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바닥에 내려놓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묵념하는 분 눈시울이 붉은
이유를 우리는 압니다.
연일 이어지는 슬픔에
+ 희생된 분들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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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메너리즘을 깨는 날입니다.
저도 망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 버벅대는 실수에 가벼이 여러분
편해졌으면 합니다.
제 코도 석자 吾鼻三尺 주제에
앞에 서 있자니 몹시 부끄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反面敎師, 他山之石을
여러분도 잘 아실 줄 압니다.
인문학 키워드
'나와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목공귀재'의 수업의 연장선입니다
"누군가에게 이익을 준다~"입니다.
내 言行이 과연 그러한가
省察하는 화요일 감사합니다
신영복 (1941 ~ 2016.1.15)(74세)
"샘터 찬물"입니다.
36,쪽
쇠귀 낙관옆에 牛耳가 보입니다.
牛耳讀經의 牛耳 입니다.
아호 "쇠귀"에
잠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겸양의 대가이신 一두 (좀 두 )
정여창 아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벌레 蟲 충자가 2 개 들어간 일(두), ,
정여창의 고택,
함양 남계서원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재입니다
거기에서. 오래 전 그 날 '일두'에
저는 아연실색 망연자실 했습니다
자신을 한 마리의 좀,, 좀 벌레로 칭한
현판을 보다가 정여창의
겸양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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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이 아닌, 상대를 흠짓내는
말에 허유가 귀를 씻듯
귀를 씻고 싶은 마음을 ....
여러분도
갖어 봤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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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번째 獄中歲暮,
저로서는 낯익은 옥중서한이 보입니다
1988년 무기수에서 8.15에 가석방
부모님과 居하다
아버지 신학상님 돌아가신 후
22개국 1년 기행
[더불의 숲]은 중앙일보에
1년 연재 되었습니다
해박한 지식 유장한 필력에 압도
그 깊이를
저는 쉽게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쇠귀 우이 신영복 선생님의 '샘터 찬물'에
집중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20년20일 우리의
어둡고 엄혹한 역사에
23년 7월 안갯속이 아닌 밝은 미래가
보장되었는지 싶습니다.
제가 30대에
소장하고 있는 선생님의 40대 모습
한 장을 보여 드립니다
諸行無常입니다.
無常이 보입니다.
남은 날이 짧습니다.
저는 30대에 '감옥안의 청년'을 생각하면
형언할 길 없습니다.
박경리씨는. "사마천과 살았다!", 했습니다.
상상불허입니다.
宮刑에도 자결하지 않았던 사마천과
박경리씨가 살아낼 수 있었듯이 !
저는 20년 옥바라지한 부모님 신학상님은,
어떤분이었을까~~
필설로 형언이 쉽지않습니다.
'죽은 아들'을 껴안은 성모님 마음으로
상상해 봤습니다.
그 마음은 피에타 상에도
있습니다 .
내 아들이 죽었다면,,,,
4.16 세월호
이태원의 젊은이
내 아들. 내 딸의 일로 미루어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신영복의 20년으로,,
저는 자중자애 했습니다.
1971년
서울대 대학원생 全身 火傷 일그러진 얼굴
서 승 교수 [옥중19년]ㅡ 진실의 힘 출판 ,,
역시 권력자의 만행
일맥상통합니다.
신학상님은 60세에 아들을
옥에 보내고
옥바라지 행운도 기적입니다.
그렇지 못한 무기수도 있습니다
8 여 년 아들과 지내며
신학상님은 87세 [사명당] 著述 완성 후
이듬해 홀연히 가십니다
신영복샘은
출소 후 [사람아! 아 사람아]를
번역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獄에 넣어주신 책이 수 천 권이라함이
[감옥으로 부터 사색]
에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람아! 아 사람아]는
문화대혁명 광풍으로 권력욕에 권력을위해서
4.000년이상의 중화문명을 약탈 파괴하는 눈물범벅 애정소설 입니다.
휴머니즘의 극치로서,
주인공은 공교롭게 '20년'을 서로
사모하는 애틋함은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착각 대입하여 , 저는 탐독 했습니다
실제 선생님께서도 주인공에
통감 절감하시고 자신의 敍事이듯
혼연일체로 번역하셨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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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페이지,
'샘터찬물'을 유심히 봅니다.
글씨가 안정적입니다.
감옥에서 이룩한 民體
경지에 이른 필체 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글자의 균형을 언급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친근감을 느낄 수 있고
나도 쓰면 쓰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수수한 글씨를 쓰고싶다"고 하셨습니다.
全國 기업. 기관에 현판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 윤 ㅡ. 정부는 관공서의 신영복체를
교체 중이라 합니다.
획이 강조된 특유의 필체에
저는 두려움과 떨림을 갖습니다.
"샘터 찬물"에서 저는 여명
'첫 새벽'을 연상합니다.
새벽 경이로움은
정결함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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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잃고 버려둔 샘터 찬물에 저는 악수를
청하며 묻습니다
1.
제가 맑은 정신을 ,
깨우기 위해 샘터를 언제 찾았는가?
2
나의 어지러운 꿈을 찬물에 헹군적이 있는가?
3
찬물같은 참신한 언어로
'마음을 열고' 긍정 대화를 하는가?
4
도사리는 이데올로기에 찬물을
끼얹을 용기는 과연 있는가 ?
찬물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샘터를 멀리한 저를 압니다
나의 샘터 찬물은 무엇일지 ?
나태로 안주한 저에게 회초리같은
찬물이 필요한 아침입니다.
/////
여러분도 저도 알아차립니다.
샘터 찬물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찬물 샘터은 제 안에 있으며
각자 우리 '마음가짐'입니다.
'흠짓"내는 言行에 鄙陋해
질것인가 !
다른사람을 빛나게 하는 덕담으로
힘을 줄것인가 !
'마음 가짐' 입니다.
"What would life be if we had no courage to attempt anything ?"
-Vincent Van Gohe -
"아무것도 시도 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 어떻게 될까요?"
빈센트 반 고흐 말입니다.
달콤 쌉싸름한 일상에
이 시간 靈感을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를 돌아보는 단초를 마련해주시어
감사합니다
말씀 들어주셔
감사합니다.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첫댓글 낼 主日, 월요일 약속이 연이어
아기편지로. 발표 교안을 대신
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편지 글에 흡수되어 더 말할 것이 생각 안납니다. 샘터찬물에 가까이 해야겠군요.
와우~! 네 글자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끄집어 내시다니.
얼마나 많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셨을련지요.
화요일을 기다려 봅니다~^^
더욱 기대되는 화요일^^
나의 어지러운 꿈을 찬물에 헹군적이 있는가 라는 자문에 눈을 감습니다.
맑은 정신을 갖고자 혹독하게 담금질하던 그 어느때가 생각나서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을 마리아의 진지한 얼굴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 짓습니다.
훌륭합니다.
정신차려! 읽지 않으면 혼날 것 같습니다.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저희 교회입구 머릿돌에 쓰여진 '무진교회'도 신영복 선생님 필체입니다.
와, 신영복 선생님의 필체..유심히 보렵니다.
다시 봐도, 다시보니 더욱, 유모어가 미흡한 재미없는 글 입니다
심각한 現世에 재미가 부족한
글에 , 기대하신다니 고마움
민망함 범벅 ㅡ
제 한계가 그렇습니다.
저는 유쾌한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 미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