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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계간 사상과 문학사에서 여름호 수필원고 청탁의뢰가 들어와 유년시절에 있었던 작은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써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실린 계간 사상과 문학 전 편집위원이신 카페지기님께서 작자의 동의도 없이 센토카페에 일방적으로 공개소문을 내셨군요. 특별히 좋은 글도 아닌데 부끄럽기도 하고... 참 심경이 복잡합니다.ㅎ
내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는 카페지기님의 등쌀에 못 이겨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원고 전문을 올립니다.
휴.. 무슨 예스벨 문학상도 아닌데 그냥.. 부끄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런 생활경험도 있구나 하는 재미로 읽어 주시기를..
슬픈 메리와의 추억
최 기 만
그 집에는 여러 마리의 개가 있었다. 지푸라기로 몇 마리씩 입을 꿴 젖은 명태더미를 마당 옆으로 흐르는 도랑물에 대충 행구어 씻은 다음, 통나무로 엮어 세운 덕장에 걸쳐 여러 날을 말려 복어가 된 명태를 꼬챙이에 가지런하게 꿰어 도시에 있는 도매상으로 공급하는 건어물 사업을 하는 집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그 어촌동네가 대부분 궁핍한 형편이었던 터라 이따금 야밤을 틈타 건조를 위해 걸어둔 명태를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명태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작은 인기척에도 사납게 짖어주는 개들이 여러 마리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개들은 한밤의 사소한 소리에도 자주 시끄럽게 짖어댔기 때문에 좁은 골목 하나를 두고 그 집과 바로 붙어있는 우리 집 식구들은 밤잠에 방해를 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 지금 같으면 누구도 인내할 수 없는 일이었고 조용한 전자장비로 얼마든지 도난을 방지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모두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이웃으로 인한 불편을 서로 적당히 감수하며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견종의 구별을 잘 모르는 어린 시절이라 그랬지만, 지금 생각하면 외모에서 품격이 제법 느껴지는 셰퍼드에서 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간 진돗개도 있었으나 거의 잡종견들이었다. 그러니 그 집에 있던 셰퍼드나 진돗개도 뭐 그리 특별한 혈통이었을까마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주둥이 부분이 시커먼 셰퍼드는 왠지 앉아있는 모습에 남다른 품위가 있었다.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그 집으로 돌아가 보이지 않았지만, 대문을 열어두는 낮이면 골목을 통해 우리 집 뒷마당으로 슬금슬금 산책을 나오곤 하던 그 셰퍼드와 함께 우리 집 뒤뜰로 날마다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던 누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조용한 걸음걸이에 검은 눈망울이 왠지 슬프게 느껴지는 그 개의 이름은 메리였다.
어렸을 때 사나운 개에게 두 번인가 물려본 경험이 있었던 나는 성질이 고약한 개에 대한 두려움이 남달랐다. 밖에서 놀다 동네 개에게 물린 내가 울면서 집에 들어올 때마다 집안일을 하시던 엄마는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나를 앞장세워 아들을 문 개가 있는 집으로 가위를 들고 달려가 그 개의 털을 한 움큼 잘라온 다음, 내 엉덩이를 까고 개털을 불로 지져 생긴 기름으로 개의 이빨자국이 난 곳에 발라 주곤 하셨다. 다른 개털은 아무런 효과가 없고 반드시 나를 물었던 바로 그 개의 털이어야만 했다는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못된 개들과는 달리 조용한 성격의 메리는 나를 보면 얌전히 꼬리를 흔들어 주던 온순한 암컷이었다.
나는 그런 메리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다른 개들처럼 방정을 떨면서 반갑다고 달려드는 편도 아니었고, 쓰다듬어 주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괜히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으르렁거리는 그런 심술 맞은 개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녀오면 어느새 우리 집 뒤뜰에 슬그머니 나타난 메리는 언제나 나를 보고 조용히 꼬리를 살랑대며 반겨주곤 했다. 나는 그런 메리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메리를 위해 찬장 문을 열고는 엄마가 저녁 반찬으로 냄비에 남겨둔 고등어조림을 한 토막 가져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메리에게 내밀면 고맙다는 듯이 나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조용히 받아먹곤 했다. 나는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메리가 고맙고도 신기했다. 나를 물었던 다른 개들과는 달리, 자기를 만지고 쓰다듬어도 물거나 귀찮다고 피하지 않는 메리가 너무 기특했다.
