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동원가 (Mission Mobilizer ) 의 삶
선교동원가 이용남 선교사
“ 불이야 !! 불이야 !! ”
20 세기 최고의 선교동원가 중의 한 사람인 , 오스왈드 스미스 ( Oswald Smith ) 목사님은 , 그의 저서 “ The Chalenge of Missions "에서 선교동원가의 삶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소방차가 없었던 시절 ,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밤 중에 불이 났다. 불이 난 것을 발견한 , 한 사람이 우물에서 물을 길러 그 불을 끄고 있었다. 그러나 불길은 더 치솟아 결국 온 집을 다 태우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혼자서 불을 끄는 것 보다 큰 소리로 ‘ 불이야 ! 불이야 ! ’ 소리를 지르면서 잠자는 사람들을 깨워서 , 함께 불을 꺼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동원가 란 바로 선교마인드 없이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삶이다.
‘선교 동원가’ 없는 선교는 없다.
선교의 깨달음 없이 선교에 동참하는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행동은 그 사람의 의식 (Mind )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성도들은 ‘ 이방인과 가까이도 안하고 교제도 안하는 ’ 유대인 마인드 때문에 이방인을 선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행전 10 장과 11 장에서 사도들과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선교마인드를 심어주신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리암 케리’ 선교사도 1793 년 인도에 가기 전 까지, ‘ 이교도’ 들에 대한 영국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꿔주기 위해 , 글을 쓰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주님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는 선교지에 가서도 , 지속적으로 선교편지를 통해서 선교를 동원하였고, 안식년이 되어 본국에 돌아와서도 전 영국을 다니며 선교보고와 함께 선교를 깨웠던 것이다.
미국의 최초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가 1813 년 미얀마에 선교사로 가기 전에도 , 친구들과 함께 선교를 깨우는 동원사역을 하였다. 사뮤엘 밀즈는 선교지에 나가지 않고 , 미국 전역을 다니며 교회를 순방하면서 선교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 선교동원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미국 선교는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1854 년 중국 샹하이에 선교사로 갔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1865 년 중국내지선교회 (China Inland Mission )을 창시한 후에 , 중국 전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 그것은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선교동원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중국에 있는 시간 보다 , 전 세계를 다니며 , 선교사를 모집하고 후원하는 교회와 성도를 일으키는 선교동원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을 위해 , 한 평생을 선교사의 삶으로 살고 가신 포사이드 ( Forsythe ) 선교사님이 있다. 전주 예수병원의 2 대 원장으로 사역하셨고, 손양원 목사님이 목회하셨던, 여수 애양원의 기초를 놓았던 분이시다. 한 평생 동안,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포사이드 선교사님은 , 알렉산더라는 선교동원가로 인해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우리나라 군산에 의료 선교사로 들어와 사역을 하던 중, 병이 들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돌아가서 , 그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에 의료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렸고, 그 이야기를 들었던 포사이드 선교사가 , 한국 땅에 와서 한 평생을 멋진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 실격된 선교사 ’ 와 ‘선교동원가 ’
나는 서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다가 철저하게 실패하고 돌아온 ‘ 실격된 선교사’ 이다. 많은 분들은 내가 아파서 한국으로 철 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엄격하게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젊은이 사역을 하고 있을 때 , 이재환 선교사님을 통해서 선교를 깨닫고, 뜨거운 가슴으로 아프리카에 갔었지만, 선교사로서,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지 못한 나는 , 점차 영적인 침체기에 빠져서 결국 병으로 선교지를 떠나오게 되었다. 나는 정직하게 말하면, 영적 침체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병이 나서 돌아 온 ‘실격된 선교사’ 이다. 비록 실격된 선교사가 되었지만,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깨달은 현장 경험은 선교동원가의 삶을 사는데 , 값진 재산이 되었다. 선교지는 영적 전쟁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선교사가 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과 본국의 성도들이 선교사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그림
척박한 땅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나는 ,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한국 기도원을 찾았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나에게 , 한 ‘ 아름다운 그림 ’ 을 떠오르게 하셨다. 그 것은 아프리카 선교지에 찾아 주셨던 , 고마우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었다. 그 분들은 선교지를 다녀간 후 , 선교지 사역과 우리 선교사들을 위해 여러 가지 아름다운 반응을 보여주셨다. 기도와 편지, 소포, 선교헌금, 또한 직접 선교사가 되어 찾아왔던 것이다. 나에게 이 그림이 그려지면서, 이상한 기쁨과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그렇다 !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선교지를 방문하자 ! ’
그 분들이 선교지를 방문해서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면 , 그 분들을 통해서도 아름다운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을 바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 , 한국과 가까운 동남아 선교지를 직접 찾아 다녔다. 그리고 나름대로 훈련하기 가장 좋은 선교지는 영어가 통하고, 안전하고 , 모슬렘의 거짓도 배울 수 있고 , 단 한번도 못 들어본 , 미전도 부족들까지 찾아 갈 수 있는 필리핀을 선교지로 정하였다. 그리고 비전트립 ( Vision Trip ) 이라는 이름으로 주위에 있는 아는 분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분들과 함께 선교지현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선교지에 다녀 온 분들은 ,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선교헌금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다녀 온 사람 중에, 선교사로 헌신하는 분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선교동원가라는 단어도 모르고 선교동원가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10 년이 넘는 기간을 많은 교회 성도님들과 학생들 청년들 초등학교 학생에 이르기 까지 선교지를 방문함으로 선교 동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필리핀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바울 선교사님이 걸었던 선교행전의 발자취를 따라서 성경과 함께 돌아보는 선교행전 ( Mission Acts ) 투어를 안내하면서 , 선교동원가의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은 , 해외뿐만 아니라 , 국내 선교투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교의 마음을 전 할 수 있도록 하셨다. 선교사님들이 묻혀계신 , 서울의 양화진과 대구의 선교사 묘지와 전주와 광주 선교사 묘지를 안내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게 하셨다. 선교헌신예배와 선교집회 선교학교에서 강의를 통해서도 주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셨다. 실격된 선교사를 선교동원가의 삶을 살도록 해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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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동원훈련에 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세계선교공동체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 홈페이지 www.wm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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