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맘때면 더웠는지 기억엔 없다. 하긴 어제일도 다 기억 못하는데, 일년전이나 그보다더 오래된일을 기억하기란 쉽지않다. 아니,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제, 초저녁에 이웃에 사시는 권사님이 방문했다. 절편 한팩을 들고서. 그분은 빈손으로 오진 않는다. 떡이며 비싼 참기름도 가저오신다. 나는, 그냥 받기만 한다. 뭐 그분 형편이 나보다 나아서 일수도 있고, 나눔을 강조하는 신앙심까지 더하면 받아주는 선심도 필요한것 아닐까. ㅎㅎㅎ. 염치가 무치다. 내가 이런사람 맞다. 10시가 넘을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때론 동문서답이었지만 그걸 지적할 생각은 없다. 그분, 귀가 많이 어둡다. 못듣는 사람이나 듣고서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나 크게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니까 그리 부담은 없다. 그럼에도 잘 못듣는 사람과의 대화는 힘이든다.맥이 빠진다. 못알아듣는게 확실한대도 그냥 넘어간다. 기만이다. 아니, 이해일수도 있다. 우리의 대화가 꼭 알아들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시간 때우기라면 말이다. 나이 먹는다는게 이런 것일까. 나만, 내 얘기를 하면 그것으로 된다.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거나 말거나 크게 다를것도 없어서다. 와 이럴수도 있는것이다. 이게 어쩌면 내가 사는 세상이 될수도 있다. 아이들과도 사실은 이런 지경에 와 있다. 아이들 말을 내가 잘못 알아듣고 있어서다. 되물으면 친절한 답은 이미 없다. 그냥 지말을 되담아 간다. 지금 이러고 살고있다. 언제까지 일까. 식사를 챙기면서도 '언제까지인가요'를 반문하고 있는 중이다. 소박을 지나 허접한 밥상을 챙기며 하는 혼잣말이다.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그럴만해서가 아닐까. 하루 하루를 버티기가 버거운 사람은 그만 끝나길 바라는게 당연하다. 삶이 참 고되다.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다. 여행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 맛있는거 누가 사양하겠는가. 좋은 옷 비싼 옷, 나도 입어보고 싶다. 그냥 내가 감당할 능력이 안되니까 처다보지 않는 것 뿐이다. 딴세상 사람들의 물건을 처다보며 가슴앓이를 할 필요까지는 없지않는가. 잡초를 화분에 심어놓고 태평할수 있다면 적어도 내것과 내것 아닌것을 구별할 정도는 된거라고 착각아닌 착각도 하고있다. 믿음이 있던 없던 기독교인으로 수십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천국을 바라고 있다. 내 공로가 아닌, 은혜로만 간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의심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정말, 은혜라는 보자기는 크고도 튼튼하고 질긴 것일까. 고슴도치 가시가 박혀있는 나 조차도 싸맬수 있을 만끔? 은혜라는 카드는 내 마즈막 카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