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20대 젠더갈등, 20대에 물어보니…
“대선으로 갈등 심화” 81.8%…“풀어야할 과제” 95.5%
지난 9일 치러진 20대 대선은 26만6883표라는 직선제 개헌 이후 최소 표차로 차기 지도자가 결정됐다는 점 이외에도 20대 남녀의 극명한 표심의 차이 또한 화제가 됐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이하에서 윤석열 당선자가 남성 59.7%, 여성 33.8%의 득표율을 보인데 반해 이재명 후보는 남성 36.3%, 여성 58%의 득표율로 20대에서 성별에 따른 양극화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 군 가산점,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존폐, 페미니즘 등 이슈가 등장하면서 젠더갈등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됐고 이런 상황에서 대선 주자들이 특정 성별들을 득표 전략으로 활용해 젠더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20대는 실제로 이런 젠더갈등 논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20대 대학생·사회초년생44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해보니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젠더 갈등이 심화됐다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1.8%가 대선 과정에서 젠더갈등이 심화됐다고 답한 것이다.
▲'대선기간 젠더갈등을 심화시킨 요인' 설문(복수응답 가능) 그래프
젠더갈등을 조장한 원인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63.6%가 ‘윤석열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선택했고 ‘이대남, 이대녀라는 언론의 이분법적 프레임’(61.4%)이 뒤를 이었다(복수응답 가능). ‘각 후보별 선거 득표 전략’은 41%를 차지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을 문제로 지적한 한 응답자는 “특정 성별을 지지층으로 끌어오기 위한 무리한 공약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식의 공약 설정이 지금의 갈등 심화를 야기했다”고 말했다.
▲'대선기간 젠더갈등을 심화시킨 요인' 설문, 남녀 개별 결과 그래프
그러나 이 원인에 대한 의견에는 남녀차가 극심했다. 남성 응답자의 68.2%는 ‘이재명 후보의 2030여성 득표 전략’을 여성 응답자의 63.6%는 ‘이준석 대표의 선거전략’을 각각 젠더갈등의 심화 요인으로 꼽은 것이다.
이 후보의 득표 전략을 문제로 꼽은 한 남성 응답자는 “일방적으로 남성을 역차별하는 비정상적인 페미니즘을 민주당과 이 후보가 옹호하며 갈등이 악화된 것 같다”며 “서로를 존중하는 올바른 페미니즘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대표의 전략을 문제 삼은 한 여성 응답자는 “여성을 배제하는 공약과 정책 방향에 할 말을 잃었다”며 “이런 대표와 후보를 일부 남성들이 지지하는데 갈등은 당연히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남성 응답자의 31.8%는 ‘민주당의 박지현 비대위원장 영입’을 여성 응답자의 31.8%는 ‘이준석과 박지현의 젠더 대결 구도’를 문제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박지현 영입 논란을 문제 삼은 한 남성 응답자는 “공정과 상식을 벗어난 인사”라며 “민주당이 이준석 대표와의 대결 구도를 위해 박 위원장을 영입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준석과 박지현의 젠더 대결 구도를 꼽은 다른 여성 응답자는 “두 거대 정당의 싸움을 남성대 여성의 싸움으로 정의하는 프레임 자체가 20대의 젠더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여경 도망 논란’, ‘군 급여제도 개편’ 등 다양한 쟁점에서 실제 20대 남녀가 의견 차이가 드러났다.
그러나, 남녀 응답자의 95.5%가 이런 젠더갈등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사회초년생 최모(26·여)씨는 “언론의 이분법적 프레임과 SNS의 발달로 현재 20대가 유독 심한 젠더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교 4학년생 이모(25)씨는 “갈등의 당사자인 세대가 되니 지금껏 양성평등에 대해 받아온 교육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며 “서로를 경멸하고 원망하게 만드는 분열의 정치는 이제 단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스스로, 남녀 불문하고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간주하는 젠더갈등. 정치권과 우리사회, 그리고 윤석열 당선인이 풀어야 할 숙제다.
권대근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