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는 핑계로 산행도 멈춘 지 오래고
뭔가 이른 아침에 꼭 서둘러 해야 할 일도 없다 싶은 것이
여전히 나를 무기력하게도 만들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 싶다..
그렇다고
타고난 기가 약한 탓도
오늘은 아닌 듯 싶다...
그래..
어쩌면 잘 살고 있던 내 삶의 굴레 속에
또 다시 일상의 지루함이
갑작스레 몰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가끔씩 그럴 때가 없진 않았지만
사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주저앉을 수만은 없어서
뭐든 통해서 나를 일으키는 작업을 종종 해오고 또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주책처럼
남은 평생을
정말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들기 때문일까..
너무도 원초적이고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이다 싶어
사람들은 이런 때
행복에 겨운 투정이다 라고 반박할 지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도 아닌 듯 싶다...
의학계에서는 이런 이유 없는 우울은 호르몬 영향에서 오는
갱년기 우울증의 시초라고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아직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오늘 지금 난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조금 그렇다...
한동안 잠에 취한 사람처럼 비몽사몽 어지럽게 누웠다가
그래도 가게는 나가 봐야지 하고 몸을 억지로 일으킨 뒤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나가려다
갑자기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을 보며
한 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괜히 엉거주춤한 꽤가 나서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는
비 핑계를 대면서 다시 주저앉는다...
물론 그리 바쁘지 않으니 괜찮다는 남편의 말에
새삼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아침 내내 물안개가 가득한 기운이
혹시 날씨가 맑을래나.. 했지만
이런 내 마음 한 편 개운치 못한 흐림의 탓인가 싶게
하늘도 반사적인 우울함을 잔뜩 머금고 있는가 싶더니
결국엔 비를 뿌린다....
그래...
이왕 내릴 양이면 속 시원히 좀 내려다오..
뭔가 모를 내 한 편의 우울함이
유리창에 비친 씻기움을 통한 대리만족이라도
실컷 느낄 수 있게...
쏴~하고 샤워기에서 뿜어대는 듯한 빗줄기에
키가 훌쩍 커버린 푸른 은행나무 가지가
온 몸을 사방으로 흔들어 대며 즐거워하는 듯한 모습이
잠시 좁고 우울한 내 시야를 뚫고
둔탁해진 시신경까지 선명하게 박혀 들어온다..
저렇게 쏟아지는 비에라도
마음껏 내맡기다 보면
누구든 속 시원히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