나는 온 집안을 뒤져 메리가 먹을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들고 나와 메리에게 갖다 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안 계실 때에는 메리를 방으로 불러들여 함께 놀기도 했다. 엄마가 아시면 털도 날리고 발에도 흙이 묻은 더러운 개를 방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야단을 맞을 게 뻔했지만 금지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그 스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메리는 소의 눈망울 같은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메리와 함께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집에 사는 친구네 집에 사전을 빌러 갈 일이 생겼다. 그러나 그 집 문 앞에는 언제나 목에 개 줄이 묶인 채 엎드려 있는 검둥이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 내가 그 집 앞을 지나가다가 그 검둥이를 보고 "오요~오요"하고 손짓을 하면 오만 인상을 다 찌푸리고 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일쑤였다. 나를 보면 항상 인상을 써대는 그 검둥이를 볼 때마다 나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은 숙제 때문에 꼭 가야만 하는 날이었다. 지금 같으면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집 앞으로 사전을 가지고 나오라 하면 그만이지만 전화기를 가진 집이라고 해야 마을을 통틀어 몇 집 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오른쪽에 있는 손잡이를 드르륵 하고 몇 번 돌리고 수화기를 들면 동네 우체국에서 "몇 번을 대드릴까요?"하는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서무실장님 댁이오." 하면 번호를 대지 않아도 알아서 연결해 주던 구식 자석식 전화기 말이다.
검둥이의 동태를 살피려고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밖을 보니 다행히 그 녀석이 땅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다. 하늘이 내려주신 그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눈도 떼지 않고 발뒤꿈치를 들고는 살금살금 검둥이 옆을 지나 그 집 문을 막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갑자기 "우왕!"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왼쪽 발목이 아파왔다. 한 번 잠이 들면 사람들처럼 아무 것도 모르리라 생각했던 그 검둥이가 작은 발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사납게 내 발목을 물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놀란 나는 우는 것도 잊고 발목을 물린 채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 있었다. 검둥이는 계속 으르렁거리며 내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고, 그땐 내게 도움을 줄만한 지나가는 어른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 귓가에는 길바닥이 뭔가에 빠르게 마찰되는 작은 소리가 느껴졌다. 때마침 축대로 쌓은 도랑 건너편을 지나다 위험에 처한 나를 발견한 메리가 단숨에 2m 정도의 도랑을 건너 뛰어 내 발목을 물고 있는 그 검둥이의 옆구리를 물고 사정없이 흔들어 대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검둥이는 "깨개갱!!" 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물고 있던 내 발목을 놓고 꼬리까지 잔뜩 감아 내리고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문 구석에 웅크린 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다른 개에게 물려있는 나를 위험에서 구한 메리는 그 자리에 서서 꼬리를 살랑이며 다친 곳은 없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그 선한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를 물었던 그 검둥이 똥개는 메리가 보이지 않아도 나만 보면 좌불안석의 표정으로 슬금슬금 피할 곳을 찾았고, 나는 그 녀석의 갑작스런 비굴한 행동에 말할 수 없는 통쾌감을 느꼈다. 나만 보면 심술궂게 으르렁대던 그 검둥이가 내 그림자만 보아도 바로 꼬리를 내리고 몸을 사리도록 만들어준 메리를 나는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언제나 메리는 뒷마당에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고, 그때마다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찬장에 있는 생선토막을 꺼내 메리에게 건네주곤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메리는 내게 더없이 고마운 친구였다. 그런지 얼마 후, 요즘 따라 이상하게 반찬이 헤프다 생각하신 엄마에게 그 사실을 들켜 죽도록 혼났지만 말이다.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라면 몰라도 귀한 음식을 개에게 준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메리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지만 메리는 항상 내 곁에 있었고, 그런 메리를 볼 때마다 언제까지나 메리는 나를 지켜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늘 행복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메리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날도 메리를 만나 재미있게 뛰어놀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담장 너머로 그 집 일꾼들에 의해 나일론 줄로 목이 꽁꽁 묶인 채 나무기둥 위로 끌려 올라가는 메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수상한 사람을 보고도 잘 짖을 줄 모르는 온순한 메리가 밥값을 못한다는 이유로 명태를 관리하는 그 집 일꾼들의 보신용으로 선택된 것이 틀림없었다.
