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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금강산보다 아름다운것은
1. 설레임으로 다가온 금강산 가는 길
설레임으로 가방에 밤새 짐을 꾸렸을 일행의 일행들이 하나 둘 출발지에 모여든다. 여행의 들뜬 기분에 배웅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담은 손흔들림까지 차 안에 가득히 싣고 버스가 출발하는지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낯익은 지형들을 하나 하나 사열을 하듯이 지나치면서 낯선 지역의 표지판의 이름들이 시야로 다가왔다 사라진다. 서서히 광양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올라온 길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북쪽으로 깊숙히 올라온 것이다.
북한의 금강산을 향해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그 길이 결국에는 종점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강원도를 접어들면서 사방이 어두워져버려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금강송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움이 너무 크다. 미인송이라 부르기도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날렵한 금강송의 솔 향기를 품어 내리치는 파도에서 금강송의 향내가 물씬 젖은 채로 배어나온다는 동해바다! 내 마음속의 이상향으로 펄펄 살아 숨쉬는 그 동해를 뒤덮은 어둠만이 가득하다니...
얼마쯤 온것일까? 아니 여기가 어디쯤일까? 기사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보니 휴게소 이름이 “3.8선 휴게소” 란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지는게 육감으로 이것은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휴게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3.8선이 지나가는 곳이란다. 치열했던 전쟁의 아픔을 다시 끄집어 낼 필요는 없겠지만, 6.25 라는 과거를 단지 교과서를 통한 간접 체험뿐이거니와 내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곳이 남도지방이니 어찌 그 말을 듣고 피부로 파고드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격해지지않겠는가? 반세기를 훌쩍 넘어선 분단의 아픔이 이 순간까지 서슬이 퍼런 경계로써 존재하며 더더욱 견고해져가는 근대사의 비극의 현장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그것이 우리의 가슴으로 풀어가야만 하는 아픈 현실인 것을…
<3.8선 경계석>
고성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청한다. 그러나 배정받은 숙소에서 어찌 평소와 다름없이 잠을 청할 수 있단말인가? 옆 호실에서 왁자한 소리에 끌려 벌어진 술판에 빈자리를메우고 회전판에 얹힌 술잔이 제 스스로 돌듯이 도는 술잔을 의례적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어느새 입안으로 가져간다. 몇 잔을 마시고 다들 들뜬 여행의 기분에서일까 다들 얼굴에 피기 시작한 발그스레한 모습들이 취기를 빌려 그 동안 잃어버린 자신들의 모습들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늦도록 각 방을 돌면서 잔에 술을 더한 취객들의 소리들이 가늘게 거칠게 고성 밤바다에 퍼져나갈 즈음에사 방에 홀로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어스름을 휘둘러 친 복도를 거치면서 방 안쪽으로부터 굳게 잠겼을 빗장을 생각하며 방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내가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서는데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태고의 고요함 너머를 숨죽여 건너온 파도소리에 푹 잠겨있다. 삼경을 지나 더 신비스럽게 퍼지는 3.8선 너머 고성의 밤바다가 파도를 밀치고 방안 가득히 들어차있는 것이다. 내가 없는 그 짧은 시간여 동안을 틀에 짜인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가 아닌 자연이 베풀어주는 가장 부드러운 저음의 청정한 밤바다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기 전에 순한 옥빛처럼 까만 눈 안으로 품었음직한 처녀적 여자였음을 잊고 살아온 지난한 아줌마로써의 시간속에서 소녀 같은 모습으로 되돌려놓아버린 자연의 마술을 이 순간 본다. 옥빛 여인으로 청청이 서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 바라보는 칠흑 바다! 작은 산처럼 밀려왔다가 부서져내리는 파도의 순순한 무위無爲의 자연법칙을 본다. 그 속에 삶과 죽음이 베틀위의 얼개처럼 수없이 교직해 있음을 살피다 살아있는 자의 눈 빛으로 사방을 비추며 훑어내리는 등대의 회전하는 불빛을 따라가다 그 빛이 미치지 못하는 그 너머의 검은 바다를 생각해본다. 아마 그곳이 우리가 생각하고있는 북녂의 온기 서린 땅이 아닐까 생각에 잠겨본다.
