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 / 정태헌
근교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저편 하늘에 먹장구름 한 장 흐르는 게 보였습니다. 담양 ‘죽녹원’ 이정표가 보여 대뜸 대숲으로 향했습니다. 소나기와 대숲, 불현 듯 지난해 여름이 가슴께로 풍덩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예 댓잎을 밟고 비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대숲 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빗발이 차츰 굵어지더니 그날처럼 장대비가 됩니다. 빗줄기는 정수리에 떨어져 영혼 가장자리를 적시고 또르르 가슴께로 흘러듭니다. 댓잎에 듣는 소소(蕭蕭)한 빗소리, 지난해 그날로 손목을 잡아끕니다.
그날 아침,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올여름은 자식 집에서 여름을 나자고요. 더위 철에 혼자 지내다 섭생이 부실하여 병약한 몸이 덧날까 봐 걱정되어서였지요. 하나 어머니는 제 말을 완곡히 물리쳤습니다. 시골이 편하다는 어머니의 속내를 전들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 어머니 때문에 늘 애면글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가시고 삼 년이 지났건만 그리 고집하며 혼자 시골집에서 지내셨답니다. 적적하면 대처로 오시라고 해도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그도 하룻밤 목기가 무섭게 내려가겠다고 아이처럼 조릅니다.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입니다. 물론 집안 대소가와 이웃, 평생 발붙이며 살아온 터전이 낯설고 물선 도회지와 어찌 비견이나 하겠습니까.
게다가 그 해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정신이 깜박깜박 놓을 때가 있었습니다. 명원에 가서 단층촬영을 하고 보니 혈류성 뇌질환이라는 겁니다. 연전에 암 수술을 한 바 있는 어머니는 이제는 죽을병이냐고 묻기에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오는 가벼운 증세라고만 했습니다. 걷기에 좀 불편하고 기억을 잘 못 할 뿐, 외관으로는 큰 이상이 없었으니까요. 약을 들면 낫는다고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약을 챙기고 반찬을 마련하여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아침에 가겠다고 연락을 드렸더니 동구 밖 미루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 뜨자마자 나와 기다렸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멀리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키 큰 미루나무 밑에 놓인 조그마한 물체에 불과했습니다. 뜨거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목젖이 아렸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들어서자 뒤란 대숲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전 오셨을 때 대숲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 오후에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겠다고 하더군요.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놓았기 때문에 마당까지 들려왔습니다. 깊은 땅속에서 퍼 올린 물에 밥 말아서 풋고추 된장에 먹고 나니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 산뜻하게 배가 부른 적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시골집 마루에서 어머니와 둘이서만 먹는 밥은 갓난이 적 어머니의 젖 같았습니다. 점심을 마친 수 어머니는 자꾸 뒷문 쪽으로 눈길을 보내셨습니다. 뒤란 둔덕엔 대숲이 있는데 그날도 어머니는 그게 마음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댓잎이 떨어지면 뒤란은 지저분해지기 마련인데 어머니는 그것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마당도 마당이지만 뒤란이 정갈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아무리 바빠도 안방을 닦듯 뒤란을 쓸어 정갈하게 해놓아야 마음을 놓는 어머니였습니다. 대숲이 있는 집은 바람에 스치는 댓잎 소리가 수런수런 귓가에 들려야 사람 사는 집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대숲이 우거지면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들지 않아 우중충하고 답답해 보입니다. 사람을 사서라도 대숲을 솎아내야겠다고 했지만 농번기라 이번에도 여의치 못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찜통 같은 더위에 바람 한 점 없는 대숲으로 들어가 대를 솎아내는 일인지라 남의 손 빌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전에야 어머니가 손수 했던 일이었지요.
내친김에 제가 나설 수밖에요. 숫돌에 낫을 벼려 들고 뒤란 대숲으로 올라갔습니다. 별 년간 죽순을 뽑지 않아 빽빽해서 바람 한 점 들지 않았습니다. 삼백여 평 되는 대숲, 두어 시간 낫으로 대를 솎아내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그렇다고 중도에 멈출 수 없는 일, 바람 끝이 습한 길로 봐서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아 손을 부지런히 놀렸습니다. 어렵게 간벌을 끝내고 뒤쪽을 돌아보자 대숲 안이 환하게 밝아왔고 바람의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뒷산 골짝을 타고 흐르던 바람이 대숲을 스치며 들어왔습니다. 비로소 댓잎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귓바퀴 안으로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툇마루에 앉아서 시종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는 댓잎 소리와 댓바람을 맞이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습니다.
“좋다, 바람 통허니. 살아온 게 저 바람이었지 싶다, 막혀 부대끼지 말고 통하고 살아야 했는디. 이적 살아온 죄도 저리 풀어졌으면 좋것다만….”
어머니의 그 말씀은 나에게 길 하나를 또 만들어 주었습니다. 살아가는 대목 대목마다 죽순을 뽑고 잔대를 간벌하듯이 바람이 통하도록 마음 밭도 솎아내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 삿됨을 솎아내면, 얼크러진 한량없는 내 속 뜰에도 저런 바람의 길 하나 생겨날 것만 같았습니다. 대숲에서 돌아서서 어머니를 망연히 바라보았습니다. 생의 끝자락은 단단한 호두 껍데기 같은 아집, 죄와 고통을 풀어 그 너머에 있는 진실과 만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목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문득 들었습니다.
대숲이 바람에 술렁거렸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후드득후드득 소나기 한 두름 쏟아졌습니다. 땀에 젖은 몸이 다시 비에 젖었습니다. 팔순의 어머니는 툇마루에 앉아서 물끄러미 대숲을 바라보고 있고, 장년의 자식은 댓잎 끝에 취우(翠雨)되어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순간,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어머니의 이마를 스쳐 가는 게 어른어른 보였습니다. 그렇게 갔습니다. 지난해 여름은.
그리고 자식은 여름 대숲에 다시 서 있는데 그 어머니, 댓잎 스치는 마람처럼 저편 세상으로 가신 지 반 년이 넘어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