나일론 빨랫줄 올가미에 목이 졸린 채 험상궂은 그 집 일꾼들에 의해 나무기둥 위로 끌려 올라가면서 나와 눈이 마주친 메리의 눈에서는 숨이 끊어지는 고통이 뿜어대는 시퍼런 불똥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그 처참한 모습을 본 나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엄마를 찾으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젠 엄마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 테니 메리를 우리가 사고, 그 대신 다른 개를 사주자고 엄마를 조르기 위해서였다. 내 마음 속에서는 메리가 빨리 죽지 말고 내가 엄마랑 돌아갈 때까지만 제발 살아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한참이 지나 엄마도 찾지 못하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때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온 나는 사람들이 메리를 그을리기 위해 피워둔 장작불 옆에 누워 이미 죽어있는 모습의 메리를 발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죽어버린 메리가 너무 불쌍해 울면서 바라보는 일이 전부였다.
나는 메리가 죽은 이후 나를 위험에서 구해준 메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슬픈 죄책감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학교 시험시간에도 죽어가던 메리의 눈동자가 시험지 위에 어른거려 답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고, 시험 성적은 형편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뒤뜰에서 꼬리를 살랑대며 나를 기다리던 메리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이따금 메리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셰퍼드만 혼자 뒤뜰에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곤 했을 뿐이다.
메리의 모습이 사라진 뒤뜰의 정경은 공허한 적막만이 메리와 함께 보냈던 추억의 시간을 타고 흐르고 있었고, 혼자 멍하니 서서 텅 빈 뒤뜰의 공허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나는 그 시간을 잊기 위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로 달려 나가곤 했다.
그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학교를 마치고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와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해서 자식들이 성장한 지금도 가끔 어렸을 때의 고마운 개 메리가 생각나곤 한다. 숨이 넘어가면서도 이번엔 자기를 구해달라는 듯 나와 눈을 맞추던 메리가 뚝뚝 떨어뜨리던 그 불덩이 같은 눈동자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리곤 어린 시절의 무기력함과 메리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이 떠오를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착한 메리야 미안하구나. 내가 위험에 처해있을 때 너의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네가 죽어갈 때 나는 네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겠니?"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개만도 못한 인간" 이라는 혹독한 말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나도 어쩌다 이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카드빚을 갚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고, 동생의 친구를 유인해 카드를 빼앗고 죽이는가 하면, 여성혐오에 따른 묻지마 살인 등 도저히 있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빈번한 우울한 세상이다.
누군가 시장했던 나를 위해 베풀었던 한 끼의 따뜻한 식사, 그리고 내가 외로울 때 벗이 되어주고 나를 이해해 주던 고마운 친구들, 또 책을 인쇄하고 만드는 일이 있을 때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던 고마운 고객들과 내 사무실을 거쳐 갔던 직원들도 생각한다.
따뜻한 커피를 테이블 앞에 두고 편안하게 앉아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지난 생각에 잠기던 오래 전 어느 날,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받으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정신적 채무감이 속옷이 비에 젖듯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받은 것을 다시 베풀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도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의 힘으로만 살아온 날들의 크기는 얼마였을까? 그 원형 그래프의 대부분은 부모의 힘, 가족의 힘, 은사의 힘, 그리고 나를 알고 사랑해주는 이들의 힘이었다. 아무리 과장해 생각해도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여길만한 크기는 보일 듯 말 듯 바늘처럼 가느다란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고맙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때문에 내 이웃은 곧 나의 은인이며, 나는 그들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삶의 부채의식에 다시금 눈을 떴다. 그것은 나를 구해주고 세상을 떠난 메리가 내게 남겨준 소중한 교훈이자 성찰이기도 하다.
나를 구해주었던 고마운 메리야, 우리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낯선 사람들을 보고도 증오의 마음으로 짖어대지 않아 밥값을 못 한다는 이유로 착한 너를 잡아먹었던 사람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는 착한 마음보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납게 짖어대야 할 밥값의 크기가 훨씬 더 중요했던 잔인한 사람들이 없는 그런 나라에서 말이다.
