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호세아 2:8-10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아들이기 위해 핏덩어리 아기를 데려다가 깨끗이 씻기고 보호하며 잘 양육하여 곱게 꾸며서 왕후의 자리에 앉혀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풍성함을 바알이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에게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잊은 채 바알과 이방 나라들로부터 왔다고 착각하고 은과 금 등을 바알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에 의하여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풍성해졌고, 그것을 통해 은과 금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들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조각한 우상에 은과 금을 입히고 우상을 아름답게 꾸몄던 것입니다.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렘 10:4)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시 115:4)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사 30:22)
하나님께서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선물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1장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 27: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3-15)
"그들이 와서 시온산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찌어다"(렘 31:12)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욜 2:19)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그 시절"과 "그 시기"는 추수때를 말합니다. 곡식과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에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신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인 먹는 문제에 고통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는 말씀에서 "양털(wool))"과 "삼(flex, linen)"은 각각 추울 때와 더울 때 입는 옷의 재료입니다. 즉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옷마저 빼앗아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시겠다는 것이며 또 모든 것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따라간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fine linen)와 명주(silk)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겔 16:8, 13)
본문 앞 5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모든 것들이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주셨던 모든 복을 다 빼앗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현재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다가는 큰코 다칩니다.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이유도 그의 재산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왜 근심했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잘 맡아서 관리하라고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면 근심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복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고, 자기 사업을 늘리고 사유재산을 늘리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고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기 사업을 늘리는 일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있는 것에 대해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만 더 늘리고 싶어서 늘리다가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그 결과 의식주 문제에 큰 타격이 오게 될 때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게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즉 우리는 하루살이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내일은 내일을 주관하는 하나님께만 필요한 단어이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필요없는 말입니다.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날이 하룻밤을 자고나면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가져가실지 그냥 놔두실 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내일 일을 맡기라는 말입니다. 불과 1분 앞도 알 수 없으면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지한 인간은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내일 일을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 줄도 모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왜 걱정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온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일 일을 걱정한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 아닙니까? 어떻게 걱정을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 밤 죽는다면 내일 일을 무엇 때문에 염려해야 하며, 염려할 필요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의 삶을 한 번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은 적이 얼마나 있습니까? 아무리 많아도 굶어서 죽을 지경까지 갔었습니까? 아직까지 굶어서 죽지않고 살아있지 않습니까? 입을 것이 없어서 발가벗고 밖에 나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옷장에 옷이 하나도 없습니까? 그런데 왜 걱정을 합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며 "자기의 노력"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근원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갖고있는 모든 것 즉 생명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침에 눈을 떳을 때 죽지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루라는 기간동안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하나님께 눈을 뜨는 순간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눈을 뜨는 순간 "아이고 죽겠다" "또 일어나야 돼?"라며 억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기가 싫으니까 침대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러면 안 일어나게 해줄까?"라고 하신다면, 그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종일 그 시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마치 나에게 빈 시간은 내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내 멋대로 시간을 떼우며(kill time) 허송세월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쓰라고 주신 시간을 충성하지 않고 내 시간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계속 허송세월하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만 되면" "~만 해결되면" "~만 생기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하라고 하시는데, 마귀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꼭 오늘 할 필요가 있어"라며 "만약 ... "(If)이라는 생각을 자꾸만 넣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를 점점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이 은혜받은 때이며, 내일 무엇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이며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그러므로 우리는 그 동안 생명과 햇빛과 공기와 집과 음식과 옷과 가족과 건강과 시간 등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서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며, 하나님의 명령인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사람과 환경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순간, 그것이 영적 간음을 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를 모르는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그 모든 복을 거두어가신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도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감히 이길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절에서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뜻밖의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모두 잃고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한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22).
우리가 욥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하더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며 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입에서는 찬송과 감사가 흘러넘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혹시라도 내가 갖고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남용하거나 낭비하며 살아왔다면, 지금 곧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두어가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즉 "이 모든 것을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취하시는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이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이오니 주님 뜻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라는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고백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만약 그런 고백을 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하여 주시고 하루를 더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이렇게 귀한 하루를 선물로 주셨는데 저는 죽지못해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지금껏 저는 하루라는 시간을 허락하시고 그 시간동안 어떻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지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또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나... 하면서요
주님께서는 매일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여주시고 사시사철 옷을 입혀주시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닥치지도 않을 내일에 있을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느라 오늘이라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엇만 해결되면 그때부터 주의 일도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도 수없이 했지만, 해결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생각이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제껏 속아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해결되는 일이 전혀 없을지라도 지금을 충실히 살라고 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시는데도 저는 계속해서 게으름을 피우며 살 때가 더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갖고있는 것들을... 솔직히 저는 제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주께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립서비스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제 마음 속 깊이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이 말로만 형식적으로 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이고 실제 저의 생활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제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하며 살아왔습니다.
가족도 제 소유이고 시간도 제것이고 제 옷장 속의 옷들과 부엌에 있는 음식들과 제 지갑에 있는 돈과 특히 저 자신이 제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시간과 제 입과 제 표정과 제 몸을 주께서 원하시는대로 사용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대로 제 기분대로 사용했습니다. 너무 주님 앞에 부끄러워서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욥의 인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는 특별한 사람이므로 성경에 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만 했고, 저도 욥처럼 살려고 애를 쓰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매우 게으르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의지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바알과 이방나라를 의지한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동안 무지해서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질렀사오니, 주여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주께서 징계하시는 목적이 벌을 주기위함이 아니라 주께로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하셨사오니, 주여, 이제라도 주님께 두 손 들고 돌아가오니 저를 받아 주시고 징계를 거두어 주옵소서.
인간에게 있어서 내일이 없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깨달았습니다.
무지한 인간들은 항상 '내일'에 대해 생각하며 내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을 충실히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어리석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족합니다.
이제부터는 게으르지 않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 동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동안 주께서 원하시는 일... 주님을 알아가기 위해 애쓰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늘도 겸손히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면서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결코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는 말이 나오게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저에게 이렇게 하늘의 신령한 지혜를 공급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