 내 안에 있는 것을 속 쉬원하게 비워낸 기분이었다. 내가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이 몸이 넘어갔다. 정말 어떤 이유에서 인지 몸에 중심이 흔들렸고 몸이 어떤 힘으로 인해 앞으로 갔다. 이 상황에 운명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해서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운명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내던져짐이었다.
나는 나의 해방감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내가 큰 일을 저질러 놓고 입꼬리가 올라가는게 정상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넘어지는 그 순간 교차 했던 그 해방감이, 그 속 시원한 느낌은 너무나도 자명하였다. 그리고 자명했던 경험을 불확신으로 만드는 나에게 마치 믿음을 주듯 데미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삶 속에 정형화 된 어떤 개념들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 할 수 있어.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 진실이고, 올바른 것이지만, 그것들을 세상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도 볼 수 있지. 그러면 대채로 훨씬 나은 뜻을 갖게 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한가지 깨달음이 감지 되었다. 그것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그것을 보다 자유롭게, 달리 볼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나 자신이 한 순간 싱클레어가 되었다.
나에게도 많은 두 세계가 존재한다. 선과 악, 밝은세계와 어두운 세계, 그리고 옳고 그른 것, 잘 한다는 것과 못 한다는 것. 보다 자유롭게, 보다 더 깊고 넓게 보지 못하고. 반쪽짜리 세계속에서 놀아났다. 그런데 나의 많은 두 세계들 중, 하나의 세계가 자유를 얻게 되었다. 속 시원하고 해방 되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기분. 나는 나의 실수에 대한 자책과 채찍질이 심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잘한 일은 칭찬을 받고, 못한 일에는 혼남과 사과를 한다. 그렇기에 실수를 하면 더욱 겁을 먹고 움추러든다. 그 두려움은 두 세계에게 나를 지배 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 또한 그렇고, 그랬다. 물론 삼무곡을 만나 잘 한것, 못한것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두 세계속에 살구나를 뒤늦게 안 후에야 아, 내게는 아직 판단이 있구나. 아직도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마주 하지 못하구나 하고 나중에서야 알아챌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경험 속에서 온전히 두 세계 그 너머로 간 듯한 기분이었다. 그냥 그 상황에, 그 순간에 나를 온전히 내맡긴 느낌. 그곳에는 잠깐이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나를 떠미니 그냥 순응해서 들어가는게 아니라, 데미안의 말대로 나만의 길을 간다는 보다 더 새롭고 자유로운 무엇이었다. 그때 피스토리우스가 격하게 외쳤다.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속에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가지고 있지만, 그 세계가 자기 자신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네. 우리 마음 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거지. 그들이 바깥에 있는 것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의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쉬워, 우리의 길은 어렵고. 하지만 우리 함께 가보세 ” 더 이상 어떤 실수로 나를 탓하지 않게 되었다. 사건을 사건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마주해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내 세계를 확장하고 새롭게 했다.
나에게 또 다른 사건 하나가 있었다. 이번 일도 살림팀을 하며 일어났다. 나와 같이 몸살림교실에서 배우고 있는 현이는 몸살림팀에 들어 온지 얼마 안됐다. 현이가 들어온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을 때 까지는 그래도 처음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도와주었다. 그리고 들어온지 1달 반이 지나고 두달이 다 되가는 지금의 나는. 우월감과 잘난척으로 내 또래들을 다소 어린 아이들로 보는 한 시절의 싱클레어가 되어있었다. 같이 살림팀을 하며 현이에게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바쁜 와중에 느릿느릿 하게 걷고 있고,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앉아 있고, 할 건 많은데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있고. 화가 나고 답답해서 괜히 미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현이에게 답답하다는 마음이 든 이후 부터 ‘이럴 때는 저렇게 해야지. 좀 집중해봐. 이걸 아직도 모르면 어떻게해. 다음 부터는 좀 잘해봐 좀’ 살림팀 일과가 끝나면 거의 대부분 이런 상황이었다. 내가 현이에게 이런식으로 말을 하면서도 현이에게 화와 답답함을 푸는 것만 같고, 꼰대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 떳떳하지 않으니 살림팀 안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뒤에서 못살게 굴었다.
싱클레어가 말했다. “우리 마음속을 이끌어가는 물결이 사랑으로부터 멀어져가려 함을 갑자기 알아차렸을 때, 그곳에서는 친구이자 스승을 거부하는 생각 하나하나가 독침으로 우리 자신의 심장을 찌르게 돼. 하지만 분명 그를 통해 신이 너에게 말 할 거야.”
