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혜의 품에 안기려 화대종주(6) - ”아빠, 엎드려 누우세요.“
저녁 6시에 저녁 준비를 위해 취사장에 들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장터목은 지리산에서 노고단과 함께 가장 붐비는 곳이다. 사통팔달로 등산로가 열려있고, 천왕봉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 남쪽의 시천(矢川) 주민과 북쪽의 마천(馬川) 주민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터였다는 이 장터목이 지금은 등산객들로 날마다 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다 이름값을 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취사장도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곳곳에서 고기 굽고, 라면 끓이고, 밥 짓고, 찌개 끓이고 심지어 부침개까지 부치느라 야단법석, 황홀지경이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준비한다. 지리산의 마지막 밤이니 식사도 근사하게 차려먹고 싶다. 준비한 것은 햇반에 라면을 기본으로 하고 오늘의 별식은 훈제 오리구이이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 무거움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맥주를 오늘 바닥을 봐야 할 텐데 남은 맥주가 많다. 바닥 보기가 어려울 듯하다. 내가 한 잔씩 맞들면 모자랄 테이지만 아들 혼자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래도 최애하는 술인 맥주를 여러 병 마시는 아들이 든든해 보인다. ‘그래, 너만한 때는 많이 마셔도 금방 깨니까. 또 여기까지 오느라 땀 흘리고 애썼으니 마음 놓고 마셔라’ 은근히 부추겨준다. 강하주 씨도 곁에서 한 잔씩 거들어 마시며 흐뭇해하는 표정이다. 꽤 많은 양의 고기를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소비한 에너지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좀 많이 먹더라도 계속해서 에너지 소비할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기도 하다.
식사를 마치고 좀 떨어져 있는 샘터에 가서 마실 물도 챙기고 간단한 설거지도 하고 얼굴도 씻고, 어제처럼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내는 일을 순식간에 하였다. 계속해서 산행객들이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오랫동안 독차지할 수 없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신속하게 볼 일을 마치고 숙소 입구로 돌아온다.
여기서도 9시면 소등하도록 되어 있어서 내일 산행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 한다.
여자 숙소로 향하는 입구에서 강하주의 무릎 보호를 위해 무릎에 근육 테이핑을 한다. 아들과 내가 테이프를 자르고 붙이는 일을 공들여 한다. 내일까지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다리와 무릎이 잘 버텨주도록 비는 마음까지 담아서.
그리고 남자 숙소로 돌아와 바로 옆자리에 아들과 나란이 눕는다. 아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빠, 엎드려 누우세요. 안마해 드릴게요.“ 한다. 엎드려 눕는다. 아들이 어깻죽지에서부터 등, 허리 다리 쪽으로 강하게 약하게 안마를 한다. 그리고 다리와 허리에 파스까지 붙여준다. 시원하다. 몸도 시원하지만 마음은 더 개운하고 시원하다. 누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리겠는가. 그래. 이건 엄청난 호사다. 감사가 넘친다.
”됐다. 이제 내가 안마해 줄 테니, 너도 누워라“
”아뇨, 전 괜찮아요.“ 끝내 눕지 않는 아들의 어깨를 몇 차례 주무르고 두둘기면서
”이 어깨 참,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었다. 아들의 근육 테이핑을 하는데 거들어 주었다. 괜히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다.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 생원의 마음이 이러지 않았을까. 개울을 건널 때 아들 동이의 등에 업혀 가는 허 생원이 새삼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쨌든 아들이랑 이렇게 살갑게 곁에 있을 수 있어 흐뭇하고 든든하고 참 좋다.
내일은 일찍 출발할 예정이라서 미리 배낭을 챙기고 비망록까지를 정리한다.
9시가 되어 소등을 하였지만 하루 일과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며 쉬 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에 비를 걱정하며 출발했지만 비가 그치고 오히려 구름과 안개로 인해 산행엔 더없이 좋은 날씨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앞서고 뒷서며 강하주를 호위하는 가운데 무사히 이틀째 산행을 잘 진행하여 마치니 얼마나 좋은가.
산행 중에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한 가운데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천왕봉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아들과 아내와 이렇게 지리산 화대종주를 성공리에 진행하고 있으니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아들과 화대종주를 계절을 달리 하여 할 수 있고, 아들과 함께 땀 흘리고 짐을 나눠지며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으니 감사가 그지없는 일이다.
내일이다. 천왕봉을 등정하고 내리막길을 걸어걸어 대원사에 이르는 날이.
첫댓글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하는 산행.
교수님! 복받으신 분이 분명합니다^^
아드님의 안마에
몸도 마음도 개운~~~시원하셨겠어요🤩😃😘
정말 만세를 부를 일입니다!
만세만세만만세!!
복 받으신 분, 맞습니다. 아드님도 아버님도 참 멋지십니다 ^^
父子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감사에
흐뭇합니다
행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