어둠이 짙을수록이 빛이 더 밝게 보이는 것처럼 언젠가는 그 어둠이 가득한 그 곳에도 긴 새벽을 지나며 순간 밝아지는 것처럼 그러길 간절히 염원 해본다. 짧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는 사색의 모서리를 지나 바다쪽으로 나있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파도소리를 끌어당겨 방안 가득히 채운채 잠이 들다보니 성깔부리는 몇 무리의 갈매기가 아침이 밝았음을 알려준다. 산뜻한 아침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바다의 전경이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멀리 있는 듯 가깝게 다가와 우리들을 바라보는 억년을 머금었다 단 한번의 소리를 지르며 사라지는 파도를 이끼처럼 품었을 바위들이 바다속에서 물질을 끝낸 뒤 촉촉히 젖은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환호를 지르며 아침 바다위로 마악 올라서고있다.
마음이 들떠있어서인지 밥맛이 없어 먹는 둥 마는 둥한 평소 같지않게 아침밥이 이상하게 확 땡기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좀더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그게 사람의 DNA속에 살아남아 정주의 삶에서 유목적 삶의 유랑을 끝없이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간밤의 하루 동안이지만 정든 이곳에 대한 이별을 서럽지만 기쁘게 받아들여만 하는 것이다.
2. 금강산이 보이는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 배의 대형 버스에 분승한 차량이 서서히 가속페달을 밟는데 우리가 출발한 고성지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우리 앞에 다가서는 빨갛게 녹이 슨 철로가 보인다, 그게 분단 이후 57년간 끊어졌던 남북의 철로를 최근에 이어놓은 곳이란다. 사람에게 어디론가의 유랑은 “길”로부터 시작됨을 일찍이 알아버린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건너고 건넨 소통의 오솔길들의 서서히 사람과 삶이 강팍해지는 대량 이동의 수단이 되어버인 길이 아닌 도로가 되고 철로가 되고 바닷길이 따로 만들어지고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푸르고 푸르게 경외의 대상이었던 하늘, 그 날것속의 푸른 하늘을 쭈욱 그어버린 뒤 그 길이 하늘길이 되어버린 요즈음 세상에 붉은 녹물처럼 아프게 옭아맨 남북의 끊어진 철길이 눈 앞에 외로운 목을 빼어물고 기운없이 늘어져있다. 그 철로와 한참 동안을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다가 남측의 마지막 경계선에 위치한 화진포 아산 휴게소에 이른다.
<온정각 주변의 아름다운 봉우리>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 그 땅이 보고 싶고 그 땅위에서 살아 숨쉬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그 사람들을 까닭없이 무조건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물고 들어서는 남측 출입국 심사대를 거쳐 비무장 지대의 남측 경계를 건너면서부터 비로소 그토록 그리던 그 땅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땅 위에서 사상이라는 전무후무한 족쇄를 차고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한 한 세상을 모질게 짓밟힌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산 바위처럼 소리없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분명히 사람이었다, 검은 바위처럼 굳어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저렇게 바위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얼마나 부둥켜 안고 뒹굴면 굳어버린 심장의 혈관이 용암처럼 뿜어져 나와 피돌기가 시작될것인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저 사람들의 심장에다 내 손을 대어보고 싶다.
<온정각에서 바라본 전경>
낮게 굽어진 산 위로 더 낮아진 산의 초목들이 가을의 능선을 이루고 서 있는 틈새로 억새꽃만 속없이 흐드러져 북쪽의 사람들이 못다한 미소를 보내고있다. 그 곳에도 꽃이 피어나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저무는 석양에다 억새꽃 너울을 띄우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물기없는 마른 산에 수없이 포개진 바위들과 둥글게 밀치고 나온 바윗덩이들 사이로 무덤덤하게 서 있는 북한 초병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북측의 출입국심사를 마치고 금세기의 마지막 금단의 땅으로 내 몸을 들이밀면서 모골이 송연한 것은 내가 결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유주의자여서 그런 것도 아닐 테고 내가 북쪽에 심각한 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적 문제아여서 그런 것은 아닐것이다. 어느덧 마음속 긴장은 서서히 무뎌지고 철로 옆으로 붉은 깃발을 아래로 향하고 서있는 최상의 정예의 북한 병사의 모습이 한 사람씩 내 눈을 스친다. 그런 북한병사의 모습이 스쳐갈 때마다 잔영처럼 또렷히 다가와 내 명치께를 통증처럼 은근히 내리누르는 것은 저들이 분명코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 가는 길/박철영
몇 달 전 큰 아이가
군 입대한 길을 좇아 올라간다
산 밭가에 늘어선 군 막사들을 점호하며
인제 원통을 거쳐 천도리를 타고
굽이진 이차선을 돌면 서화리가 보인다
마을 표지석에 새긴 “금강산 가는 길”
금강산 가는 길이
뭍으로 바다로 뚫렸다는 걸 들었지만
여기서 그리던 금강산 가는 길을 본다
들떠있는 아내와 작은 아이처럼
북으로 한참을 달려가는데
하필이면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내 큰 아이가
79砲로 매섭게 막아서고 있다.
