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걸음들 마태복음 2장 1-12절
제가 송년 설교를 오랜만에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성탄절에 전도사님께서 스마트한 재치로 한해를 잘 훑어 주셔서 따로 동녘의 한해를 되돌아보지는 않겠습니다. 오늘은 한 해를 함께 살아오면서 깨달은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가 행신동에 있을 때부터 청년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세대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고 한 때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되었으나 어느새 변화와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젊은 세대와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걸친 대화와 강연, 그리고 성평등위를 만들고 다양한 소리들을 들으려 애써왔습니다. 장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그 간격은 잘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가운데서 어느 날 청년들이 깨달게 된 게 있습니다. 논의와 대화와 앎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습관이나 몸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수련회 가서나 연말이나 함께 자리를 만들어서 몸으로 부딪히며 신나게 놀고 게임하고 대화하고 함께 보냈던 시간들 속에서 서로의 마음의 문이 훨씬 더 열리더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예기도 중요하고 대화도 중요하지만 좀 더 재미있게 잘 노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는 겁니다. 굉장한 진전입니다. 막연한 부정적인 시각에 놓여있던 친구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한 것만으로도 매우 큰 변화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신나고 즐겁게 노는 시간을 많이 갖는 걸로!!! 아이들도 만나면 대화한다고 친해지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신나게 먹고 놀다보면 친해지고 그러다 보면 이해하고 그러는 거죠.
축척된 몸의 경험, 사랑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옳은 예기를 하고 바른 정답을 예기해도 문맥과 상황이 결여된 정답들은 사람들을 지치게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까지 2년여 동안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열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그런 걸 왜하냐, 우리가 이 나이가 들었는데 누군가의 이야기를 또 들으면서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해 난 못해 그랬으면 절대 못 왔을 과정들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교인들이 그래요. 저는 신앙이나 하느님 이런 거 잘 모르겠고 그냥 사람이 좋아서 나온데요. 때때로 사람들이 신앙과 사람이 좋은 거(인간적이라 생각해서)와 분리해서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우리도 실수하고 우리도 질투하고 맘에 안 드는 사람 있고 똑같은 사람이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자꾸 부대낀대요. 우리도 그래요. 밖에서 다른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라고 안 일어납니까 그런데요. 솔직하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면 함께 내치지 않고 같이 서로 부대끼지 않게 공존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노력하고 하는 게 보여요. 내 안에만 갇혀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부딪히면 좀 떨어져서 생각해 보고, 시야를 넓혀 보기도 하고, 유연성을 가지려고도 하고 변화에 열려있기도 합니다.
법정 스님이 그래요. 관계는 왕도가 없다고 항상 낫게 하는 약은 없다는 거예요. 상황에따라 이사람에게는 효과적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같은 사람이라도 이번에는 효과적인데 다음에는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부작용이 생겼다고 멈추고 포기하고 갈라서면 거기서 끝이지만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고민하고 애쓰다 보면 나름 길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생명에 대해 사람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애써왔다면 저는 이것이상의 신앙공동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가장 소중하게 만드신 것들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분들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맘먹고 살아온 것 자체가 신앙 아닙니까? 온전하지는 않지만 열려있으려고 했고 들으려고 했었고 크든 작든 변화에 용기를 냈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처음에 이 지역에 와서 지역을 알아야겠다고 생각도 하고 지역에 어려운 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시는 분이 개인정보가 점점 강화되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도 드릴 수 없다고 딱 짜르더라구요. 충분히 공감가는 이해였습니다. 그분들도 내가 누구라고 정보를 주겠습니까? 어려운 이웃들 좀 도와준답시고 일벌려놓고 명함돌리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후원자들 돈 두둑히 챙기는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평화의 식탁을 열고 여기 저기 홍보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도 해서 돌돌이 장터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뻥튀기 아저씨하고도 친해지고 과일가게 아저씨하고도 친해지고 시장 연합회 회장, 지역일을 하시는 이런 저런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돌돌이 장터를 시작했더니 시장 이미지 좋아진다고 시장 관계자분들중 몇분이 그렇게 일부러 물건도 갖다 주시고 홍보도 해주시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랬더니 그분이 우리 동네 이런 교회 있다고 하시면서 동장님을 만나게 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몇주 전에 동장님이 저희 교회를 오셨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가 그랬어요. 보여주기 식으로 일년에 한두번 돈 몇 번 도와 드리고 그런거 말고 복지 사각지대에 계시는 분들 한두 가정이라도 관계를 맺으면서 여기 평화의 식탁도 있고 돌돌이 장터도 있고 우리 교회 다재다능한 분들도 많은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정식으로 MOU맺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제가 명예 사회 복지요원이 될 수 있데요. 그러면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할 수 있데요.
