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깔사탕
언제부턴가, 아버지와 반장댁의 만남이 잦아졌다. 그녀는 엄마가 붕장어 행상을 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비몽사몽 간이기는 했지만, 나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꼭 보낼거지예? 약속 안 지키면 내가 곤란하니더.”라면서 반장댁은 아버지를 채근했다. 아버지는 마지못한 듯, 그러마하고 대답을 하는 정도였다.
반면에, 엄마는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하루도 행상을 거른 적이 없었고, 장사를 마치고 삽짝을 들어서면 밀린 집안 살림을 해치우느라 늘 동동거렸다. 어디를 봐도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읽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날도 아침 댓바람부터 반장댁이 찾아왔다. 그녀는 삽짝 밖을 힐끗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버지는 잘 피지 않던 봉초를 신문지에 말아 뺨이 홀쭉해지도록 빨아대기만 했다. 옆집에서 생솔가지로 불을 피우는지 매캐한 연기가 뭉텅뭉텅 담을 넘어왔다. 뿌연 연기만큼 무거운 기류가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나는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며 헛잠을 털고 일어났다. 그런 내게 아버지가 대뜸 눈깔사탕 한 알을 쥐어주었다.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뜬금없이 내 손에 들어온 사탕 한 알은 입에 넣지 않아도 이미 달콤한 횡재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가 까닭 없이 그것을 내어줄 리가 없었다. 의아한 마음을 숨긴 채 사탕을 꼭 그러쥐었다.
동네 점방이나 학교 앞 문방구에는 투명한 유리병 속에 눈깔사탕이 수북하게 들어 있었다. 노랗고 하얀 설탕 가루를 뒤집어쓴 놈과 그냥 반들반들한 놈들이 섞여 있는 유리병은 햇살을 받아 무지개처럼 빛났다. 나는 종종 점방의 높은 창틀을 잡고 까치발을 세운 채 입맛을 다시곤 했다. 하지만 흥건하게 고인 침을 삼키며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애꿎은 흙무덤만 걷어차며 분풀이를 해댔다. 내 삶에 처음으로 결핍의 씁쓸함을 가르쳐준 것이 눈깔사탕이었던 셈이다.
아버지의 머리맡 궤짝에도 사탕 봉지는 있었다. 그건 아버지의 기침을 다스리기 위한 응급약이기에 우리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폐를 크게 다친 아버지는 한번 기침이 시작되면 요강에 피고름을 쏟아내고도 잘 멎지를 않아 늘 괴로워했다. 신기한 건, 눈깔사탕 한 알을 입에 넣으면 거짓말처럼 기침이 멈춘다는 것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건 사탕이 아니라 약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사탕에 감히 눈독을 들일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사람 둘이 마당에 들어섰다. 반장댁은 잔뜩 호들갑을 떨며 그들을 맞이했다. 그제야 아버지가 집 안을 주섬주섬 챙기며 맞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리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누렇게 색이 바랜 천장만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빚쟁이처럼 좁은 집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간혹 아버지의 꽁무니를 잡고 선 나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어색한 공기를 살피던 반장댁이 내게 다가왔다. 부스럼과 버짐이 가득한 까까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뜬금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야갸 이래도 머리 좋고 싹싹한 놈이니더.”
그들은 커다란 바구니를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얌전하게 바구니를 싼 명주 보자기가 호기심을 부추겼다. 아버지가 매듭을 푸는 순간,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투명한 비닐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무지개빛, 그건 동네 점방에서는 본 적이 없는 아주 큰 눈깔사탕이었다.
바구니 속에는 눈깔사탕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방금 풀을 먹인 듯 각이 잘 잡힌 멜빵바지와 가슴 양쪽에 커다란 오리 눈이 그려진 노란 티셔츠, 그리고 앙증맞은 삼각팬티도 있었다. 처음 보는 과일도 밑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반장댁은 내가 입고 있던 후줄근한 옷을 가차 없이 벗겨버리곤 새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비록 여섯 살이었지만 남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것이 창피하다는 것쯤은 알 나이였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눈깔사탕만 아니라면 발버둥이라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반장댁의 손을 거부하면 사탕을 도로 내놓아야 될 것 같았다. 순순히 그녀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이 사탕을 지키는 길이라며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처음 입은 멜빵바지가 남의 옷을 얻어 입은 듯 어색했다. 낯선 부부의 익숙지 않은 눈빛과 반장댁의 평소답지 않은 칭찬, 그리고 아버지의 무겁고 어두운 표정, 그 모든 것이 새 옷만큼이나 불편했다. 그러나 동네 아이들에게 의기양양 사탕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머릿속엔 그 자리를 벗어날 궁리로 가득했다.
“아부지, 나가 놀아도 되지예?”
“먼데 가지 말고 집 근처서 놀거라.”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골목을 향해 내달았다. 변변한 명절빔은 구경도 못 한 아이들에게, 멜빵바지와 노란 티셔츠는 친척 집에 놀러 온 서울아이들이나 걸치던 옷이었다. 새 옷을 입고 나타난 나를 보고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으쓱해진 기분으로 손에 든 눈깔사탕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그리고 보란 듯 배를 내밀고 그들 앞을 오락가락 걸었다.
“니 여기서 뭐하는 짓이고?”
막 입안에 단물이 감도는 찰나, 누군가 사정없이 내 어깨를 낙아챘다. 엄마였다. 완력이 얼마나 드센지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입에 든 눈깔사탕 때문에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토록 우악스럽게 나를 다루는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갑작스런 등장에 아버지와 반장댁은 사색이 되었다. 그 시간에 엄마가 돌아오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안방까지 끌려간 나는 다시 발가벗겨졌고, 멜빵바지와 노란 티셔츠는 바구니 속으로 내팽개쳐졌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채 녹지 않은 눈깔사탕을 뱉어 재빨리 담장 너머로 던져버렸다.
“아무리 입에 거미줄을 쳐도 그렇지, 숟가락 하나 덜자고 자식을 남의 집 보내는 애비가 인간인교? 이웃 동기간이라고 동생처럼 정을 줬는데, 반장 자네까지 우째 이럴 수가 있노? 어디 가서 함부로 어미라 하지 마라. 오늘 장사 갔다가 동네 언니 못 만났으면, 내가 이 죄를 품고 평생을 어찌 살았을꼬….”
엄마는 동네가 떠나가라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두 사람은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엄마 옆에 한참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실로 간만에 엄마의 품을 독차지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동생이 생긴 후, 언감생심 꿈도 못 꾼 일이었다. 이따금 벽 쪽으로 돌아누운 아버지의 등이 들썩이기는 했지만, 나에겐 눈깔사탕 한 알보다 훨씬 달콤한 밤이었다.
첫댓글 오늘 장사 갔다가 동네 언니 못 만났으면, 내가 이 죄를 품고 평생을 어찌 살았을꼬….
가난한 시절의 애환,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인생이 달라질 뻔 한 여섯 살에 일어난 일, 눈깔사탕은 무엇보다 큰 유혹이지만
채 녹지 않은 그 단 맛을 뱉어 재빨리 담장 너머로 던져버린 작가에게는 눈깔사탕보다 더 달콤한
엄마의 품이 있어 훗날 이런 작품을 남기셨네요. 군더더기 없이 전개된 서사의 감동이 큽니다.
작품이 너무 감동적이라 올리고 싶어서 자판을 열심 두드렸습니다
글이 긴 편이라 힘들었어요
아이고 수고하셨어요. 짧지 않은 글인데 오타도 없이 애쓰셨네요. 그럴만 한 좋은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