강가를 산책하다 뭉게구름이 피어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너머로 한 꼬마가 개와 함께 즐겁게 뛰어노는 평화로운 모습이 어른거렸다.
사랑하는 메리.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니? 결코 잊지 못 할 고마운 개 메리야...
우연 최기만 / 강원도 고성. 사상과 문학 수필 신인상 등단.
수필가 및 자유기고가. 관악저널 논설위원 및 서양대중음악 평론가로
다수의 신문과 잡지에 정치 및 문화칼럼 기고.
도서출판 에이프릴 대표. 아마추어 사진작가.
첫댓글 이리 글이 술술 넘어가다니요
코 끝이 아리하면서 괜시리 한숨이 나면서 햐 ! 최 수필가님의 등단작을 수차 읽어본 저로써는 그 때 전문적인 내용에 주눅들며 까실한 속내의 표출에 놀라긴 했지만 등단수필이니 우연님의 수필 중에서 얼마나 고르고 골랐겠는가 생각되어져 이렇게 하이크라스 인지 몰랐네요 이렇게 단편소설같은 수필을 접하였기에 감동이 배가 되었고 순정 만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한 가슴앓이를 외면치않고 혼탁한 세상에서도
굳굳하게 살아왔고 또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풍경이 너무나 곱기에
춥기전에는 팥빙수가 얻어 걸릴 것 같은 안도감과 포만감이 느껴진답니다 유명 수필가의 길로 힘차게 달려 나가시길 응원합니다
햐~! 댓글을 이리 써 주시니 핕빙수를 열 그릇 사드리고 싶군요. 팥빙수 과다섭취로 인한 배탈로
팥빙수 가격의 100배의 돈이 병원비로 들어간다 해도 공짜라니 감수할만 하죠?ㅎ
길을 지나다 제 블러그를 보신 카페지기님께서 특정 글을 복사해 심사위원회에 평가를 의뢰하셨기에
고르고 골랐다 하심은 사실과 다르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가
좀 당황스런 일이 벌어진 거죠.ㅎ
이 무더위에 팥빙수도 없이 힘차게 달려나가긴 덥고 하니 일단 시원하게 먹고 나서 생각해 보렵니다.ㅎ
늘 친근한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슬픈 메리와의 추억 어린시절 저도 비슷한 추억이 생각나네요 물흐르듯 써내려간 글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부러움과 감탄~~ 즐감하옵니다 ~~
김병휘 시인화가님께도 저와 비슷한 기억이 있다니 궁금증이 마구마구 샘솟습니다.
이참에 글도 소개해 주셔서 시인 화가에 수필가 명찰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보심이..ㅎ
전시회 때 친필을 넣어 선물해 주신 자작시집 [사과여행]을 종종 읽으며 김화가님의 내면세계를 엿보곤 합니다.
늘 휴머니즘에 천착하는 멋진 명작들을 그리시기를 오늘도 마음을 다해 성원합니다.^^
원문도 올려주시고 카페지기의 성가신(?) 등쌀에도 눈쌀 한번 안 찌푸리시고 인품이 고우신 운영자님 감사합니다ㅎㅎ
저도 유년시절 독일산 세퍼드개를 좋아했는데 정작 그 개는 사람처럼 점잖게 어린 저를 늘 물끄러미 내려다봤지요
명견이라 보신탕 업자들 손에 넘어가지않고 노화로 죽었다니 다행이지만 최선생님의 메리는 어쩌면 여름날 댁의 정원에서
버베나,핑스,접시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사랑하는 소년 가까이에서......
저는 워낙 자랑하거나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남들에게 무엇을 알리거나 하는 걸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광고를 요란하게 하셨으니 좀 곤혹스러웠습니다.ㅎ
개와 관련된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을테지만 카페지기님도 셰퍼드와의 이야기가 있으시군요.
생각하면 메리는 제게 참 고마운 녀석이었죠. 지금도 죄책감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여름날의 정원에 꽃으로 태어나 곁에 머물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들으니
오래전의 비극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되살아나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가집니다.
시인화가만이 가지는 따뜻한 빛깔의 위로말씀이 참 감사하게 다가오는 순간이군요.
늘 고맙습니다.^^
수필을 창작시,문학의 방으로 옮겨 왔습니다 최선생님
우연님이 바로 최대표님이었군요.