평소와 같이 살림팀이 끝나서 현이와 이야기를 하던 중 이었다. 내 일방적인 속사포 같은 말이 끝나면 현이 너는 나한테 무슨 할말 없냐고 물었다. 그럼 현이는 항상 없다고 알겠다고만 말을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현이가 솔직히 할말 있다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누나 나는 솔직히 조금 버겁고 힘들어. 내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 너무 빨라서 못 따라잡겠어. 조금만 내 속도를 이해해주면 안될까? 그리고 누나가 이렇게 나한테 말하는 거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아. 누나 꼭 선생질 하는 거 같아.” 현이의 말은 나의 양심을 마구찔렀다. 현이는 내게 답답하고 귀찮고 어린 아이 같은 존재였지만 언젠가 알고 있었다. 내가 현이에게 배울게 있어서 만났다는 것을. 싱클레어가 말했다. “그렇기에 나에게 보내진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지? 답답하고 귀찮고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현이의 존재가 아니라 너의 작은 두 세계 뿐이며 동시에 나의 세계를 깨주는 사람, 가르침을 줄 사람 인거야.” 그렇게 현이 입으로 부터 내 안의 사랑이 나에게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야 훤하게 보인다. 내가 또 나의 작은 눈으로 나의 스승을 어떻게 보았는지, 반쪽 짜리 뿐인 두 세계에 내가 누구를 끼워 맞추려 했는지, 또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했는지 말이다. 한 사람의 세상을 존중하지 못했으며, 동시에 내 안의 내 세상을 부정하고 무시한거와 다름없었다. 나는 현이를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하며 보았다. ‘저 친구와 살림팀을 할 때는 안그랬는데, 이 친구는 되게 잘하는데 현이는 되게 못하네.’ 지금 존재 하지 않은 기억을 붙잡으며 현이를 내 반쪽짜리 세계에 끼워 넣으려 했던 것이다.
데미안이 말했다.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 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걸 잊지마.” 그래 그것은 사랑이었다. 덕분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현이가 한번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살림팀일이 너무 일 처럼 느껴지고 즐겁지가 않다고 말이다. 나는 그때 이번 학기 주제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니까 너가 그 물음을 가지고 해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살림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 즉 사랑을 하는 경험하는 곳인데 나는 현이를 죽여가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었다. 나 또한 답답하다고 생각한 현이를 단 한번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마주하지 않았음을 말이다.
데미안이 말한 말을 이제야 알겠다. 사랑이었다. 단 한순간도 현이를 사랑한 적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내 세상을 사랑하지 못했으며 이 우주를 온 세상을 존중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배우는 학생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게 어디있는가. 스승은 배우는 학생에게만 존재 할 뿐, 내가 스승이 된다는 것은 월권이었다. 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나는 현이에게 그동안 했던 행동들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인정했다. 내가 학생이 아니었음을, 선생질을 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사랑할지 생각했다.
데미안이 말했다. “그걸 알았으니, 그것을 이제 행해야지.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살 때에만 가치있어” 그때 부터 나는 현이와 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동안의 대화는 나의 일방적인 혼냄이었으니 말이다. 5년 정도를 봤는데 서로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주말에 산책을 하러 나가며 서로를 알아가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했다. 살림팀안에서도 내가 현이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 물음을 가지며 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물음과 마음 자체로도 힘이 있던 것 같다. 현이는 달라진 것 없었다. 여전히 그대로 였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계가 달라지니 마음이 편안했다. 신기하게도 저절로 내가 사는 세계는 두 세계가 공존했지만 하나인, 그 너머인 사랑이었다. 모든게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속에서 현이를 향해서 잘한다는 말이 들렸다. 그냥 현이는 현이대로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이 되었다. 비교가 없으니, 두 세계가 없으니 지금 이 순간만 존재했다. 사랑만이 존재했다. 또 다른 세게에서 살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였다. 또 다른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세계,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뿐이었다.
데미안을 읽으며 그 주인공들과 사건들이 나와 연결 되어 있음을, 결코 다르지 않고 같은 곳에 속해 있다는 영혼의 떨림을 느꼈다. 나에게도 내 인생에서 흥미로운 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한, 내가 내디딘 걸음들 뿐이다. 어떤 새로운 것이 나에게 닥쳤는지, 무엇이 나를 앞으로 몰아 갔는지, 나를 찢어 냈는지에 대한 것 뿐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당신들과 나는 각자의 세계, 즉 떨어져 있는 두 세계가 아닌 그 너머의 세계 속에서 같이 살아 숨 쉬었고 교감 했으며 같이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하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