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허황된 사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들에 대해서 사실 잘 안다고 할수는 없는것 같다. 어지어찌해서 결혼을 했고,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고 참 잘했다 싶긴 하지만, 자신의 가정을 최선을 다해서 꾸려가고 있는 듯 싶어서 아주 아주 다행이라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들의 한숨 소리는 가슴 철렁이게 한다. 아들의 삶이 고단해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누군들 삶이 고단하지 않겠는가 싶지만, 우리 아들도 고단하고 버겁게 살고있다. 스트레스를 숨기기위해 쓸대없는 과한 지출을 하고 있을을 볼때면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아들은 집이 없다. 집 없는 설음은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단칸방을 전전했고, 이사를 하고나면 또 다음 이사처를 걱정해야 했고, 이 모든게 내 몫이었으니까. 아들은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잊었는지 반면교사가 전혀 안된듯 하다. 아니면 자기 아내를 너무 과하게 신뢰했을까.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게 이런 저런 걱정이 있어서는 아닐게다. 이미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났다고 인식해왔는데, 아들 걱정은 아들이 하면 그만이고, 내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도울수 있는것도 아닌데, 세삼 걱정 때문은 아니다. 그냥 잠이 안왔을 뿐이다. 불을 껏다 커다를 반복하는 순간 새벽 2-3시가 지났다. 정작 잠이든것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알람을 꺼고서도 못 일어났고, 알람이 꼭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럭저럭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했는데 8, 40분이 지나고 있었다. 알람은 7시에 울린다. 그러니까 1시간 반을 넘게 다시 잠들어 있었다는 얘긴가. 화들짝 일어나서 tv를 켰다. 성서학당은 이미 반을 지나고 있었다. 처음있는 일도 아니다. 늘 그렇다. ㅎㅎㅎ. 사실 듣고서도 잊어버리는 것과 듣지도 못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있을까. 정말 뭐가 다를까? 그걸 알면서도 이웃 권사님에게 보청기를 권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럽다. 잘 안보여서 안경과 돋보기를 번갈라 쓰는것도 번거롭고 귀찮고 불편하다. 안들리는 불편은 오직할까. 아니, 나 역시 잘 듣는다고 말할수 있을까. 잘 못듣는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무척 힘이 든다. 내 말을 알아듣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게 에너지 소비가 많고 신경쓰여서다. 하나님은 어떠실까. 못보고 못듣고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섞음까지 덕지덕지, 켜켜히 고슴도치 거죽으로 무장한 우리들을 용케도 참아주시지 않는가. 그런대, 갑자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형편없는 인간을 겯에 두려 하시는 것일까? 사랑하려 하시는 걸까? 참아주시는 것일까? 하급동물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을 뭣때문에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것인지,,, 역시 은혜인가.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할말이 없는 것일까. 그냥 봉제인형이 훨씬 낫지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어제, 아들집에서 쭈꾸미 볶음을 먹고난 소스를 버리지 못하고 싸들고 왔다. 해장국 국물도 가지고 왔다. 아까워서 였고, 들고오면 한끼 먹을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주가끔이지만 밥도 가저올때도 있다. 상해서 버리게 될까봐서다. 이런 나를 하나님은 어찌 보실까. 탐심이 전혀 없다고, 그냥 아까운 마음에서라고 봐주시기는 할까. 콩나물이나 숙주를 조금 첨가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한두끼가 될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매운걸 잘 못먹는다. 다 매운 음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