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사람의 동기를 소중한 교육원칙으로 사용하셨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그 행동을 하게 만든 동기motive가 있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동기 부여가 잘 안 되어서 그렇다. 동기는 숨어 있어서 잘 파악이 안 된다. 그럼에도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동기를 알 수 있다. 어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급료를 배로 올려준다고 하면 사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아니면 인센티브 보너스를 정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이 학교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떠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업을 잘 듣는 아이에게 사탕과 과자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먹는 것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고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동기 부여는 일시적인 것이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두 가지 동기가 있다. 본질적인 동기와 비본질적인 동기이다. 어떤 학생은 성적이 좋으면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배로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서 그것이 자극이 되어 공부할 수 있다. 아니면 자기의 체면이나 부모님의 강요나 선생님의 매가 무서워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런 동기는 비본질적인 동기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유익하다고 느끼고 흥미를 느껴서 하게 되면 그 동기는 자연스러운 것이요 본질적인 동기이다. 본질적인 동기는 그 일 자체의 내부적인 힘에 의하여 나오지만, 비본질적인 동기는 외부적인 강요나 체면이나 욕심에 의해서 발생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이전에 외딴 곳에서 5,000명 이상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배불리 먹은 것이 동기가 되어서 이번에도 역시 그것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전과 다르게 기적을 행하지 않고 먹을 양식도 주지 않으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여 예수님 곁을 떠났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남아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 것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 때문이지 빵이나 고기 때문이 아니라는이야기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본질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인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 본질적인 동기에 호소하셨다. 물론 제자들도 죽음 앞에서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본질적인 동기를 이해하고서 다시 돌아와 예수님처럼 진리에 희생하는 순교적인 삶을 담대하게 살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하여 움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심어준 본질적인 동기에 의하여 자기들의 사명을 감당했고 끝까지 진리의 길을 갔다.
오늘 우리의 교육 현장도 본질적인 동기로 가득 창 한다. 많은 부분들이 비본질적인 동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그것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미리 공부를 포기하고 시간만 보내게 된다. 본질적인 동기가 사라지고 나니까 결국은 공부할 이유나 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 학교는 본질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런 동기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학교가 찾아야 하고 교육의 중요한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교육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첫댓글 본질적인 동기는 그 일 자체의 내부적인 힘에 의하여 나오지만,
비본질적인 동기는 외부적인 강요나 체면이나 욕심에 의해서 발생한다.
학교는 본질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학교가 찾아야 하고 교육의 중요한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교육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