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9신 : 다시 지혜의 품에 안기려 화대종주(9)- 어떤 사람의 로망

[이계양]

다시 지혜의 품에 안기려 화대종주(9)- 어떤 사람의 로망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천왕봉을 뒤로 하고 하산길에 오른다. 오전 7시다.

천왕봉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 4km, 치밭목에서 대원사까지 10.5km니 자그마치 14.5km.

천왕봉에서 치밭목대피소 쪽으로 하산길을 시작하며

하산길 이정표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내리막길에 들어서려는데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미 천왕봉 오르막길에서 스틱 한쪽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강하주 씨에게 내가 내 스틱을 건네려는 순간 아들이 말한다.

“엄마, 이 스틱 쓰세요.” 하며 엄마에게 제 스틱을 내민다.

강하주 씨는 ‘괜찮다’며 사양한다.

아들과 내가 거듭 강권하다시피 하여 결국 할 수 없이 아들의 스틱을 챙겨 든다.

이제부터는 아들이 스틱 한 개만으로 산행을 하게 된다.

강하주 씨는 아들에게 못내 미안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렇게 실랑이를 하며 시작한 하산길은 만만하지가 않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걸어가야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계단을 통해서 또는 비로 인해 질퍽거리고 미끄럽기까지 한 흙길을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니 강하주 씨도 새길이도 나도 차츰 지쳐가고 있다. 몸이 지치기도 했지만 한 발씩 내딛는 발부리에 눈과 마음을 집중하느라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르막길보다도 발부리에 더 신경을 집중해야 함을 느낀다.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길을 가는 중에 문득 뒤에서 서둘러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혹시 지리산 곰에게 쫓기는 사람인가 싶어 깜짝 놀라 오싹하였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3명이 한꺼번에 줄지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순식간에 우리를 지나쳐 달려간다. 등에 번호를 붙이고 달려가는 것이다. 대체 어ᄄᅠᆫ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길을 달려갈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산악마라톤 선수들이었고 그 선두 주자들을 만난 것이다. 오늘이 화대종주 마라톤 경주가 있는 날이란다. 화엄사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여 대원사에 오후 3시경에 도착한단다. 우리는 2박 3일 동안 끙끙대며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단 12시간만에 그것도 달려서 완주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도전에 높은 점수를 주며 양양해 있던 우리들 세 식구는 그만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두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하는가 싶다. 한편으로 선수들이 걱정되었다. “무릎이나 다리가 괜찮을까? 어디 다치지나 않을까? 골병 들겠다. 저런 운동을 왜 하지? 등등.

한 무리의 산악마라톤 선수들로 인해 자극을 받아 다시 기운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3일째 누적된 피로감으로 발걸음은 이내 다시 무겁기만 하다. 그때마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활짝 핀 철쭉꽃이 눈앞에서 햇살처럼 나타나곤 했다. 때론 앳된 아기의 해맑은 웃음처럼 깔깔대며 소리질렀다. 피로에 지친 우리들의 눈과 마음과 발걸음에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천왕봉에서 치밭목대피소 쪽으로 하산길을 시작하며

그러는 사이 걸음이 더딘 강하주 씨와 나를 앞질러 아들이 먼저 치밭목대피소로 내려갔다. 먼저 내려가 점심을 준비함으로 시간을 절약하려는 아들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다.

드디어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치밭목은 "취나물 밭이 있는 언덕"이란 뜻이란다.

시간을 보니 09시 37분이다. 새벽부터 서두른 데다기 아침 5시 20분에 출발하여 4시간 이상을 걸어왔으니 지칠만도 하다. 도착 즉시 치밭목대피소 인증 스템프를 찍어 확인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아들은 이미 도착하여 아침 겸 점심 식사 준비를 거의 마쳐놓았다. 함께 식사를 마주한다.

강하주 씨는 미역국, 나는 설렁탕을 새길이는 짬뽕이다. 지리산에서 마지막 식사다. 마지막 식사 메뉴까지 섬세하게 배분하여 준비한 새길이가 고맙고 또 고맙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 중년 부인이 대피소 취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우리 가족들을 향하여 묻는다.

”가족들이세요?“

”네, 맞아요.“

”(새길이를 가리키며) 아들이시죠?“

”그런데요, 왜요?“

”아니요, 사실 저는 천왕봉에 간 남편을 마중 왔는데요, 저는 제 아들과 지리산 종주하는 것이 로망이에요.“

”아, 그래요.“

”아들이랑 지리산 종주하시는 모습이 부럽네요.“

지난 3년 전 새길이와 겨울 지리산 종주를 하는 3일 연속해서 들었던 말을 오늘 다시 듣게 된다.

‘오늘 우리들의 이 모습 이 대로를 부러워한단다.’

어떤 사람의 로망이 바로 여기에, 치밭목대피소에서 대원사를 향하여 출발!

‘어떤 사람은 로망으로 품고 사는데, 우리는 그것을 현실에서 이루어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다시 아들 새길이가 고맙다.

나이 든 아빠 엄마를 부추겨서 지리산 종주를 하도록 이끌다니. 부모가 가자고 해도 함께 할까말까 한데 아들이 먼저 가자고 하고 앞서 준비하고 진행하고 뒷바라지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아서.

하여튼 중년 부인의 등장으로 새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더욱 크고 깊게 다가온다.

[한아]

꽃길을 걸으며 꽃에 입맞춤^^ 무릉도원에 입성하신 듯합니다!
정말 효자 아드님 두셨습니다^^

[마리아]

세심한 늠름한 아드님,,
보통인의 로망을 이룩하시다니 ,,
새벽부터 산악마라톤 선수들
못지 않습니다
더 뭐라 할 ... 감탄 입니다

[마리아]

벌써 ....
10회가 없군요.
갑자기 끝 마무리는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