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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학교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들 김우곤
저는 기독교 학교에 관련한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학교에 관련한 분들과 교제를 나누지도 못했습니다. 교회에서는 토요일에 지극히 제한적으로 갖는 ‘계절학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이런 제약을 가진 저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과 소원에 불과한 몇 가지를 쓸 수밖에 없음을 먼저 밝히며, 부족한 것을 너그러이 용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글보다는 20여 년 전에 나온 『우리가 꿈꾸는 기독교 학교』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교』라는 책을 보시면 대단히 전문적인 내용들을 접할 수 있고, 주로 경기도에 있는 “쉐마기독학교”나 “헤이븐기독학교”를 비롯한 몇 개의 기독교 학교나 대안학교의 홈페이지, 그리고 “샘물중고등학교(http://smca.or.kr/)”나 대전에 있는 “새로남기독학교(http://www.srnschool.org/)” 등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생생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1. 기독교 학교의 필요성
왜 기독교 학교가 필요할까요? 역사를 돌아보면 일반 학교 즉 공교육기관이 기독교적이었던 나라나 시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어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있게 역사할 때엔 교회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도 새롭게 변화했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학교도 이 변화에 맞추어 문자 그대로 ‘기독교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두 세대를 지나고 나면 교회나 가정이 조금씩 말씀에서 떠나고 ‘기독교 학교’도 조금씩 ‘비기독교 학교’가 되다가 ‘반기독교 학교’로 변해버립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참고. 삿 2:10). ‘반기독교 학교’로 변해버린 오늘의 교육 현실에서 그들의 공격에 쓰러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게 하며,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한 제자와 군사로 길러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참된 ‘기독교 학교’가 필요합니다.
2. 한국 공교육 현장의 교육 환경과 부모님들의 수고
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2012년에 퇴직한 입장에서 제가 경험한 한국 공교육 현장의 교육 환경은 지극히 ‘반기독교 학교’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책만 아니라 모든 과목의 뿌리에 진화론이 놓여 있고, 인본주의에 뿌리를 둔 학생 인권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정부에서도 점점 더 그런 성격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의 정부에서는 교육 환경 전체가 지나치게 반기독교적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녀를 둔 기독교 가정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공교육을 받고 있는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자녀들의 신앙을 살피고,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과 친구들과의 교제를 잘 알아보고 필요한 지도를 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주어야 할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공교육을 받는 자녀들도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는 것은 공교육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자비가 있고, 부모님들의 기도와 수고가 있을 때 허락되는 주님의 신비한 은혜일 뿐입니다.
3. 인본주의와 기독교
가끔 인본주의는 세상의 여러 철학 사조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철학 사조 정도가 아니고 이미 확고한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무신론, 유물론 그리고 공산주의 이론과 논리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신본주의 기독교와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 환경을 잘 살펴보면 인본주의, 무신론 그리고 공산주의 이론인 유물론이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본주의는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파괴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러한 공격 앞에 놓여 있으며, 대학교에 가면 가장 강력한 공격을 받으면서 많은 자녀들이 그 공격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 이유를 바로 알지 못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다가 너무나 쉽게 정복당하고 쓰러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4. 가정과 교회와 기독교 학교
자녀 교육의 1차 책임자는 부모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을 때에 부모는 하나님과 교우들 앞에서 이것을 서약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알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성경을 알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은 제일 중요한 ‘기독교 학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혹은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을 교육합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주일에 세 번 혹은 네 번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교육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가정에서 잘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교회에서 목사님이 바르고 깊이 있게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 자녀의 신앙은 심히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나름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는 토대가 없이 ‘기독교 학교’가 자동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는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5. 기독교 학교가 목적하는 것
칼빈은 1538년의 ‘제네바 아카데미를 위한 시안’을 통해 주장하기를 인문학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제네바의 학교는 성직자 교육만이 아니라 시민 교육에도 필요하다고 하면서, 성경과 인문 교육 그리고 시민 교육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학교를 시작하려고 할 때에 무엇을 위한 학교와 교육이 될 것인지를 명확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가장 이상적인 기독교 학교의 결과를 원하지만, 사실은 좋은 기독교인도 되지 못하고 유능한 사회인도 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슬픈 결과로 끝난다면 안될 것입니다.
