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오지마을 버스, 운영 맡은 주민들은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마을회관도, 노인정도 없는 마을. 춘천시에 속하지만, 시내에 가려면 배를 타야 했던 마을. 1972년, 소양강댐 건설로 인근 지역이 수몰되며 '오지마을'이 된 북산면 조교 2리, '누리삼 마을'의 이야기이다. 열악한 교통 여건으로 인해 주민들이 10년째 마을버스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으나, 현재 '예산부족'과 '기사부족' 문제로 장기적 운영을 장담치 못하고 있었다. 이에 지난 11일과 15일, 마을에 찾아가 주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들어봤다.
험한 도로 환경 탓에 일반 버스와는 다른 모습의 '4륜 구동 11인승 승합차' 조교 2리 마을버스(좌). 보조기사 업무를 맡고 있는 황정식(44)이장(우).
30명 남짓 주민들이 살고 있는 조교 2리에서 육로를 이용해 춘천시내에 가려면, 홍천군을 돌아 차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마을에 진입하기 위해선 좁고 가파른 지방도를 지나야 하지만, 이러한 포장도로도 2000년 이후에나 들어섰다. 황 이장은 "2000년대 이전 비포장 도로일 때는 사륜구동 자동차로도 오기 힘든 곳이었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배를 타고 오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마을에 거주한 지 42년 차가 된 나갑순(82)씨는 "(마을에 정착한 뒤) 한 20년은 배로 다녔는데, 마을에서 선착장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해요."라고 밝혔다.
마을 진입 전 나오는 구불구불한 고개길과 경고판(좌). 조교 1리를 지나 좁은 길을 달리면 나오는 조교 2리 입구와 '기업형 새농촌 선도마을 선정' 플랜카드(우).
조교 2리, 마을에서 버스를 직접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
주민들은 장이나 병원에 가는 일에도 큰 결심이 필요했고,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위해 일찌감치 부모님과 떨어져야 했다. 2013년, 결국 마을의 숙원이었던 버스 노선이 조교 2리에 들어섰다. 당시 이장을 맡고 있던 고 황해범씨의 공이 컸다. 강원도에서 진행한 '새농촌건설운동' 사업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마을에서 자동차를 구입했고, 황 전 이장이 춘천시를 설득 끝에 운영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마을에서 버스를 직접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가 탄생했다. 2014년, 농림축산부는 이를 '농촌형 교통모델 발굴사업'으로, 이듬해에는 '전국 최우수' 교통모델로 선정했다.
2015년이 사업 선정 마지막 해였으나, 차량에 그대로 붙어있는 '농촌형 교통모델 발굴사업' 스티커(좌), 차량 제원 스티커에 새겨진 '제작년도 2013년'(우)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시에서 주어지던 운영비는 '10년째 동결' 상태였다. 차량 노후화, 유류비 상승 등으로 인해 버스 운영은 빠듯해져 갔다. 게다가 버스기사를 보조하거나 대체할 인력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지원금에 운행 환경을 고려했으면 좋겠어요." 예산부족 문제
조교리 마을버스 지원금 연 4,000만 원. 이를 통해 차량 유류비와 수리비, 보험료 등과 기사 인건비를 지출한다. 그러나 운영 10년 차에 접어든 지금, 해당 지원금으로 차량 노후화 문제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황 이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길이 험해 타이어나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마을 도로는 염화칼슘 사용량이 매우 많아, 차량 부식도 심하다."며, 운행 환경을 고려한 지원금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치솟았던 경유값도 문제였다. 마을버스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주민 황희숙(49)사무장은 "작년엔 유류비가 한 달에 70~80만 원이 나오기도 했어요. 사람이 없을 땐 장날에 (홍천)장에도 안 가요. 지금 이미 많이 아끼는 중이에요."라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염화칼슘 제설제로 인해 심하게 부식되어 뼈대가 보이는 마을버스 하부(좌), 100만원 이상의 수리비가 나온 차량 정비 내역서(우). '스태빌라이저'와 '서스팬션 로워암' 등 차량 하부 부품들, '브레이크 패드'와 '타이어' 등 소모품을 교환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사 인건비"
작년의 경우, 춘천시는 상승한 수리비와 유류비 등을 고려해 3차 추가경정예산 400만 원으로 지원했다. 해당 예산이 편성, 지원되는 사이에 차량 정비를 미루는 등 마음을 졸였지만, 결국 12월에 차량 유지비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 55,600원 수준의 기사 인건비는 그대로였고, 이러한 수준으로는 기사가 '부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버스 운행이 어려울 때, 각자의 본업으로 인해 시간 조율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교 2리 주민이자 10년째 버스 기사를 맡고 있는 황해동(65)씨는 양봉업, 산양삼 농사 등을, 황 이장 역시 어업과 골프레슨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춘천시 교통과 관계자는 "하루 세 번 노선을 왕복하기에 운행시간이 짧다."고 말하며, 인건비 증액에 관해서도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황해동 기사, 마을 입장에서는 "단순한 버스기사 아니야"
황해동 기사의 업무를 운행시간, 운행거리 등 '숫자'로만 따질 수는 없었다. 정해진 정류장에서 승객들을 태우고 내려주는 것 외에, 노인들의 짐을 직접 들어 옮겨주거나, 이동이 편한 곳까지 차량을 더 운행하기도 했다. 조교 2리의 나갑순(82)씨는 "(황 기사는) 좋은 분이에요. 장 봐오면 집 안까지 들여놔주고, 너무 고마운 거야."라며 감사를 표시했고, 조교 1리에서 나고 자란 나정애(86)씨도 "우리가 걸음을 잘 못 걷거나 느려도 다 이해해 주시니까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노인네들 무거운 건 다 차 대주시고 실어주시고 그래요."라며 황 기사의 노고를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 속, 그가 본업을 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황 사무장은 "단순한 기사님이 아닌 거죠. 본인 일도 못 보는데 마을의 심부름꾼 일까지 하니까요."라며 조교리 마을버스 기사만의 업무 특성을 언급했다.