*79砲: 포 이름
제 큰 아들이 전년도에 군입대를 하여 비무장 지대 안에서 포병으로 1년째 군복무중이기에 내 아이의 主敵 주적으로 무감한 표정으로 서있는 북한병사를 보면서 심정적으로 착착함이 더한 것 같다. 못 먹어서 깡 마른 저 병사들과 만약에 만약에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쩔 수없이 적의에 찬 총구를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가슴을 향해 겨누어야하는 체제의 희생양일수 밖에 없을 내 아이들이 아닌가?!!
억새꽃 너머 북한군에게/박철영
민둥산이 다가왔다 사라지고나면
검은 표정으로 싸늘하게 달려왔다 사라지는
북한의 초병들이여
철로에서 녹슨 철마처럼
바윗돌로 굳어버린 병사여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아래
바위처럼 납짝 엎드려있다
불끈 일어서는 억새꽃처럼
부풀어져 피어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병사여
굳어진 네 몸 풀어져
낮은 능선의 억새꽃으로 흐드러질때
자유라는 이름을 외치며
너는 다시 억새꽃 되어 피어나리
억새꽃 너머로 서 있는 병사여
이 순간 네 모습이 꽃처럼 아름다운 것은
붉게 저무는 놀빛에 굳었던 얼굴이
빨갛게 젖어드는 것을
내 기어이 보고 말았거든.
<제 자작 졸시 한편 올립니다.>
여정은 어김없이 시간에 맞춰져 우리를 태운 버스는 금강산 외금강 호텔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는 사라져버리고 각각의 짐을 챙겨가지고 우리가 하룻밤을 묵어야 할 외금강 호텔의 로비를 들어서고 있다. 아직은 그 곳의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다들 남쪽의 어느 호텔이나 콘도에서 볼 수 있는 로비와 서비스 요원들의 깔끔한 모습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외금강 호텔 611호. 한참 이후에 알고 보니 그 곳은 북한 사람들이 직접 모든 서비스를 하는 곳이었다. 오면서 느꼈던 군인들의 굳은 표정들과는 달리 전혀 어색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련되고 숙련된 매너속에서 어찌보면 자유라는 맹아의 조짐들은 이곳처럼 북한이 자신하는 이런곳에서부터 조금씩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붉은 별이 선명히 새겨진 모자를 쓴호텔 로비의 여성 안내원의 아름다운 미소가 먼 훗날 동족에게 보낸 진실한 미소였음을 확인해보고 싶다.
3. 금강산에 오르다.
구룡연코스를 오르면서 목란관 아래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여느 남쪽의 유원지처럼 충분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막걸리와 흑구렁이를 담은 “사주” 산삼주등 남쪽의 주당들이 그냥 보고 넘어갈 수 없을 혹한 마음을 충동하기에는 구색이 갖추어져있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잊고 살아온 옛것들이 고스란히 사람들의 일상속에 남아있어 낯익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화려하지않은 옷차림과 담백한 표정들을 통해 옅은 수채화와 수묵화의 중간쯤의 갈색으로 물씬 배어나온다. 우리가 자라면서 훌훌 벗어던지며 아주 없애버려야될 것 쯤으로 여겼던 탈색된 모습의 허물들이 갓 벗어던져놓은 것처럼 눈에 익다. 구룡연 곳곳마다 남녀 한쌍씩이 한조가 되어 남측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안내? 아니면 감시?하기 위해 서 있다가 우릴 반긴다. 그 중에는 자본주의의 기미를 알아차린듯한 젊은 친구들도 더러 눈에 띄인다. 북측의 안내원인 32세의 건강해보이는 김호일 이라는 청년, 그 청년은 남쪽 돌아가는 것쯤은 상당히 알고 있는 듯하였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과 서비스의 기초 개념까지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 보면… 호기심 많은 북쪽의 청년으로 기억에 남기고 싶다.
