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세입자
송용구*
청평의 통나무 집 창가에
수줍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키 작은 화가
은행나무
둥그레한 나뭇가지의
붓끝마다 풀리는
연노랑 물감의 향기들이
집으로 흘러오는 흙길에
따스이 물들어간다
강변 갈대들은
가을빛 산바람으로 곱게 빗질하여
내 어릴 적 외할머니 머릿결처럼 단정하다
산의 혈맥을 따라 흐르는
강물의 노래가 햇살의 길을 열고
눈부신 빛의 재킷을 입은
물살 한 자락 두 자락은
고개 숙인 버들의 발을 곱게 씻어준다
물잎의 글씨로
통나무집의 문패를 새기고
토박이 새들에게 전입신고를 마치니
강변의 모든 갈대들
결 고운 내 자매들이
모시옷자락을 펄럭이며
산바람의 지휘에 맞추어
환영의 코러스를 선사한다
청청한 고요의 하늘 아래
새들 버들 은행 갈대 바람 물결 풀잎과
한 마을의 식구로 살아가는
새내기 세입자여
_ 2024년 제13회 녹색문학상 수상시집 『녹색 세입자』(시산맥 간)에서
*송용구(宋龍求)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시문학》에 시 「등 나무꽃」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2년 9월 이후 고려 대학교 독일어권문화연구소 교수로서 독일문학, 철학, 역사학을 통섭시키는 인문학 교육의 증진에 힘씨왔고, 현재는 고려대 강좌 <독일문학의 탐색> <독일문화와 종교> 등을 강의하고 있다.
시집으로 『별빛 지는 새벽마당에 서면 』, 『 풀피리 소리보다 향기로운 』, 『 아직은 소중한 것들이 남아 있다 』가 있 으며, 문학비평집으로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독일시와 한국 시의 기상학적 의식』, 『나무여, 너의 안부를 문는다』, 『생태언 어학의 렌즈로 바라본 현대시』, 『생태시와 생태사상』, 『독일 의 생태시』, 『느림과 기다림의 시학』, 『녹색의 저항』, 『현대시 와 생태주의 생태시와 저항의식』, 『r에코토피아를 향한 생명시학』 등이 있다.
syk6595@hanmail,net
*2024년 제13회 <녹색문학상> 수상작 선정 경위 및 심사평
인류사의 위기에 경종과 답신을 구한 녹색 시집
숲사랑, 생명존중, 녹색환경보전, 정서녹화를 표제어로 하고 있는 녹색문학상운영위원회와 (사)한국산림문학회에서 주관하는 2024년도 제13회 녹색문학상 본심을 위하여 심사위원 다섯 사람이 모였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장르별로 시 두 편을 비롯, 시조, 수필, 소설, 동화 등 모두 여섯 편이었다. 미리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숙독한 후에 최종심을 위하여 모인 때는 2024년 9월 5일 오전 11시, 심의 장소는 산림문학회 사무실이었다. 위에서 밝힌 가치 구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녹색문학상은 우리시대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직시하고 나아가서 그 해법과 실천의 방안까지를 문학작품 속에서 내다보는 데에 뜻을 갖고 있기에 시대정신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웅모작품의 수준은 매우 높았고 변경은 다양하고 넓었다. 특히 문학사조론으로 볼 때에는 전통적인 서사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장르(웹 스토리 등)도 등장하고 양식의 변화를 꾀하며 실험성을 보이는 작품도 보여서 녹색문학상의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매우 고무된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 녹색문학상 제정의 근본 취지가 녹색정신을 구현하도록 국책 예산으로 마련된 귀한 가치의 자산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일관되게 녹색문학정신을 고취하는 작품의 선정에 집중하자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예선을 거친 작품들은 모두 나름의 문학성을 갖고 있어서 오랜 토론을 거치면서 마침내 시집 『녹색 세입자』(송 용구)를 최종 녹색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녹색 세입자』는 문명의 고도화로 인한 자연 파괴, 인간 파괴 등 거대 담론을 이끌어내 인간에게 경각심을 주며 문학적인 감동을 이끌어 내었다. 『녹색 세입자』는 아예 생태시집임을 표방하여서 제목부터 그렇다고 볼 수 있었다. 현 시대 우리 인류가 당면한 기후 위기, 생태 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문명비판서 성격도 뚜렷하였다. 특 히 나무에 대한 시를 별도로 구분해, 생태 문제 대안으로 나무와 숲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편을 모았다는 점에도 주목하였다. 주제에 대한 일관성이 있고 녹색메시지가 뚜렷하며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도 나왔다. 나아가서 범 생명정신이 시로 완성된 점도 큰 울림을 주었다
훌륭한 작품을 출품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이번에 당선된 송용구 시인에게 큰 축하의 말씀을 보낸다.
2024년 9월 25일
.본심위원장 : 김유조
.본 심 위 원 : 허영자, 하청호, 장호병, 최병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