미처 알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메리가 서울로 전학가 버린 도매상집 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늘 동심처럼 고요히십시오
아, 아닙니다 교수님.
얼마 전 교수님께서 저희 카페에 처음 글을 올려주셨을 때
제가 성지인이라고 댓글로 말씀을 올린 적이 있어 이미 알고 계신줄 알았습니다.
우연이라는 닉네임으로 혼란을 드려 제가 송구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잠시 호남지방 여행을 다녀오느라고 오랫만에 들어 와 보았더니, 우연님의 재미있는 글이 올라 와 있군요.
수필가시라기에 언제나 글을 한편 읽어 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했더랬습니다. 과연, 단숨에 읽어 가게 만드는 재미와 문장력이 역시, 하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처음, 명태 말리는 장면이 나와서 내심 놀라웠습니다. 그러더니, 또 개를 목을 졸라매어 보신탕을 하는 장면이라니...
제가 어려서 본 것과 너무나 흡사해서요. 혹시나, 궁금하였는데, 강원도 고성이 고향이시군요.
ㅎㅎ 저는 속초가 고향이랍니다. 고성과 속초는 경계선 정도이니, 사실 한 고향이나 다름 없지요.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리구, 사실 저도 개에 대한 사연들이 좀 있습니다. 제가 양평와서 기르던 여러 종류의 개들과의 여러 사연들도 있지만,
지금은 어려서 고향에서 기르던 뿌드라는 이름의 잘 생긴 숫놈 이야길 잠깐 떠올리게 합니다.
개를 유난히 좋아하여 저도 함께 생활하다시피 했었지요. 종종 타고 다니기도 했어요.
뿌드는 너무나 잘 생기고 영리했는데, 다만 한가지 독특한 점은- 그 당시 영화관에서 미리 영화 상영을 알리는 광고차가 가끔 거리를 질주하곤 했었지요. 마이크로 큰 소리로 선전을 하며 달려가면, 그 뒤를 아이들이 우루루 쫒아서 뛰어가곤 했는데, 뿌드도 질세라 아이들과 같이 영화차를 따라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아이는 뿌드를 발로 걷어차지요. 영화차에서 뿌리는 광고지 삐라를 줏으려는데 개가 방해가 되어서였겠지요.
순하던 뿌드는 이럴 때 그냥 물어버리곤 했는데, 그러면 그 아이 부모는 난리가 나고, 우리 엄마는 우연님 어머님처럼 개털를 잘라서 불에 지져 기름을 내어 그 아이의 상처에 발라주곤 했습니다. 어떨 땐 병원 약값도 만만치 않았어요.
어느 한 날은 우리반 남자아이의 형이 물렸는데, 걔네 할아버지가 오셔서 뿌드를 잡아먹어야 낫는다고 우겼어요.
사실, 뿌드는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남을 물지 않았죠. 엄마는 드디어 그 개를 팔아버렸습니다.
학교 갔다가 오니, 개가 보이지 않았어요.
개장수에게 팔았다는 이야길 듣고, 망연해서 울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 저녁에 뿌드가 집으로 돌아 온 것이었어요. 우리 형제들은 반가워서 개를 끌어안고, 쓰다듬고, 기특하여 어쩔줄을 몰랐죠. 그런데...잠시 뒤에 개 장수가 찾아온 것이었어요. 차라리, 어디 먼 데로 도망을 쳤음 좋았을껄, 개는 충직하여 주인을 찾아오는 법이잖아요.
엄마는 다시 뿌드를 묶어서 개장수에게 넘겼고...우리들은 더욱 고통스럽게, 불쌍한 뿌드를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뿌드 생각이 가끔 납니다. 우연님 글을 읽다가, 언뜻 어린 시절의 뿌드 생각이 나서 길게 적어 보았습니다.
아이구 단고님의 개에 관한 이야기도 넘 마음이 아프네요 뿌드라는 이름도 독특하고 우연님의 메리와 뿌드가 만나
추석 둥근달속에서 고통도 없이 떡방아도 찧고 잘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일평생 강아지들과 함께인 삶이었습니다 한마리 마다마다의 추억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가슴아린 메리와의 추억 잘 읽었습니다 사랑스런 메리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