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이 할 일을 할뿐이죠.” 희매촌 입주예술가 신구경
“학성동 골목길에서 목격한 삶의 흔적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성동 입주예술인 신구경(55세)씨는 약 3년째 희매촌 골목을 지키고 있다. 낡은 공폐가를 개조해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 다도를 할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누구나 편하게 쉬다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은 ‘외갓집’ 이라고 지었다.
원주 학성동 희매촌은 꽤 오랜시간 강원 최대규모의 성매매 집결지로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 학성동은 과거 원주의 가장 번화가인 중앙시장 인근에 위치해 2000년대 초 만 하더라도 호황을 맞았던 지역이었다. 원주역이 폐쇄된 이후 인근 지역은 상권이 위축되고 유동인구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희매촌은 존재하며, 50여명의 성매매 종사자가 존재하고 있다. 인근 유흥업소 종사자들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여성들이 유흥업에 종사하고 있고 시에서 진행하는 희매촌 폐쇄사업은 예산등을 문제로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처음 신씨가 이 골목을 알게된건 20년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낡은 골목을 예쁘게 꾸미고 상권을 활성화 하는데에 도움이 되고자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고, 실제로 목격하게된 골목의 현실은 처참했다. 찢어진 천막은 날리고 있고 사람은 도통 보이질 않는 좁은 골목. 화장실은 고사하고 1950년대 판자촌을 떠올리게 하는, 초저녁만 되도 홍등가 불이 밝혀지는 곳. 이곳에서 미술활동을 한다는것이 신씨에게는 참 난감한 일이었다. 대낮에도 술에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아가씨를 찾고, 심지어는 미성년자들이 늦은시간 희매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까지 목격하게 된것. 원주에 약 35년간 거주하며 이 인근에서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골목에 들어와 피부로 느낀 실태는 더욱 참담했다. 골목 안쪽 슬레이트 지붕 건물들의 잔해를 모두 걷어내니 50년대 목조주택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안에는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쪽방이 존재했다. 성매매촌이 형성되던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는 고스란히 골목안에 남아 있었고 그 안의 아픈 이야기들도 들여다볼수 있었다.
골목에서 작가 활동을 진행하면서 인근 성매매 업주들이 비어있는 상가를 매입해 다시 업소를 운영하려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씨는 해당 상가를 사비로 사들여 작업 공간으로 꾸미고 지역 어린이들의 미술수업과 주민들의 소통공간으로 리모델링 했다.
골목 활성화를 위해서 신씨가 생각한 첫번째 해결책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거리를 예쁘게 꾸미고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를 불러올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였다. 현재는 저녁시간대 직장인들의 미술수업을 진행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해당골목만의 특징을 살려 문화의 메카로 만드는것인데, 성매매 집결지라는 인식탓에 오랜기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 못하다보니 골목 안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매촌이 형성된 한국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근현대사의 전시장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골목의 특성을 살려 역전시장 골목을 문화의 메카로, 역사를 남기며 문화예술이 꽃피는 원주의 작은 인사동으로 변화시키는것이 신씨의 또 다른 목표다.
끝으로 신씨는 “언젠가 이 동네가 새로운 변화를 거듭할때, 우리의 이야기가 당당하고 강한 예술인들의 가교역할로 기억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