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종주1
“왜 화대종주를 하려고 하지?”
5월 5~7일 연휴 기간에 별 계획 없는 내게 아들이 지리산 화대종주를 제의해 왔다.
아무 망설임 없이 바로 승낙을 했다. 특별히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소원하는 일도 아니었다.
남편과 나 아들 사위 네 사람이 함께 종주하기로 결정됐다. 사위까지 합세하니 누구보다 아들이 신났다.
5월 4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만의 단비인가. 짧게 그칠 줄 알았던 비는 5, 6일 내내 내린다고 했다. 급기야 5일 구례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지리산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됨을 접했다. 이어 ‘지리산 탐방로 전면 통제, 대피소 이용 불가능’이란 문자 통보를 받았다.
화엄사 아래 펜션에 모인 우리 가족 5명(딸도 함께 함)은 내일 산행해 대한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했다. 아니 놓을 수가 없었다.
밤비 내리는 구례에서 딸 결혼 후 처음으로 우리 다섯은 한 방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가족의 따스함과 뿌듯함, 행복감이 충만한 밤이었다.
다음 날 우리의 기대와 달리 비는 계속 내리고 지리산 입산 통제도 풀리지 않았다.
결국 비로 인해 나의 1차 화대종주는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 화대종주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아주 세세하게 준비해 온 아들의 수고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우린 올가을 추석 연휴를 기약하며 안타까움을 달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엄마! 5월 마지막 주 석가탄일 연휴인데 어디 가세요?” “아니~”
화대종주를 다시 시도해보자는 아들의 제안이었다. 처음 제의 때완 다른 엄마의 시원찮은 대답과 약간 주저하는 아빠의 태도에 아들은 자기 혼자라도 종주하겠단다. 아들의 단호함에 거절할 수 없는 엄빠, 아들의 심리전에 말려든 느낌?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화대종주 경험이 있는 남편이기에 아들 혼자만의 화대종주가 심히 마음 쓰였던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종주 날짜는 5월 26~28일.
휴가를 낼 수 없는 사위는 아쉽게도 못 가게 됐다.
아들은 또 한 번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펜션 예약, 이미 매진된 대피소에 대기 예약하기, 종주에 필요한 각자 준비물 목록 간추려 알림, 심지어 엄빠의 구례행 버스와 화대종주 완주시 돌아갈 차편까지 치밀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나갔다. 간간이 엄빠의 건강까지 체크하며 염려를 놓지 않는 아들의 섬세한 사랑은 영육을 살찌게 하는 보약이다.
3일간 총 48km를 걸어야 한다.
‘무릎은 괜찮을까? 잠자리는? 샤워는? 화장실은.....’
무엇보다 나이든 내가 짐덩이가 되면 어쩌지?’ 처음 결심했던 때와는 달리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부담감이 커져 갔다.
3년 전 한 겨울에 화대종주를 했던 남편과 아들의 경험담과 종주기행문에서 종주의 험난함을 읽었기에 화대종주가 기대와 설렘만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엄마와 함께하는 종주라서 더 세심하게 신경 쓰는 아들의 정성에 누가 될까 염려가 컸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어느새 천왕봉에 닿아 있겠지.’
5월 25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미리 준비해 둔 반찬, 옷가지, 필요한 물품들을 체크해 가며 배낭을 꾸렸다. 여러 일정을 바쁘게 마친 남편도 재빠르게 짐을 챙겨 17:15분 발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정말 화대종주를 하러 가는구나’ 어려운 시험지를 막 받기 전의 심정 같았다. 이젠 뒤로 물러설 수 없다. 비도 전혀 오지 않을 것이다. 심호흡이 나왔다. 착잡한 심정이 됐다. 광주를 벗어난 버스가 곡성 즈음에 이르자 섬진강 물줄기를 만들어 낸 지리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다. 오늘따라 지리산이 무시무시하게 큰 산으로 보였다. 저 크고 깊은 산을 종주할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났다. 내가 왜 생각지도 않은 화대종주를 한다고 했을까?
허나 5월의 지리산은 신록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구례터미널에 19:00 도착. 택시를 타고 화엄사 부근 펜션에 도착했다. 20여 일 만에 다시 찾은 펜션은 어느새 주인이 바뀌었다. 저번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저녁을 짓는 동안 19:15분에 구례역에 도착한 아들이 택시를 타고 펜션에 나타났다. 제 몸체만한 배낭을 짊어진 채. 어마무시한 아들의 배낭도 지리산만큼 무서웠다. 지리산에서 한 달 살이라도 하려나? 저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서 산더미같이 크지? (맥주 좋아하는 아들, 500mm 맥주캔을 16개 입수. 등산 내내 아들을 제일 힘들게 한 주범. 술 욕심, 애주가인 아빠를 닮았네)
저녁상을 차렸다.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은 엄마가 책임지기로 했다.
“완전 집밥이네요.” “내일부터 산행하려면 잘 먹어 둬야지.” 밑반찬 몇 가지와 소고기로스, 상추가 푸짐해 보였나 보다.
최소한의 짐거리를 종용한 남편, 아들의 요구를 최대한 실천하고자 애썼는데도...
엄마는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 엄마손 반찬 한 가지라도 먹이고파 주섬주섬 짐덩이를 만들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 함에도 꼬리를 무는 얘기들로 밤 11시를 넘겼다. 지리산의 초승달이 아까워 우리 셋은 잠깐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산이 깊은 만큼 고요가 깊다.
“왜 화대종주를 하려고 하지?” 별 목적 없이 화대종주를 앞둔 내게 물었다.
3일간의 화대종주가 내게 답을 주리라.
첫댓글 무조건 부럽습니다
흥미진진 다음 이야기 기다립니다. 청춘시절,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간 적은 있는데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없어요.계곡에서 논 기억들만.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끝나지않은 이야기~ 흥미진진
다음 이야기가 무지 궁금하네요~^^
취원님!
화대종주가무엇인지궁금했었습니다. 이제야알았습니다. 화엄사에서대원사까지..
전국산악인들이직접찾이드는인기가많은곳이라고하드군요.
참으로용기가대단하고감개무량합니다. 화대종주가 저에게답을줄것을기대합니다.
취원님!
장하십니다. 저는조용하고아득한섬에서
통발5개로장어와문어와돌게들과함께놀고있습니다. 죄송스럽습니다만문어와갑오징어들은현지에서소비하고있습니다.
취원님!
현지에서소비하시지만잡아서드릴께요
한번오세요.
다음를기대하겠습니다.
화대종주 다녀오심에
감탄스러움과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 마음~~^^♡
와~대단하십니다.
생각에 머물지 않고 늘 행동으로 옮기시는 잔잔한듯한 추진력 부럽습니다.~♡
한자로는 지이산이지만 지리산이라고 읽는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왔다고해요.
산새는 유순하다고하나 결코 쉽지않은 고행길이기도하지요.
남편과 아들이 동행한 지리산길.
그저 부럽습니다.
읽는 내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네요^^
뒤늦게 이제서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만 읽기 아깝다는 생각. 부럽습니다!
용기와 화기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