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의 이 세상 소풍＜브런치 스토리에서 옮겨옴＞

[운산/최의상]

천상병 시인의 이 세상 소풍

천상병 (1930-1993)

by칼란드리아Apr 10. 2025

천상병 (1930-1993)

이번 회에 살펴볼 시인은 천상병이다. 천상병 시인을 연재의 어디쯤에 넣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이는 그가 태어난 것이 1930년이며, 1940년대 후반부터 시 창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를 연재의 중간쯤, 적어도 신경림이나 김지하 시인의 전후에 넣어야 했을 것 같지만, 연재의 뒷부분으로 뺀 것은 그의 시가 갖는 독특함 때문이다. 또한 천상병과 기형도는 원래 연재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했다가 나중에 추가한 시인이기도 하다.

천상병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시 「귀천」은 아마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은 제목은 몰라도 이 시의 앞이나 뒷 구절을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 외에도 그의 시 중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들이 많은데, 이 시들에 대해서도 아래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그의 시 작품 몇 편으로 그를 평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천상병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독특하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가 순수하며 때론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을 달관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기인'으로 불릴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그의 삶과 그의 시는 대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가 시를 쓴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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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천두용과 김일선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본인이 기억하고 있던 것으로서, 그의 호적에는 출생지가 ‘창원군 진북면 대터리’(현 마산시 진북면)로 기록되어 있기에 출생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의 기억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1934년~1940년) 귀국하여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는데, 그래도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1940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소학교를 거쳐 치바현 아와중학교에 다니던 중 해방이 되어 1945년에 경상남도 마산(현 창원시)에 정착하였으며, 마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마산중학교 재학 시절에 그는 유치환과 김춘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천상병에게 시를 지도하였으며, 천상병의 시가 문예지에 실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949년에 시 「공상」이 『죽순』 11집에 게재되었고, 「강물」이 『문예』지에 발표되었다. 이렇듯 그는 이른 나이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은 「공상」의 전문인데, 절벽을 통해 그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절망감을 표현하였다. 이 시는 10대 후반에 쓴 것으로서 그의 후기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지지만 자유에 대한 그의 갈망은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이후 그의 시집에 다시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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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한 그 절벽 위에
나는 서 있노라.
그 밑은 까마득한 허공,
그 위는 끝없는 하늘.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리라.
그러나 나는 인간,
날개가 없노라.

꿈에도 날개가 없어
허공에 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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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초기에는 미군 통역관으로 6개월간 근무했으며, 1951년에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시인으로 등단했으니 굳이 문과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상과대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 그는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인 『처녀』를 발간했다. 또한 1952년에 『문예』지에 「갈매기」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등단을 인정받았다. 이 외에도 『문예』지에 여러 편의 시와 평론을 발표함으로써 평론가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고, 꾸준히 평론을 발표하였다. 시인으로서 순수함을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평론가로서는 매우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의 비평이 다른 사람들도 수긍할 만한 것이었기에 논란은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갈매기」 전문이다. 이 시에서의 갈매기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새'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그리움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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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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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1954년, 4학년 1학기 때 학교를 중퇴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후 그는 『현대문학』지 집필, 외국도서 번역 등을 하였고, 1964년부터 2년 간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실장으로 일하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로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그는 서울에서 김관식, 이현우 등과 어울렸고, 일정한 거처가 없이 살았는데 그가 기인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67년, 천상병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어 6개월 간 수감되었다. 이는 박정희정권의 간첩조작사건으로서, 그의 술친구 중 한 명인 강빈구가 동독에 갔었던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또한 강빈구로부터 술값을 약간 받은 것을 간첩으로 받은 공작금으로 날조한 것이었다.

천상병은 기소유예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신문 당시 전기고문 등 고문의 후유증이 평생 남게 되었다. 이는 그에게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갖게 하였다. 한동안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아 그가 계속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0년에 문우인 김관식이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시 「김관식의 입관」을 썼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귀천」을 『창작과비평』지에 발표하였다. 그가 극심한 고통을 받은 직후에 이 시를 썼다는 점에서 그의 초월적인 마음과 염원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은 이 시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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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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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거처가 없이 떠돌던 그는 행려불자로 오인되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러한 소식이 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그는 어디선가 객사했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지인들은 그의 작품들을 모아 유고시집인 『새』를 조광출판사에서 출간한다. 