<구룡연 전경>
앙지대를 오르다 마악 연주담에서 건져올린 선녀 같은 북측의 여성 동무? 의 비음섞인 멘트와 “앙지대” 동물 형상과 주위 전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어디가나 자신들이 사는 삶의 근저에 깔린 자부심은 대단하구나 싶다. 그렇지만 내 맘에 잘못 만진 가시나무속의 가시 하나가 손톱 밑에 박힌 것처럼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다. 바로 앙지대의 아름다운 바위에다 새겨놓은 김일성과 김정숙의 답사 흔적을 음각으로 파 붉은 페인트로 덧칠해놓은 게 영 머리속을 콕콕 쑤시고든다.
그게 뭐 대단한것인가? 누구나 연인이나 부부동반으로 금강산 구룡연을 다녀간 연정의 흔적 정도일텐데… 그게 위대한 분의 혁명사적라고 요란하다니,
<옥류동>
<연주담>
<낯선 풍경 몇 점>
연주담의 옥빛에 잠긴 비경은 쪽빛으로도 빚지 못할 금강산만의 물빛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보려거든 금강산을 찾아가시라. 죄송하지만 내가 가진 언어의 표현적 한계가 여기까지만 미침이니… 그 옥빛 연주담의 물빛은 내 눈을 물들이고 내 가슴까지 스며들어서 끝없는 금강산의 추억이 될것이다.
구룡연을 내려오면서 출출한 뱃속이 요동을 칠 때 쯔음 발길을 붙드는 길목에 “목란관”이 있다. 비상한 길목에서 남측의 손님들을 북측 남녀 동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목란관 앞에 노점처럼 늘어선 판매대에 진열된 흑구렁이 “蛇酎”가 흑 비늘을 뒤틀면서 죽어서도 사람들을 위한 몸 보시를 준비하고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기력이 먼저 빠져버린 사람들의 “중심”을 일으켜 세우려는 사람들을 호리고있다. 물론 나는 흑구렁이로 담은 “蛇酎” 로 기력을 보하려는 일행중 많은 사람들을 본다 과연 무엇을 위하여 세운다는 것인가? 추후 효과 확인을 하여보시지요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타고난 강골에 “중심”이 워낙이 강한지라 그쪽은 제면하고 손이 가는 곳은 조그만 북측의 막걸리병으로 쏠린다. 강냉이와 찹쌀을 띄워 만든 북쪽의 전통주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시 북측을 간다면 찾아가 마시고 싶은 막걸리 한잔이 며칠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미련으로 남은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4. 사람과 사람 사이에 또 다른 길이 있다.
피곤이 겹쳐 그 좋다는 온천욕도 못하고 숙소에 돌아와 곤한 잠에 빠지다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를 하러가자는 연락이 온다. 그리던 금강산도 짧은 시간 동안에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벅찬가보다. 저녁을 먹고 교예단 공연을 보기 위해 둥근 공연장안으로 들어서는데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하는 남측의 사람들로 만원이다. 북한 최고의 교예 연기를 보면서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웬지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무얼까?
<교예 공연장>
그런 저런 마음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온정봉사소가 눈에 띄어 지인부부와 술 한잔을 청한다. 참새 네마리에 4$이니 귀한 참새구이 맛으로는 헐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꼬지에 꿰인 참새를 막걸리와 먹으면서 모든게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온정봉사소의 김일성 빳지를 가슴에 달고있는 아가씨들과 소박한 실내의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더 이상 숨길 것 없는 북측 사람들과 통일이라는 마지막 화합의 길은 인조가 남한 산성에서 스스로 걸어나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청의 용골대에게 투항하는 모습이 아닌 우리가 넘어온 길을 통하여 조건없이 당당하게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는 길뿐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가 넘어간 그 길 속에 남북이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임을 저들도 알고 있으리... 그래서 북측과 남측의 사람들이 금강산 일만 이천봉우리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다.
<온정 봉사소>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게르마늄이 풍부한 금강산 온천>
첫댓글 두번인가 갔었는데 자꾸 또 가보고 싶은 곳, 금강산
나만 뒤늦은 북행길이었나봅니다. 질 잘 내놨으니 한번씩 다녀오십시요.
금강산에 다녀왔구먼! 나중에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보겠네.
금강산, 나는 언제 가본다냐.
진짜 언제 가본다냐, 금강산.
사진만으로도 비교되지 않는 완전한 자연의 풍광이 느껴 집니다. 다들 언제 가느냐고 하지말고 우리 같이 갑시다
섬진강에 다녀왔는데 옥류동의 물빛은 너무 맑고 아름답네요
금강산, 나는 언제 가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