찾아갔을 땐 동사무소 직원도 거절하더니 인연을 소중히 가꾸어 가니 동장님이 오시더라구요. 이 과정에서 역시 깨달은 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연이라도 사람, 인연을 소중히 가꾸어가는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겁니다. 성경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요. 하느님은 철저히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시는데 그 사람을 엮고 연결하고 이어줄 때보면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을 읽을 때도 보았지만 열일 제치고 예수 공동체를 섬겼던 사람들이 누구예요? 70인 사역공동체는 누구였을까?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그리고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도 동행하였는데,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생을 섬겼다.”
예수 공동체를 세우고 지탱하고 유지하고 그 사역을 지속지키고 키우고 활성화시켰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직접이 손과 발을 닦아주고 눈과 귀를 만져주고 치유하고 기도하고 정성껏 돌보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크고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늘 소중한 건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한 삶의 태도라는 것, 예수 공동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신앙의 진실이요, 한해동안 살아오면서 또다시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의 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한해를 살아오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본의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도 드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소소한 실수와 갈등, 공동체 내의 다양한 불편한 삶의 목소리들을 관계의 유연함과 쉽게 판단하지 않는 지혜로움과 서두르지 않는 인내력과 따뜻한 신뢰의 눈으로 관계와 서로를 품어주신 동녘공동체가 있었기에 오늘의 동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 승현이 노래를 들으며 저는 거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육이 이런 거구나. 스며드는 거구나. 우리가 여기에서 했던 말들 마주쳤던 눈빛들 불렀던 노래들, 웃음들, 너무너무 반가워했던 그 기쁨들 이 모든 것이 교육이었구나. 하나 하나 또박또박 다 스며든 걸 보면서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는 교육보다 훨씬 중요한게 여기서 함께 살아가는 서로 대하는 태도구나 싶었습니다. 만약에 어른들이 악기 친다고 혼내고 조용히 하라고 야단치고 엄하게 그래서 무서워하고 뒤로 숨고 와도 아는체도 하지않고 분위기가 아이에게 편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으며 그런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이 모든 수고와 애씀에 감사드리고 그런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봅시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사건이었음을 고백한 마태는 2장 오늘의 본문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라는 존재도 결코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헤롯과 같은 권력자들은 예수라는 존재가 지독하게 미웠고 위협스러웠고 결국 죽이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안에서 예수 공동체의 위상입니다.
권력자들에게는 위협의 대상이 되고 불편한 존재였지만 지혜자들, 영적 스승들, 세상의 희망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건 욕심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장의 이야기는 매우 상징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권력은 죽이려하고 동방의 지혜자들은 경배합니다. 위협을 느낀 예수님 가족은 이집트로 피신을 하지만 결국 갈릴리로 돌아옵니다. 갈릴리로 돌아와 당신의 길을 걷습니다.
크게 눈치 보지 말라는 겁니다. 어자피 욕할 사람 욕하고 칭찬할 사람 칭찬합니다. 사람을 품고 사랑하되 그 반응에는 신경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언제나처럼 자유롭게 열린 사랑으로 넉넉한 따뜻함으로 생명을 소중히 품고 우리의 길을 걸어가자 마태공동체는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한해가 가고 오는 골목에서도 언제나처럼 이런 모습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기억할 것들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 나무들 풀과 공기와 바람과 하늘과 비와 해와 달 그리고 바다와 하늘, 땅의 모든 생명들, 그리고 때로 나를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고 신명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고 나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부드러운 은총의 손길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저무는 한해에도 그리고 새롭게 맞는 새해에도 온생명을 품어가시는 은총의 햇살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삶과 관계와 일들을 감싸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