천상병의 생전에 출간된 유고시집 『새』 초판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8221876

이 시집에는 '새'라는 제목이 붙은 시가 여섯 편, 부제로 붙은 시가 두 편 등 총 여덟 편의 시가 '새'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래서 「새」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시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동일 제목의 시 중 한 편을 옮겨 본다.

이 시에서도 「귀천」과 유사하게 죽음 이후의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사후 모습을 새에 투영하였다. 그러나 하늘로 돌아가는 대신 지상에 남아 슬픔과 기쁨을 노래한다. 어쩌면 이는 그가 하늘로 돌아가기 전의 모습을 그린 것일 수도, 하나의 의식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렇게 울고 난 후에 하늘로 돌아가고자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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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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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신병원에서 그를 알아본 의사에 의해 그의 생존 소식이 알려졌고, 지인들이 그를 확인하여 퇴원시켰다. 입원 중, 퇴원 후에도 그의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아 여러 사람들에게 의지하였는데, 그러던 중 친구의 동생인 문순옥을 만나게 된다. 문순옥은 천상병을 오랜 기간 간병하였으며, 그들은 1972년에 결혼하였다. 

천상병 시인과 부인 문순옥.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tlsehd001/223715589184

결혼 후 천상병은 정착생활을 하였지만, 그의 기이한 행동은 계속 이어졌다. 거의 매일 지인들에게 술값을 빌려 (사실 상 그냥 달라고 하여) 술을 마셨다. 더구나 일정한 수입이 없었던 터라 생활고에 시달렸는데, 이에 그의 친구인 강태열 시인이 돈을 빌려주어 1985년에 인사동에 찻집 "귀천"을 열게 되었다. 

이 찻집은 둘이 같이 운영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부인 혼자 운영하는 셈이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문순옥이 혼자 운영하였는데, 2010년에 문순옥이 세상을 떠난 후에 문을 닫았다. 찻집 '귀천'은 나도 1990년대 후반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당시 천상병을 기리는 많은 팬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었다. 

현재는 인사동에 문순옥의 조카가 운영하는 귀천 2호점만 운영되고 있다. 여담으로 파주 헤이리에는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천상병문학관 겸 귀천 3호점이 있다.

문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전통찻집 "귀천"의 내부.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tlsehd001/223715589184

그는 1979년에 『주막에서』(민음사)를 비롯해서 1984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오상), 1991년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도서출판답게)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또한 1992년에 동화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를 비룡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술을 마시며 지내다가 결국 간경변으로 1993년 4월 28일에 의정부시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의정부 시립공원묘지에 안치되었으며, 2010년에 부인이 죽은 후에 합장되었다.

문순옥은 천상병의 사후 100일째 되던 날에 천상병의 유고시집인 『나 하늘로 돌아가네』(시인생각)와  자신의 산문집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를 출간하였다. 

이외에도 2018년에 평민사에 『천상병 전집』이 발간되었으며, 2003년에는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이 추서 되었다.

