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이스라엘의 회복
호세아 1:8-2:1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2: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셋째 아이를 낳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로 암미'(לֹא עַמִּי)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름은 '백성, 국민'(nation, people)을 뜻하는 '암(עַם)'과 '아니다'(no, not, nothing, neither)를 의미하는 '로(לֹא)'가 결합된 단어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세 자녀의 이름을 통해 북 이스라엘의 미래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첫째 이스르엘을 통해 북 이스라엘을 흩어버리실 것이며, 둘째 로루하마를 통하여 더이상 용서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실 것이며, 셋째 로암미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날 것임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포는 북 이스라엘에게는 절망적인 메세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을 맺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던 이스라엘을 이제는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영적인 눈을 닫아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한 것은 영적인 소경이 되어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후 나은 첫째 아들인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세상으로 흩어버려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17장은 그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선지자가 아님) 9년에 앗수르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또 여호와께서 저희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며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치 말라 명하신 일이라.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 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다와 유다에 속한 베냐민을 제외한 10지파가 속해있던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유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앗수르로부터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그런데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10지파의 멸망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언약의 말씀이 10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라고 다시 언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 그 시험(테스트)에 합격하고 난 뒤에 하나남께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1) 인구의 번성
이어서 10절 후반부의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와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또 포로로 끌려가기도 하며 앗수르의 종교혼합정책에 의해 앗수르인들과의 혼합결혼으로 인해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 완전히 말살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되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실제로 솔로몬 왕때에 성취되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왕상 4:20).
(2) 하나님의 자녀가 됨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라는 말씀은 2장1절에서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라는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즉 그 동안은 호세아의 둘째와 셋째 아이의 이름 앞에 '부정'을 뜻하는 '로(לֹא)'가 붙어서 '로루하마' '로암미'라고 불렀는데 즉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며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그들의 이름앞에 붙었던 '로(לֹא)'라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를 빼고 '루하마'와 '암미'라고 부르시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루하마(라헴 רָחַם)'는 '긍휼히 여기다' '동정하다'라는 뜻이며 '암미(암 עַם)'라는 말은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3)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됨
11절을 보면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유다도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사라지게 되고, 그 후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지파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주의가 형성되는데 그것이 바로 "유대교"와 "유대주의"입니다.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에스라에 의해 유대교가 만들어지면서 그 동안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형성되었던 혈연관계의 나라에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걸고 지키겠다는 사람은 이방인이건 누구건 유대인이 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남북으로 갈라졌던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당한 뒤에 다시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가 되기 위해 때로는 완전히 멸망하도록 역사를 이끌어가기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상황이 절망상태라고 할지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교회가 세워지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역사 또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의 창대함
11절의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라는 말은 3-4절에서 의미하는 '이스르엘'과 반대의 의미입니다. '이스르엘'은 "씨를 뿌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씨를 뿌릴 때에 손에 한 움큼 쥐고 뿌리기 때문에 씨가 여기 저기에 날아가서 좋은 땅에도 뿌려지고, 길가나 돌밭에도 뿌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흩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로 쓰였지만, 11절에서는 흩어지지만 동시에 땅에 심기워진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흩어져 뿌려지더라도 결국 뿌려진 씨앗이 옥토에 뿌려진 것은 새싹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멸망의 길을 걸어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저주의 날이 축복의 날로, 심판의 날이 구원과 회복의 날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말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구원과 승리의 날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도 충성심도 약속을 이행할만한 신실함도 없는 인간과는 달리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많은 약속을 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법이 있으면 그 법을 지켜야하는 것이 약속인데, 그 약속을 다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교통법규 중에서 고속도로를 달릴 때 속도제한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나라와의 약속을 어기며 살아가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 것입니다. 또 결혼할 때 신랑과 신부는 결혼 서약을 합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가 팥뿌리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사랑하겠느냐?"라는 질문에 신랑과 신부는 "예"하고 대답을 아주 잘 합니다. 신부는 다소곳이 대답을 하지만, 신랑은 힘차게 대답을 아주 잘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차게 대답한 것처럼 평생을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힘차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호세아 선지자는 앞으로 멸망당할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이 말씀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망의 메세지가 아니라 소망의 메세지였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소망은 언제 생깁니까? 괴롭고 힘들 때에 한 줄기 빛만 보아도 그것을 붙잡고 싶은 소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결코 돌아올 것같지 않은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을 통하여 한 줄기 빛인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통하여 지긋지긋한 삶이 빨리 마무리되고 하나님께서 주실 그 구원의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호세아는 결혼생활 속에서 아무리 외치고 아무리 다시 데려와도 또다시 세상으로 달려가는 고멜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세상을 향해 달려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간절하면서도 때로는 매우 강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로루하마, 로암미'였던 자에서 '루하마, 암미'로 신분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과거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천국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신분이 변화되었다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언행도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이며 구원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구원받을만한 생각과 언행을 하지 않으면서 구원받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처럼 모순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고멜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매일 매순간 애통하는 마음, 가난한 마음, 청결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애통하지도 않는데 누가 불쌍히 여겨주겠습니까? 혼자 잘났다고 하는데 누가 긍휼하게 여겨주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데 그런 사람을 누가 불쌍히 여기겠습니까?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데 누가 자녀로 삼아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복있는 자"로서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가난하고 청결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온유한 마음을 갖고 화평케하기 위해 애쓰며 하나님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며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서 나오는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멜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틈만나면 세상적인 생각과 지식대로 살아가던 저를 주의 말씀 앞에 무릎꿇게 하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세 자녀를 통하여 그들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계시하신 것을 보며, 우리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기에 세상 사람들도 작명가를 찾아가서 이름을 짓는데, 하물여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이들이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고 세상에서 좋은 이름을 짓는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작명가를 찾아가서 이름을 짓는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그렇게 살아왔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때에는 믿음도 없었고, 하나님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성경적인 이름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주신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 동안 제 이름이나 제 부모님의 이름이나 제 자녀의 이름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 이름의 뜻을 깊이 되새기며 살겠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좋은 이름을 주셨는데 그것을 누리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한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허송세월을 하며 살아온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흩으시는 동시에 심으신 것을 보며, 저의 삶 역시 하나님께서 흩으실 때가 있고 심은 것을 거둘 때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거둘 때에는 기분이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했지만, 제 생활이 엉망이 되며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가 없는 절망감과 분노가 동시에 발생하여 주위를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은 제 자아가 완전히 주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 죽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기도에 전심을 다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원망과 불평과 분노의 큰 음성을 외치며 살기도 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거두어 가신 뒤에 다시 회복하여 주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저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저의 삶을 구원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으로부터 복받은 자로서 제 자손의 번성함을 보게 하시며 그 번성함이 육체적 번성함이 아니라 영적인 번성함이 되어서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하신 그 말씀대로 우리 가정이 영적으로 부흥하고 영적으로 창대해지는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세상 만민이 우리 가정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복을 받은 가정이라고 칭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하며 주님의 자녀로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므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저를 통해 흘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