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교육은 학벌과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초등학생까지 입시 준비를 위해 학원을 찾는 등 사교육이 과열되면서 학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겨레신문 조사에 의하면 학원, 과외 시장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고 이제는 2살부터 학습지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교육 의존도가 커지면서 학원과 과외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른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고교 졸업생 수와 대학 정원의 역전에도 불구하고 입시학원에는 여전히 재수생들이 몰리고 있고 고액 과외 시장 역시 강사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대목을 누리고 있다. 10여 년 전 태동한 학습지 시장도 규모가 4조원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일까? 그것도 한 원인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학벌과 출세 지향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학벌은 곧 성공과 출세 보장이라는 등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형적 사회구조가 결국 학교교육을 무너지게 했고 사교육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교육이 잘못된 목표에 초점을 두다 보니 교육의 본래적인 기능을 상실한 채 수요자의 욕구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은 교육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교육이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효과적인 도구고 사용되고 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교육부 장관 하나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한 정부 5년 기간에 장관이 6개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교체되는 부끄러운 상황이 계속되어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교육의 잘못된 뿌리가 깊고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랜 유교적인 구조 속에서 농공상을 차별하는 문화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고 양반과 상놈의 사회 구별 의식 역시 암암리에 지속됨으로 자연스럽게 외형주의와 학벌주의라는 효과적인 도구를 생산하여 기득세력이 계속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중심에 교육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교육이 만들어낸 자업자득의 쓴 열매를 우리는 현재 맛보고 있다. 옛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이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기업과 사회와 단체와 공공기관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리더들의 생각 구조가 이미 능력보다는 학벌과 배경으로 큰 벽이 형성되었기에 그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기에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단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요구이다.
당장 나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의식구조가 결국 온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있다. 잘못된 구조의 전환이 없이는 처방을 내려도 잠시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여 결국은 하늘에 망치를 치는 격이 된다.
구조 전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을 바꾸려고 해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기업과 사회를 지배하는 책임자를 새롭게 교체하려고 해도 새로운 사람이 준비가 안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로운 사람을 교육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금방 달라지기 어려운 교육의 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잘못된 교육으로 다져온 연륜이 있다. 지금까지 행해온 잘못된 교육만큼 새로운 노력과 기다림과 수고로 새로운 교육의 틀을 짜서 미래를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부터 이 일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변화될 사회와 나라를 꿈꾸면서.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10~20년이 지나면 이루어진다는 마음을 품고 씨를 뿌리는 자가 나타나야 한다. 다음 세대가 먹을 열매를 바라보면서 희생하는 수고로운 농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어차피 변화는 한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교육의 기본적인 생리를 이해한다면 지금이라도 작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은 씨를 통해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교육적인 혜안을 가진 사람이 시작해야 한다. 어차피 역사는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움직인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가장 좋은 대안은 지금이라도 깨달은 바를 즉시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교육을 시작하셨을까? 우리처럼 학벌과 지위를 얻을 목적으로 교육을 시키셨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학벌과 지위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래서 주로 학벌과 지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을 만나셨고, 죄인으로 취급받는 세리와 무식한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우리처럼 엘리트 집단(바리사이, 율법학자, 사제)에서 제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격이 도저히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 제자를 삼으셨고 그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심어 주셨다. 그래서 결국 세계적인 인물로 만드셨다.
교육이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지위와 재물과 세상의 권력과 명예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죄와 죽음과 악에서 이끌어내어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오히려 그런 세상적인 지위와 힘과 명예와 죄와 죽음에 억눌려 그것에 철저한 노예가 되는 사람을 교육을 통하여 만들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다.
예수님은 교육을 통하여 세상에 봉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셨다. 그것을 위해서 교육이 필요했고 교육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셨다. 여기에 예수님의 교육의 핵심이 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이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2-45).
어떤 나라가 좋은 교육을 했는지 평가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얼마나 많은 봉사자를 만들어냈는가를 보는 것이다. 지금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교육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대다수의 높은 직위와 사회적인 지위를 가졌던 사람들은 끝까지 권력을 놓지 못하거나 은퇴했어도 수렴청정과 같은 정치를 즐기면서 인생을 보내고 있다. 아니면 축적한 돈으로 취만 여행을 통해 인생을 즐기거나 경마나 증권, 부동산 등으로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며 인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의가 높은 학력을 소유한 지배층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10~20년이 지나면 이루어진다는 마음을 품고,......"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이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2-45).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