현재 천상병을 기리는 여러 기념사업이 있는데, 그가 말년을 보냈던 의정부시에서는 그의 기일 무렵에 천상병 예술제를 개최한다. 또한 (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에서는 그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천상병 시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는데, 어린이들을 위해 '천상병 동심 문학상'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전국 여러 곳에 그를 기리는 기념관, 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강화도에 조성된 귀천 공원 천상병 동상. 이미지 출처: 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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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의 문학 세계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고통을 넘어서는 독특한 순수성과 초월성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가난, 순수, 달관, 자연, 동심 회귀 등의 주제를 간결하고 천진한 언어로 노래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각박함 속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과 위안을 제공한다. 이것이 그의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일 것이다. 특히 그의 삶을 알고 그의 작품을 읽는다면, 어려운 삶 속에서 그러한 작품들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분명 그는 힘든 삶을 살았다. 가난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다고 하여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할지언정 당당했고, 자신의 가난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술값을 빌리면서도 비굴하지 않았다. 그는 '물질적 빈곤이 정신적 풍요를 가져온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렇다고 가난이 힘들다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가난에 대한 그의 인식은 그의 작품들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나의 가난은」이나 「소릉조」를 들 수 있다. 가난은 그에겐 숙명이었다. 하지만 가난 속에 그의 삶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나의 가난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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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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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가 갖는 특징 중 하나는 '순수성'이다. 그의 순수성은 그의 시 전반에 나타난다.  또한 그의 시를 보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마치 동시처럼 천진난만함이 돋보인다. 특히 그의 시어 중에 하늘, 새, 구름, 꽃, 이슬 등 자연물을 사용한 것이 많은데, 이들은 각기 상징성을 가지면서도 순수성을 부각하는 효과가 있다. 그의 시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은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동심을 가진 듯한 그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대표작인 「귀천」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원래 있던 곳인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 세상을 잠시 '소풍' 간 것으로 여겼다. 이는 종교적 영향일 수도 있지만, 삶에 대한 초월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앞서 보았던 「갈매기」나 「새」를 비롯해서 그의 시에는 새가 많이 등장한다. 그가 '새'라는 제목으로 쓴 시는 총 일곱 편, 부제까지 합하면 총 열한 편의 제목이 있다. 이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자유에 대한 그의 갈망을 비롯해서 그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가난을 받아들이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가 결혼 후 정착 생활을 하기 전까지 그는 종종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꼈다. 그의 생활 자체가 불안정했기도 했지만, 고문 후유증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들국화」나 「갈대」등에 표현되었다.  특히,「갈대」는 1951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1979년에 출간된 시집 『주막에서』에 처음 수록되었다.  20대 초반에 썼던 시를 40대 후반에 다시 옮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음은 「갈대」의 전문인데, 이 시에서 그는 자신이 갈대와 함께 고독하게 서 있다고 하였다. 화자의 심경이 자연 속에 홀로 있는 갈대와 연결된 것이다. 또한 이 시는 지난 번에 보았던 신경림의 동명의 시와도 유사성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천상병과 신경림은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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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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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반 문인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이 기인으로 알려진 이들과도 교류하며 같이 작품집을 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89년에 이외수, 중광과 함께 펴낸 『도적놈 셋이서』다. 그는 1988년에도 간경변으로 춘천의료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이외수가 그를 찾아왔다. 이를 계기로 둘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도적놈 셋이서』표지. 이미지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9794353

이 책은 세 사람의 시와 에세이를 각각 엮은 것으로서 당시에 인기가 있어서 절판 이후에도 『신 도적놈 셋이서』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는 모두 절판이다. 여담이지만, 천상병은 1993년, 중광은 2002년, 이외수는 2022년에 타계하였다. 

2014년에는 은평한옥마을에 이 책의 이름을 딴 '셋이서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이곳에서는 세 사람의 작품과 유품을 전시하였는데 아쉽게도 2024년 12월에 운영을 종료하였다.

'셋이서 문학관' 전경.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sonjson/223670745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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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현대사에는 많은 사건이 있었고, 독재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많은 시인들이 현실 참여를 강조했고, 사회 운동에 나섰다. 

천상병 역시 그러한 독재와 강압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의 '이 세상 소풍'은 끔찍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격동에 휘말리는 대신 거기서 벗어나 순수 서정의 세계로 향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들이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시를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시 세계를 관철시켜 나갔고, 이에 시문학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시는 대체로 짧지만 간결하면서도 아름답다.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러한 점들이 그의 작품이 현재도 많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현재도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은 그의 시어가 독자들에게도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나아가 그의 시들은 궁극의 정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 이후로는 그와 같은 시인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설사 나온다 해도 그와 비교될지언정 그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시대적 비극과 개인적 고통, 그러면서도 이를 이겨낸 정신적 승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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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천상병, 『천상병 전집:시』, 평민사, 2018

천상병, 『천상병 전집:산문』, 평민사, 2018

문순옥,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청산, 1993

천승세, 『천상병을 말하다』, 도서출판답게, 2006

고영직, 『천상병 평론』, 도서출판답게, 2007

정유선, 『천상병의 시 연구 무욕과 자유의 사이』, 국학자료원, 2016

홍금연. (2004).「천상병의 시세계 -시에 나타난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중심으로」. 語文學報, 26 , 187-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