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종주 5 치밭목대피소~대원사
10:28. 마지막 코스인 대원사를 향해 출발(9.9km). 갈 길이 멀다.
지리산의 겹겹 능선은 “아름답다 아름답다” 경탄하면서 그 능선을 이뤄낸 기괴한 봉우리들은 왜 생각 못 했을까. 그 능선의 한 줄기에 내가 서 있다. 대견하고 뿌듯하다. 지친 몸을 용기 내어 다시 추스린다.
이제 집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 간다.
고생, 자초한 생고생 길에 안녕을 고하고 내 집으로 간다.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도란도란 사목사목 걸었다.
갑자기 뒤에서 “다다닥! 다다닥!...” 산짐승이 나타난 줄 알았다. 오늘 03:00에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 찍고 15:00까지 대원사에 도착해야 하는, 화대종주를 12시간 만에 완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런닝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한 발짝 나아가기가 지뢰밭을 딛듯 험난하기 짝이 없는데 거침없는 달리기로 순식간에 우리를 추월하여 자취를 감추는 속사포들. “세상에 이럴수가~” 2박 3일에 걸쳐 화대종주를 간신히 하고 있으면서 은근하게 속삭였던 대견함, 자만감이 일순간에 쏙! 겸손해야 함이 문득 샘솟는다.
1,000m 높이쯤으로 내려오자 계곡 물소리가 들렸다. 무등산 골짜기의 물소리인 듯 반가웠다. 대원사가 바로 지척이라도 된 듯 순간 힘이 솟구쳤다.
“엄마! 저도 여기 물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 왔다는 착각 속에 빠져요. 아직 멀었어요.”
아들 말마따나 금방이라도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대원사 유평마을은 가도가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1,000m 높이 이상에서도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는 지리산, 감히 지리산의 범상한 위엄을 짐작케 한다.
막바지 지리산 종주의 지루함이 극에 달했다. 지리산 속에서의 마지막 간식으로 남은 사과 1개를 나눠 먹었다. 아들이 몇 년 전 홀로 칠레 트레킹 중, 더이상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정도의(죽을 만큼 힘들어 울었다고 한다.) 힘듦에 주저앉아 있을 때, 그런데 참으로 우연히 전 여행지에서 만났던 친구를 조우해 그 친구가 건넨 사과 반쪽을 먹고 바로 기운을 차려 트레킹을 계속할 수 있었다
고 한다. 갈급한 찰나, 허기에 생기가 되어 주었던 고마운 사과 반쪽. 오늘도 지친 아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톡톡히 한다.
13:50 대원사 유평마을 도착.
종주 3일간 내내 그립고도 그리워했던 평평한 길을 드디어 밟게 됐다.
유평마을은 전라도 지리산 자락의 산골 마을 모습 그대로였다. 기암괴석을 오르내렸던 3일간의 고난은 흔적도 없고 마을 뒷산을 갔다 온 듯 무덤덤했다.
완주의 짜릿한 쾌감도 일지 않았다.
왠지 싱겁고 허망한 느낌이랄까.
우의를 벗고 흙범벅인 등산화를 씻고 스틱을 접으며 지리산행을 완전히 마쳤다.
넓은 계곡을 끼고 매끈한 아스팔트 길을 40여 분 걸어 대원사(후문)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의 종점이다.
석가탄일을 치른 대원사는 연등으로 화려했다.
종주확인 스템프를 찍고 대원사를 배경하여 여러 컷 사진으로 화대종주 막을 내렸다.
아직도 가볍지 않은 짐덩이 배낭을 두 팔에 번쩍 들고 소리 없는 ‘만세!’를 외치는 아들,
출발 때보다 얼굴이 야위었다.
3일간의 산행이 얼마나 고됐는지 눈에 띄게 홀쭉해진 남편은 피로감이 역력했다.
대원사를 오가는 불자들의 여유로움이 우릴 느긋하게 했다.
절 바로 앞에 위치한 깔끔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화대종주의 꽃? 가장 기다리고 고대했던 순간이다.
화대종주 완주, 해물파전, 막걸리!!
이 기막힌 조합 앞에 슬슬 기분이 그네를 탄다.
뽀얗고 시원한 막걸리 가득 채워 우리 셋, 술잔을 부딪히며
“화대종주 완주 파이팅!!! 하하하~~”
1년 동안 금주 중인 이계양 씨의 술잔 속 우윳빛 막걸리는??
깔끔스런 주인의 손끝에서 나온 들깨 옹심이로 화대종주 완주를 기념하는 자축파티를 융숭하게 마쳤다.
화대종주 후렴까지 마치고 나니 한 해 동안 열심히 지은 농사를 가을걷이한 듯 홀가분하였다.
집으로 가는 노선은, 대원사 후문(화대종주 종점)~대원사 정문~버스정류소~진주시외버스정류소이다. 꽤 먼 거리인지라 시간 절약과 피곤한 상황을 고려해 택시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 타자마자 우리 셋은 곧바로 잠에 빠졌다. 1시간 남짓 걸려 진주시외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린 아들이 이미 예매해놓은 광주행 17:00, 아들은 17:15 서울행 버스를 타고 각자 귀가했다.
엄빠와 함께한 화대종주!
아들의 지난한 임무가 마침내 끝났다.
“엄마~ 화대종주 또 하실래요?”
“아니 안 할 거야.”
못 찾은 답은?
“……”
첫댓글 마지막 사진의 핼쓱해진 얼굴이 고단했던 여정을 말해주는듯요.
산꾼이라면 늘 꿈꾸는 화대종주는 아무나 할수있는 도전이 아니어서 완주 성공만으로도 대단한 걸 해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됩니다.
더구나 삶의 전부랄수있는 가족과의 함께라니.
아마 마음창고가 한결 더 채워졌을듯합니다.
내친김에 설악산 봉정암 도전은 어떨런지요.
대원사 앞 화대종주 인증샷! 을 보며 지금껏 고생하며 보람된 발걸음들도 같이 느껴져 감동~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