조교리에서 민박집을 운영 중인 나갑순씨(좌)와,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인터뷰 중인 나정애씨(우). 나정애씨는 인터뷰를 통해 "애들이 있어도 (타지에) 나가 있어서 일일이 부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마을버스가 있는 동안에는 이것만 꼭 신용하고 합니다."라며, 버스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버스기사로서의 의무가 아닌, '노인들을 위한 배려'였다. 황 기사는 "(노인들이) 짐 몇 보따리씩 들고 절뚝절뚝 오시는데, 마트 근처까지 가서 짐을 안 실어드릴 수가 없어요."라며 배려의 이유를 밝혔다. 현재 조교리 마을버스의 기사 인건비는 '10년째 동결' 상태다. 하지만 춘천시도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기 난처한 입장이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여객자동차운송사업 면허 발급이 정해진 노선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춘천시 교통과 관계자는 "노선이 정해져서 면허가 나가는 건데, 노선 외 구간을 운전하면 안 된다. 그래서 (조교리에) 그렇게 안내를 한다."고 밝혔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생각해요. 그래도 막상 할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죠."
황(65)기사가 버스 업무를 지속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다 보니 병원에 갈 일이 점점 많아지는데, 시간 만들기가 힘들죠. 이게 가장 걱정이에요."라며 고충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황 기사를 대체할 마을의 젊은 인력도, 현재 인건비로 외부에서 들어올 버스 기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춘천시민버스 기준, 노동조합과 사측이 정한 기사 정년은 만 64세이다.
일반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버스, "전문가 조언 필요할 때도..."
현재 조교리 마을버스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황 사무장은 전문 인력이 아닌 마을 주민이다. 황 이장과 황 기사도 마찬가지. 때문에 버스 운영 관련 조언이 절실할 때도 있었다. 버스의 '주행기록장치'가 고장 났던 작년의 경우가 그랬다. 버스 운행을 지속하기 위해선 사업용 자동차 '차령연장검사'에 합격해야 했던 상황. 그러나 해당 장치를 정비할 수 있는 업체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차량 도입 당시 장치를 달아준 춘천시에도 문의해 봤지만, 시조차 어느 업체에서 달아줬는지, 수리는 가능한지 모르고 있었다. 운행을 포기하고 서울, 구리 등으로 업체를 찾아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춘천의 한 업체에서 장치를 고칠 수 있었지만, 황 이장은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는 "우리는 버스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는 게 많아요. 만약 검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폐차해야 했죠."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버스가 없으면 발이 묶이는 노인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을버스 운영을 포기할 수 없었는데, 버스 이용객 대부분이 노인이기 때문이었다. 황 사무장은 인터뷰를 통해 "이용객 대부분이 70대에서 80대 노인 분들이세요."라고 밝혔다. 노인들은 버스 외엔 마땅히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는 실정이었다. 자동차를 소유하거나 운전이 가능하지도 않았으며, 거동이 불편해 배를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황 기사는 "배를 타고 다니던 때만 해도 노인들이 젊었으니 걸어 다니지, 배 타고 (소양호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힘들어요 지금은."이라고 말했다.
이웃의 차를 얻어 타는 것도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조교 1리에 머문 지 60년이 넘은 변옥환(83)씨는, "다른 사람 차 빌려 타서 병원 가면 기름값이라도 주고 가야지 그냥 가나요. 각자 볼 일 보러 가고 하는데 누가 태워다 줘요?"라고 밝혔고, 나정애씨는 "남의 차 빌리면 불편스럽고, 돈은 더 들어가고, 그게 얼마나 치사스러운가요."라며 버스비 1,000원에 비해 부담인 비용 문제를 언급했다. 나갑순씨 역시 같은 의견이었는데, "(차를 얻어 타면) 기름값이랑 하루 품 값은 따져서 4~5만 원씩 줘야 돼요. 양심상 미안하잖아요."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결국 노인들이 의지할 이동수단은 값이 싸고 매일 운행하는 마을버스에 뿐이었다.
새 차량 도입 예정. 급한 불은 껐지만... "한시적 해결책일 뿐"
조교 2리는 작년 강원도 '기업형 새농촌 만들기 사업'의 선도마을로 선정되며 새 버스 도입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걱정이다. 황 이장은 "신차를 계약했으나, 시간이 지나 차량이 노후화 됐을 경우 작년과 같은 예산 부족 문제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기사를 확보하는 일이다"라며 신차가 당장은 마을에 도움이 되겠지만, 기사 부족 등의 문제는 그대로일 것이라 우려했다. 춘천시는 버스 요금을 올려 운영비를 확보하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이용객이 적어 큰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작년 기준 버스 이용객은 한 달 평균 134명 꼴이었다.
황 사무장에 따르면, '기업형 새농촌 만들기 사업'의 심사관은 조교 1리, 원동리 등 버스를 이용하는 인접 마을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운영비를 함께 부담하는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상태였다. 황 사무장은 "(인접 마을의) 차를 가진 젊은 분들 중에선 "왜 우리가 운영비를 부담해야하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세요."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