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주말, 장을 담궜다. 요즘은 직접 장을 담아 먹는 집이 별로 없다 보니 장 담그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장 담그기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 넣고 소금물 부으면 끝이다. 달리 무얼 더 할 게 없다. 숯이나 건고초, 대추 등을 넣는데 사실 이런 건 안 넣어도 상관 없다. 오히려 장 담그기 전에 콩 삶아 메주 만들어 띄우는 게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조금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메주 띄워 파는 곳도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장 담그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두 번만 담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장 항아리는 며칠 전부터 물을 부어 불순물을 우려내고 있으니 장 담그기 준비 두 번째는 장물을 만들어야 한다. 소금물을 만들기 위해 창고에 쌓아 둔 소금 포대를 가져와 무게를 달아 보니 헐~, 20Kg짜리 소금 포대가 16Kg으로 줄어들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하느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소금도 그러한가 보다. 아마도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마그네슘이 주성분인 간수가 빠지고 수분도 증발되었으리라. 마침 띄워 놓은 메주가 16Kg이니 이 소금 포대 하나를 전부 녹이면 될 것 같다.
소금물의 농도는 장을 담는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나는 메주:소금:물을 1:1:4 정도로 한다. 이곳은 날씨가 따뜻하고 습도가 많아 염도가 낮을 경우 장이 시어버릴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중부 내륙지방 같이 추운 곳은 소금물의 농도를 1:3 정도로 해도 크게 문제될 것 없으리라. 실제로 그렇게 담는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간장을 빼지 않는 된장을 담글 경우는 메주와 소금물의 비율을 1:2.5 내지 1:3 정도로 한다. 옛날부터 울산, 경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된장과 간장을 따로 담았었다. 간장 담은 메주는 된장을 만들지 않고 소 먹이로 주곤 했다. 이런 된장을 먹다 간장 뺀 된장을 처음 접했을 때는 냄새조차 맡기 싫었다. 그나마 요즘은 장 담근 지 4~50일 만에 장을 가르니 간장을 뺀다 해도 된장 맛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 옛날처럼 두세 달 두는 집은 아마도 거의 없으리라.
깨끗하게 씻은 항아리에 짚으로 불을 내 훈연으로 소독해 준다. 그런 다음 메주를 차곡차곡 쌓고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 둔 소금물을 부어 준다. 정제염이 아닌 천일염을 쓸 경우는 아무래도 불순물이 있으니 면보자기를 받쳐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 주는 게 좋다. 많은 사람들이 천일염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는데 간수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천일염 쓸 바에야 그냥 정제염 쓰시라고 권하고 싶다. 천일염에 들어 있는 불순물, 특히 간수의 주성분인 마그네슘은 음식맛을 쓰게 만든다. 요즘 같은 영양 과잉 시대에 다른 미네랄 성분 조금 더 먹자고 마그네슘으로 덧칠된 음식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메주가 아무리 단단하고 무거워도 장물을 부으면 메주는 전부 떠오른다. 안 떠오른다면 염도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런 장은 반드시 시어버린다. 장물을 부은 다음에는 대부분 숯이나 건고추 등을 넣고 마무리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위로 떠오른 메주를 장물에 잠기게 하는 거다. 떠오른 메주를 그대로 두면 잡균이 생기거나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대나무로 눌러 두곤 했었는데 올해는 엄나무를 잘라와 실로 엮어 누르기로 했다. 대나무보다는 엄나무의 좋은 성분들이 묻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뭐 그리 큰 기대는 않는다. 어차피 할 일인지라 조금 더 수고로움을 더했을 뿐이다. 여기까지가 사람이 할 일이고 이제 나머지는 자연이 할 일이다.
요즘 SNS를 보면 장을 담궜다면서 '말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월 말날에 장을 담는다는 옛말을 따른 것이리라. 옛 문헌을 보면 장을 담는 것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정월 말날 이야기야 많이 알려졌지만 또 하나 미신적인 요소가 많은 이야기는 '신'씨 이야기다. '신날'에는 절대 장을 담그면 안 되고, 선조 때는 궁중의 장을 총괄하는 관리에 하필 신씨가 임명되자 절대 안 된다며 신하들이 들고 있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단지 신씨라는 이유로. 그럼 신씨 집안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장도 못 담아 먹는단 말인가?
과학적으로 생각하자면 장이 시고 안 시고는 소금물의 농도가 첫 번째일 테고 두 번째는 날씨이리라. 장맛의 좋고 나쁨 여부도 메주가 잘 띄어진 정도와 날씨에 영향 받을 테고. 그러니 굳이 '말날'이니 '신날'이니 하며 엄격하게 따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오리려 맑은 날씨인가 흐린 날씨인가의 여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비오거나 바람 부는 말날과 화창하고 바람 없는 신날 중에 어느 날에 장을 담그는 게 좋을까? 난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음력 정월이란 해에 따라서는 양력으로 한 달 이상 차이가 난다. 올해처럼 2월 20일 근처에 설날이 올 수도 있고 빠를 때는 1월 20일 근처에 올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말날 여부가 아니라 소금물의 염도다. 겨울에 가까운 날에 담을 때는 소금물의 농도를 좀 연하게 해도 되고 봄이 완연한 날에 담을 때는 소금물의 농도를 짙게 해 주어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날을 따진다면 난 화창한 주말에 자식들을 불러 모아 장을 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자주 볼 수 없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출가를 했던 안 했든 장을 담는 모습을 보고 그들도 배우고 익히며 나중에라도 장을 담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부모 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몸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이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보전해야 할 소중한 전통이 아닐까? 이에 비한다면 말날이니 신날이니 따지는 건 너무 소박한 논쟁거리다.
