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a
김순희
내 가슴에는 아름다운 문장 하나가 살고 있다. F=ma,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이다. 어떤 운동하는 물체에 힘을 가하면, 그 물체는 가속이나 감속을 한다는 말이다. 이 교과서에 나오는 물리법칙이 말의 옷을 입고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던진 말이 누군가의 삶에 기를 줄 수도 있고, 기를 뺏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저 광활한 우주의 모든 운동을 설명해 준다는 이 공식이 내 말속에 숨어있다는 점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둘째가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온 날, 대학 진학에 대한 이야기가 저녁 식탁 위에 올랐다. 설마하며 펼쳐든 성적표에 적힌 지원 가능 대학을 보는 순간 헛웃음이 터졌다. 사춘기를 겪으며 학업에 소홀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렇다고 다짜고짜 야단을 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었다. 일단 목소리에 참기름을 두르고 입가엔 미소를 지으며 매운 침을 꽂았다.
“○○대학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우리나라에 있기는 하니?”
수업시간에 매일 잠을 자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며 옆에 있던 형까지 가세했다. 재미있는 만화책을 돌려보듯 성적표는 가족들에게 건네졌고 조롱과 핀잔이 쏟아졌다. 처음엔 몇 마디 변명을 하며 함께 웃던 아이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깔렸다. 눈가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머뭇거렸다. 아차, 싶었지만 갑자기 퍼부은 소나기에 속수무책이던 둘째가 울먹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 아이는 입을 닫아걸었다. 웃다가도 나만 보면 얼굴이 굳어지고 말을 걸어도 한사코 나를 밀어냈다. 검은 장벽을 친 아이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뭐가 불만이야?”
“….”
“엄마 글 속의 엄마가 돼 주세요.”
단호하고 냉정했다.
지난날 나도 그랬다. 고등학교 첫 시험성적이 시원치 않았다. 기대 이하의 성적에 내 자존감은 구겨진 종이만도 못했다. 성적표를 우편으로 발송하겠다는 담임선생님 말씀을 듣자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들어앉았다. 그때까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던 내 모습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마음을 읽어주셨다. 밀봉된 성적표를 그대로 보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딸에 대한 아버지의 무한신뢰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는 오히려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쿵!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황망한 나머지 건성으로 사과를 했지만 엄마 글 속의 엄마가 돼 달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널 믿고 있다는 말이면 충분했을 텐데…. 내가 느끼는 말의 온도만 생각했지 아들에게 쏟아내는 내 말의 온도에는 둔감했던 게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둘째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엄마도 저랑 똑같네요. 저도 다른 이의 언어습관이나 어휘선택에 유독 관심이 많거든요.” 내 글을 읽고 둘째가 보인 반응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제 경험까지 들먹이며 내 글에 공감했고, 우리는 말의 온도와 습도, 농도와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힘과 매력에 대해 제법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글에 스펀지처럼 공감을 잘했던 아이의 얼굴이 아프게 어른거렸다. 우울하고 힘든 단어를 접하면 자신도 모르게 우울감이 찾아오고, 활력과 생기가 돋는 단어를 만나면 몸이 곧바로 반응을 한다는 실험다큐도 스쳐 지나갔다. 눈으로 본 단어만으로도 뇌에 영향을 준다는데 하물며 말은 더 말해 무엇 할까.
언젠가 지나가며 슬쩍 던진 아이의 말도 기억의 저편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말씀하실 때 청유형으로 해 주시면 좋겠어요….’ 남편 말처럼 세 아들에게 갑 중의 갑인 엄마였으니 말을 할 때도 문자를 보낼 때도 항상 명령형이었다. 가끔은 품위로 가장한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뱉은 말이 아이의 흥을 돋울 수도, 깰 수도 있다는 걸 몰랐었다.
그날 이후 내 말투에도 변화가 생겼다. ‘엄마 도착, 내려와’ 라고 보내려던 문자를 ‘엄마 도착했어, 내려올래?’로, ‘일찍 자라’ 대신에 ‘아침에 피곤할 텐데 일찍 자는 게 좋지 않겠니?’로 바꿔나갔다. 그러다가도 습관처럼 가슴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올 때는 난감했다. 나를 바꾼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아이에게 쏟아낼 잔소리가 쌓이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버릇도 생겼다. ‘그래, 미소만 보여 달라잖아.’‘어허! 청유형으로 말해야지.’‘글 속의 내가 돼야지.’ 이런 날이 많아질수록 중얼거림도 점점 줄어들었다. 비로소 내 말에도 한랭전선이 물러가고 온난전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날아가던 말끝도 곡선을 그렸고, 늦었지만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용서도 구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아이를 끌어안고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 많았지?’‘힘들었지?’
그러자 둘째의 얼굴에 봄이 온 듯 한 송이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세상은 말로 이루어진 심리적인 세계였다. 나의 입과 눈을 떠난 많은 말들은 타인에게 어떤 힘을 발휘했을까.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간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 그들의 기를 많이도 꺾어놓았을 것이다. 이제, 알 것만 같다. 저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F=ma로 꽃을 피우며 존재한다는 것을.
F=ma는 우주의 언어다.
『수필오디세이』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