6. 몇 가지 생각해 보는 것들
* 세상과 인본주의의 공격을 잘 알아야
교회 역사를 보면 이단들이 세력을 떨칠 때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전력을 다하여 그 잘못을 드러내고 바른 것을 굳게 하였습니다. 성경과 바른 진리만 전하는 것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잘못된 가르침들이 슬금슬금 들어와서 바른 가르침을 흔들어놓을 때 그것을 바르게 분별하고 지적하여 믿는 자들을 보호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를 믿던 시대나 나라에서는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직접 공격하였지만, 지금 시대엔 대단히 다양한 성격의 철학과 가르침이 합법적인 통로 즉 교육과 문화와 예술 그리고 법이라는 옷을 입고 기독교를 압박하고 배척하고 멸절시키려고 전력을 다합니다. 기독교 학교는 이에 대하여 시간과 힘을 들여서 연구하고,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먼저 확신을 가진 후에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마음과 시간과 힘을 쏟는 일이 많은데, 제 생각에는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바른 말씀은 물론 ‘거짓 선지자’와 ‘거짓 사도’ 그리고 ‘우상숭배와 배교’에 대해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 말과 글로써 잘 전하는 ‘표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키워야
가끔 이단의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단히 유창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의 인쇄물도 매우 설득력이 있는 논리적인 글이어서 쉽게 정복당하고 맙니다. 교회사에서 보아도 이단적인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대체로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씁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말처럼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한다”(고전 2:1-4)는 주장을 하면서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나 바울 사도나 요한 사도가 쓴 성경이 어떠하며, 루터나 칼빈의 글은 어떠합니까? 저는 사람의 웅변술과 수사학에 의존하면서 성령의 능력과 은혜는 가볍게 아는 육신적인 자세는 주의해야 마땅하지만, 성령께 의지하면서 적절한 논리학과 수사학 그리고 웅변술을 제대로 알고 활용할 수 있어야 전하는 글을 읽고 말을 듣는 사람들이 쉽고 명확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전교조는 꾸준히 멋진 말과 글로써 학생들의 마음을 지배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현 정치계와 법조계와 교육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을 길러낸 사람들도 대단히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쉽게 그들을 따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학교에서 자라는 학생들은 모두 경건과 학문에 힘써야 하며, 존경받을 만한 인격과 문제를 잘 해결하는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나아가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는 훈련을 많이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꼭 닮고 싶은 롤 모델은 누구인가요?
사람은 처음에 모방을 하면서 자라갑니다. 자기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으면 스스로 목표 의식을 느끼고 동기부여를 받는 유익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에게 롤 모델을 정하도록 하는데, 그 졸업생들이 학교생활에서는 물론 졸업 후에도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남들에게 ‘**키즈’란 말을 들으면서 ‘**’이라는 모델을 목표로 우러러보며 자신을 훈련하고 성장시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 학생들에게 좋은 롤 모델을 정하도록 하고, 그 모델을 본받아 삶을 준비하고 헌신하게 한다면 자녀들의 일생을 효과적이고 능력 있게 보내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신앙적으로 본이 될 만한 좋은 위인들을 많이 소개해 주는 것이 필요한데, 신앙의 위인전(?)을 계속 읽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롤 모델을 찾도록 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읽어야 할 책이 많지만 신앙의 위인들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도록 하고, 그들에 대하여 그룹토의를 하면서 배운 것들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자기를 본받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고전 4:16; 11:1; 빌 3:17).
* 수십 년을 바라보며 장기 계획을 세워야
기독교 학교를 성공적으로 잘 운영하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변질의 위험이 있습니다. 혹시 장기간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처음 시작할 때의 성격과 방향을 벗어나서 겉모습만 그대로이라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단체나 학교, 심지어 교회조차도 50년이나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변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여러 기독교 학교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끝나고, 어떤 학교는 고등학교 과정까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기독교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다음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독교 학교는 자기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계속하여 관리하고 양육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사회의 한 분야에서 마땅한 역할을 잘 드러내기까지 손길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게 두 길 즉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서 일하거나 아니면 유능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일하게 될 때까지 영적, 사회적, 교육적 지원과 교류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학교도 처음 시작할 때의 정신과 방향과 목표에서 어그러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살피고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바라보고 계획하며 운영하는 학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신학적 준비만 아니라 신앙이 좋은 자녀들로 길러야
오늘날엔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시고, 박사학위를 받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관련 서적도 많이 번역되어 나오고, 전문적인 교리와 신학을 가르치는 인터넷 동영상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도 어지럽고 사회도 어지러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실력 있는 지도자도 많고 멋진 가르침은 많지만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신앙인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혹시라도 기독교 학교를 통하여 길러진 학생들이 알고 주장하는 것은 많은데, 인격적으로 신뢰받는 것에서는 멀다고 하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신학’에서 훌륭한 학생들이 아니라 ‘신앙’에서 훌륭한 학생들을 길러내는 기독교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앙이 좋은 분들의 삶에 대하여 많이 읽고, 롤 모델을 잘 정하고 본받는다면 ‘신학’에서는 훌륭하나 ‘신앙’에서는 위선을 보이는 이중인격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 재림과 심판을 기억하고 충성된 청지기로 사는 신앙인이 되어서 졸업하는 학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학교는 처음에 출발은 좋았으나 어느 순간에 이 세상의 권력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에 충성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위험에 대하여 반복하여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고 보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는 물론 신학교에 대하여 회의감과 절망감이 많은 때라서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써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주변에 좋은 기독교 학교가 많이 생겨서 우리의 자녀들이 바르게 준비되고,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