볕 좋은 주말, 장을 담궜다. 요즘은 직접 장을 담아 먹는 집이 별로 없다 보니 장 담그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장 담그기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 넣고 소금물 부으면 끝이다. 달리 무얼 더 할 게 없다
첫댓글 잘 읽었어요. 저도 이런걸 뚝딱 해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
장 담그기, 해 보면 의외로 쉽습니다^^
장 담그기 잘 보았습니다.
짧은 삶이 아니었거늘 여태 장 한번 담가보질 못했네요.
많은 것은 생각하게 해 주시는 글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담그 좋은글 잘보았습니다.메주.소금.물 비율을 ㅣ:1:4로 하실때 메주와소금이 16kg씩이면 물의 양은 몇리터가 되는지요?
리터(L)와 킬로그램(Kg)은 동일합니다.
장담그기 잘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쉽게 할수있는데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저는 소금을 500짜리 동전을 뛰워 보면 동전이 뜨면 소금 간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10일 전에 스피노자님의 과정 보다 좀 빨라냈요.
간장은 빼서 달려서 장독에 넣고 매주는 옛날에는
소여물 끓일때 소를 주면 참 잘먹었지요.
오리지날 장 담을 메주는 다시 모두 꺼집어 내어 콩을 손으로 주물러 부드럽게 해서 단지에 다시넣습니다.
이때 약간의 소금을 뿌려줍니다. 1달 후 다시 이방법으로 합니다.이때 완전한 맛이 되도록 소금 간을 맞춥니다.햇빛이 잘 드는 양지쪽에 두면 아주 맞나는 집된장이 되지요.주위분들이 우리 집 된장 맛있다 함
잘 담으셨네요^^
소금물의 농도는 500원 짜리 동전 이야기하시는데
소금과 물을 1:3.5으로 하든 1:4.5로 하든 거의 비슷하게 떠오릅니다.
한 번 실험해 보십시오.
그 500원짜리 떠오르는 정도라는 것도 보는 이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충분히 떠올랐다 아니다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담고 싶은 장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소금물의 농도를 1:3으로 하든 1:4로 하든 조절하는 게 편합니다.
소금물 농도 1:3과 1:4는 천지차이입니다. 장의 짠맛에 있어서요...
혹자는 계란을 넣어 떠오른 면이 오백원 짜리 동전 크기 정도라는 말도 하는데 이것도 주관적인 판단이죠.
장 가르기야 나중에 할 일이고요..
된장도 고추장도 간장도 담아서 먹는것이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많은 분들이 스피노자님처럼 장을 담가먹으면 좋겠네요 ㅎㅎ
저는장을담궜는데 메주5.2키로에ㅡ소금3키로ㅡ물10키로 담었는데 25일지나 된장걸렀네요 어제..된장맛빠지지않게 빨리건지고 간장을끓인물을식혀 된장에섞어두었어요.마르지않게 촉촉하게간장을 넉넉하게넣었더니 짠거같아요..여름에콩삻아 섞으려합니다..
장물 양을 보니 간장 빼지 않고 된장용으로만 담으신 거 아니신지요?
메주양을 보면 간장이 나올 거 같지 않은데요...
지금은 된장이 물러 보여도 장 담근 지 25일밖에 안 되었으니 메주가 수분을 제대로 흡수할 시간이 부족했을 겁니다.
아마도 좀 시간이 지나면 곧 장이 뻑뻑해질 겁니다.
장의 짠 정도는 몇 개월 숙성시킨 다음 보시는 게 어떨지요?
지금은 당연히 짜게 느껴지죠.
된장은 최소한 2년 정도는 묵혀야 제대로 발효된 맛이 납니다.
몇 개월 만에 먹는 된장은 그냥 메주에 소금 섞은 것이죠.
발효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된장은 염도가 있기 때문에 발효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피노자 정성스런 답글 감사합니다.홈쇼핑에서 사서 처음 담아봤네요..ㅎㅎ간장은 있어서 된장용 으로 담아보았어요.
된장10키로.간장은 된장에 섞고나니 3키로 정도되네요.짠것같아 윗소금은 덮지 않고 비닐덮고 유리뚜겅만 덮어두었는데 소금덮을까요,?...간장이(소금물) 조금이라 맛간장으로 만들어 봐야겠어요.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황금마삭 (광주) 글쎄요^^
장맛의 짠 정도는 주인의 취향이라 제가 뭐라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대신 장은 공기를 통하게 해 주는 게 좋습니다.
장 발효균은 호기성 세균입니다. 공기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세균이거든요.,
비닐은 안 덮는 게 좋지 않을까요?
@스피노자 비닐빼고 소금조금덮고 가제천으로 덮어두고 낮엔 뚜겅 열어두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