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내가 배웠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시조다. 고려시대 시조 치고는 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이조년.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알려져 있다. 봄밤의 서정을 노래한 것이라고도 하고 임금에 대한 충절을 노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작자가 이조년이라는 충혜왕 때 활동했던 문신으로 알려져 있으니 '다정'을 임금에 대한 정으로 해석하는 것이리라. 고등학교 때는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공부한 것이니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외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의문점이 남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려시대 가요는 대부분 지금의 노랫말 가사처럼 사람들의 입으로 구전되기 쉬운 형태이다. 「청산별곡」이나 「동동가」처럼. 한글이 없던 시절이니 사람들의 입으로 구전되어 전해질 수밖에 없었기에 당연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 시조는 고려가요라고 보기는 힘든, 조선시대 중·후기의 시조 형태이다. 물론 이 시조가 실려 있는 게 조선 영조때 편찬된 「청구영언」이라고 하니 오랜 세월 구전되던 것을 편찬자의 관점에서 정리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4~5백 년이라는 그 오랜 시간을 가요도 아닌 시조가 구전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많이 의심스럽다. 설혹 작자가 이조년이 맞다 하더라도 원형과는 많이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리라.
갑자기 고등학교 때 배운 시조를 언급하는 건 지난 주말 하동 벌판에 피어나는 배꽃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배나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배꽃은 내 유년의 기억 깊은 곳에서부터 존재하는 것 중에 하나이니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 과수원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리라. 운 좋게도 보름달이 뜰 무렵 배꽃이 만개하면 멀리서도 작은 바람에 산들거리는 꽃잎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배꽃은 꽃잎이 큰 편이다. 그런 배꽃을 보고 자란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배꽃이 핀 들판은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게 된다.
그런데 하동 벌판 넓은 뜰에 흐드러지게 핀 배꽃은 유채꽃과 꿀벌 불러모으기 경쟁을 하고 있었다. 설마 배밭 주인들이 알고서야 그랬겠냐만 배밭 옆에 유채밭을 조성하다니 작물 재배의 기본에 어긋난다. 꿀벌들이 향이 강한 유채꽃으로만 몰리게 될 것이 뻔하니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유실수, 특히나 속씨식물은 타가수정을 한다. 바람이든 꿀벌이든 나비든 수정을 위해서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 것. 그래서 원예작물학 교과서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는 유실수 중에서 가까이 놓아서는 안 되는 작물들을 분류하고 있을 정도다. 꿀벌이나 나비는 당연히 향이 강한 꽃으로 몰리게 될 테니까.
남부지방은 벚꽃이 배꽃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피니까 그나마 괜찮은데 중부지방은 벚꽃 피는 시기와 배꽃 피는 시기가 겹친다. 이럴 경우 나비나 꿀벌은 모두 벚꽃만 찾게 된다. 그러면 배꽃은 수정이 안 되어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그래서 벚나무와 배나무는 가까이 심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긴 요즈음에는 배나 사과에 인공수분을 시키는 농가가 워낙에 많으니 이것도 다 옛말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인공수분은 하더라도 성장 호르몬제는 쓰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 2007년의 시골집 배 과수원 모습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 집 과수원의 첫모습은 이 사진 속의 과수원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먼저 사진 오른쪽의 배밭은 배나무가 아니라 복숭아 나무가 있었고, 사진 왼쪽 끄트머리에는 딸기밭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딸기밭이 없어졌고, 대학교 들어갈 무렵 복숭아 나무를 베어버리고 배나무를 심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과수원의 배나무는 50년이 넘은 것부터 30년 남짓한 것도 섞여 있는 셈이다. 모두 다 '개심자연형'으로 키운 모습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대부분 'Y자형'으로 수목의 성장을 유도한다.
▲ 2015년 4월 평사리 최참판댁 입구의 배밭 모습 : 개심자연형
▲ 2015년 4월 평사리 섬진강가 어느 농가의 배밭 모습 : Y자형
'개심자연형'이 무엇이고 'Y자형'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위 두 사진을 보는 게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중심이 열린 상태로 자연스럽게 서너 가지 방향으로 주간을 키운 게 '개심자연형'이고 180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두 개의 주간만 키운 게 'Y자형'이다. 배나무의 경우 옛날엔 '개심자연형'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엔 'Y자형'이 대부분이다. 관리하기가 'Y자형'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이 Y자형으로 늘어선 배나무 사이로 약치는 트랙터가 왔다 갔다 한다. 아직 꽃잎도 채 다 떨어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농약이라니. 이 시기에 약을 친다면 아마도 피어나는 새순에 진딧물이 끼이는 걸 미리 방비하기 위함이리라. 관행농에서 약을 치더라도 배 봉지를 씌우기 전까지는 될 수 있는대로 치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부터 배가 다 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약을 칠까? 내 유년의 우리 밭 배 과수원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약 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지워지지 않는 '유년의 뜰'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내가 배웠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시조다. 고려시대 시조 치고는 작자가 분명하게
첫댓글 배나무 뿐 아니라 감나무,밤나무도 농약 엄청 합니다.매실이 열매가 되기 전에 매실밭도 약을 하더군요. 매실을 따면서 잎에 붙은 벌레들을 보면서 몇 번의 고민을 하게됩니다.약을 해?말어? 여즉 꿋꿋하게 버티는 건 게으름이 90%인 덕입니다. 이곳에 살면서부터 매화부터 순차적으로 피는 유실수를 그러려니 하며 무디어졌는데~~~
네..
사실 과일은 약 전혀 안 치고 농사 짓기가 어렵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씁쓸하죠.
그나마 매실은 점박이가 되더라도 요즘은 알아주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매실의 진딧물은 알코올 한두 번 뿌려주는 걸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 첨엔 점박이가 있더니 요즘엔 점박이도 거의 없어졌어요. 온동네서 뿌리는 약을 피해 꿩가족이 둥지를 틀어 꽥꽥대는 꿩울음도 이젠 익숙하구요~^^이런게 산골사는 재미죠.
@금란초/하동 그 정도면 나무 스스로 이겨낼 정도로 토양이 만들어져 있다는 거네요.^^
제 텃밭에 배추, 무가 2년전부터 벼룩잎벌레나 청벌레가 먹어도 먹는 것 이상으로 자라주니까
김장하는데 전혀 이상이 없더군요.
이렇게 되는데 6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벌레 잡아주지 않으면 사람 먹을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비료를 아예 안 주니 자기가 알아서 안 죽을 만큼 튼튼하게 자라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가물거렸던 시조 한편 저도 따라 읆어보게되네요 고향의 추억이 새록새록 나는 계절이지요 저는 하얀 싸리꽃을 보면 옛 동산 뛰어놀던 저의 유년이 생각나는 계절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