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부재판을 아십니까?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최초증언 기자회견
1991년 9월 18일
정신대 신고 전화 개설(서울)
1991년 10월 19일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가
부산 지역에 ‘정신대
신고 전화’(당시 명칭) 개설
*1991년 10월부터 12월까지,
부산 신고 전화로 8명이
신고 (그 중 4명이 관부 재판 참여)
1992년 5월 29일
변호사 한국 방문,
이후 3회에 걸쳐
김문숙 회장과 함께
피해자 청취조사
(야마자키 요시오,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
이박성 재일 교포 변호사)
1992년 11월 14일
변호사에게 소송 위임장 전달
1992년 12월 23일
관부 재판 원고단 일본으로 출국
1992년 12월 25일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 고소장 제출
1993년 9월 6일 ~ 1997년 9월 29일
총 20회 구두변론 진행
1998년 4월 27일 판결
판결문 요지
본 건은 주로 소위 종군위안부
혹은 조선인 여자근로정신대원이었던
원고들이 피고국에 대해서 전후 보상으로
국회 및 UN 총회에서 공식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종군위안부 제도는 철저한 여성차별,
민족차별로, 여성의 인격과
존엄을 근본적으로 침해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으로
기본적 인권의 침해로 보인다.
그 중 피고국 국회의원은
종군 위안부들이 전시 중에
겪은 고통에 대해서 전후
그 피해 회복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고 1995년 8월의
관방장관 담화 이후
그 의무가 배상입법을 해야 하는
헌법상의 의무로
구체화되었는데도
그 입법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위안부였던
원고들에게 손해를
끼쳤으므로 피고국은
위자료로서 각 30만 엔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근로정신대원인
원고들에게는 그 피해를
경시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입법의무가 없어서
위자료 지불의 의미가 없다.
또 피고국에는 공식사죄의
의무까지는 없다.
[부산 종군위안부 •
여자 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사건]
1998년 4월 27일,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원고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에
각각 30만엔씩 모두
90만엔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피고인 정부
측에 명령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청구에 대한 요청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근로정신대 원고인 7명의
청구에 대한 소송은 기각되었다.
1심 일부 승소판결 이후
재판부는 경질됐고
일본 정부는 즉각 항소했다.
이후 5년에 걸친 항소,
상고 끝에 2003년
최고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판결이 뒤집혔다.
그리고 2017년 4월 4일,
관부 재판에 참여했던
마지막 원고 이순덕
할머니가 사망했다.
이 영화는 이 관부 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감독과 공동감독),
간신,
내 아내의 모든것 등을 감독한
민규동 감독이 감독한 영화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다 제가 좋아하는
도시인 부산이 배경이지만. .
웬지 이 영화는 보면 울거 같네요.
동영상허스토리, 영화가좋다영화가좋다(180616), 소문의시작, 허스토리 감사합니다. 구독부탁드려요.www.youtube.com
△KBS영화가 좋다에서 소개된 "허스토리"요약.
실제 이야기.
1991년 10월 19일,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가
부산 지역에 ‘정신대 신고 전화
’(당시 명칭)를 개설했고
1991년 10월부터 12월까지,
부산 신고 전화로 8명이
신고했으며 그 중 4명이
관부 재판에 참여했다.
1993년 12월에 5명,
1994년 3월에 1명의 원고가
추가로 소장을 제출하여
총 10명의 원고단이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인,
근로정신대 피해자 7인이었다.
극중 이상일 변호사는
관부 재판에 참여했던
재일 교포 이박성 변호사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이박성 변호사는 현재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실제로 태평양 전쟁 유족회의
사죄 소송에서 무료로 변호한 바 있다.
시모노세키에서의 재판 당시
김문숙 단장은 할머니들을
위해 결혼 예단 이불을
직접 들고 출국한 적 있다.
원고단 할머니들은 재판장과
숙소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일본 군가를 부르곤 했다.
원고단은 재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인을 찾기 위해
일본 신문에 광고를 냈다.
실제 재판에 참여한 박소득 할머니의
4학년 때 담임 선생님
‘수가야미 도미’가 법정에서
증언했다.
지인을 통해 재판 소식을
듣게 된 ‘수가야미 도미’가
후원회로 연락했고,
이후 박소득 할머니와
49년만에 재회했다.
‘수가야미 도미’는 당시
진행됐던 전후 보상 재판 사상,
실제 사건과 관계된
일본인의 첫 증언이었다.
재판 당시 결성된 후쿠오카
후원회는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 후원 단체로
매 재판마다 숙식,
항공료 등 일체의 체류 비용을
지원하고, 재판의 과정을 담은
소식지를 발행하여
각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다방면으로 재판에 큰 도움을 주었다.
동영상[ 허스토리 ] 메인 예고편www.youtube.com
△메인 예고편.
첫댓글 보기 힘든 영화가 나왔군요...ㅠㅠ
눈물을 한참 훔치며 볼 영화가 될듯요 ㅠㅠ
6월27일 개봉예정인데 꼭 보려구요.
제가 보려는 이유는 실제로 6년간
재판으로 현재까지 유일하게
일본 재판소에서
일부승소한 (나중에 우리나라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가
뒤집어 엎었지만요)관부재판
(예전 부산-시모노세키 오가는
배를 관부연락선이라 했죠)실화를
영화화하기도 했지만
(영화 변호인처럼 주인공들 이름
바꾸었지만)
한국에서 한이름값하는 여성 배우들이 이뻐보이려거나
영화적 카리스마 보이려는것이
아니고 그때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려는것 같아 보려 합니다.
@풍문으로 들었어 멋진 배우들이군요...
보기 힘들더라도 이런 영화는 꼭 보려구요 저도...
꼭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