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시면 좋겠어요“ - 비타 500과 RIESIN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혹시 낡은 학교 건물에 비가 새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일찍 출근하여 학교를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다.
잠시 후 한 선생님이 ”안녕하세요“하면서 들어 온다.
”일찍 나오셨네요. 웬일로 이리 일찍 나오셨어요?“
”네,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하면서 쭈뼛거리더니 손에 쥔 것을 슬그머니 내민다.
음료수 1병과 비닐 포장된 과자 2개다.
받아서 책상 위에 놓고 보니 ‘비타 500과 RIESIN’이다.
그러면서 나지막하게 말한다.
”힘내시면 좋겠어요.“하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그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다.
선생님은 한 달여 전 담임 맡은 학생들의 일로 주말에도 노심초사하며 몸과 마음을 혹사한 바가 있다. 그때 선생님은 ”제가 뭘 잘못했나 봐요. 제가 이 아이들을 안 맡았어야 했나 봐요.“하며 자책하다시피 힘들어했다. ”아뇨, 선생님이니까 이 아이들을 맡았고, 선생님이니까 이만큼 하실 수 있는 겁니다. 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오히려 선생님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 이만큼, 이 정도라고 생각해요. 제가 오히려 미안하고 감사해요.“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드린 바 있다. 그 생각이 나서 ”선생님이 더 힘내시면 좋겠어요.“하면서 ”좀 회복이 되었어요?“하고 물었다.
”아뇨, 그런데 하는 데까지 해 보려고요.“
”그래요, 하는 데까지 해 보세요. 더 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그냥 거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세요.“
진심으로 선생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선생님의 수고와 애씀을 하늘이 다 알아요.“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죄송하고 감사해요.“하면서 맡은 학생과 학부모 얘기를 전하는 것이다.
얘기 끝에 나는 선생님께 ”제가 더 죄송하고 감사해요. 건강이랑 잘 살피세요.“했다.
”감사해요“ 하면서 수줍게 내 방을 나간다.
선생님이 내 방을 나간 뒤에도 짧은 시간에 주고받은 몇 마디 얘기와 ‘비타 500과 RIESIN’이 내 귓전과 눈앞에 생생하다.
그리고 선생님께 위로 삼아 들려주고 싶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네’라는 설화다.
<옛날 주요종이라는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아주 똑똑하고 총명해서 과거에 장원 급제했다.
이 청년은 머리도 영리하지만 외모도 빼어나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부마의 자리에 올랐다. 어느 날 황제가 주요종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주요종은 "제 고향에 홀어머니가 계시는데, 어머니는 평생 자식을 위해서 여생을 바쳤다. 제 어머니를 위해 열녀비를 하나 세워달라"고 말했다.
이에 황제는 이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주요종은 금의환향하여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충격적인 말씀을 한다.
“지금까지 혼자 너를 키워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나는 나의 삶을 찾겠다. 네 글 선생과 재혼을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황제가 열녀비까지 세워주겠다는데 재혼을 하면 황제와의 약속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어머니와 자신은 죽은 목숨이다’며 어머니를 말렸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내일 네가 내 치마를 깨끗이 빨고 그 치마가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에 완전히 마르면 시집을 가지 않을 것이고, 만일 마르지 않으면 재가를 하겠다”고 제안한다.
주요종은 내일도 날씨가 오늘처럼 맑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음날 폭우가 쏟아졌고 결국 치마는 마르지 않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하늘에서 비가 내린 것이나, 내가 재가를 하는 것이나 다 하늘의 뜻이니 말리지 말라.”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황제는 “하늘이 합당하게 처리했을 것이니, 어머니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는 이야기다.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네" 는 “하늘의 뜻은 거역할 수 없다. 그러니 순리대로 살라."는 이 이야기가 선생님에게 한 모금의 생수로 활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내내 책상 위에 놓인 비타 500과 RIESIN이 내 시선을 모으고 마음을 끈다.
‘선생님, 선생님이 힘내시면 좋겠어요. 어서 회복되도록 빌어요’
그러면서 후렴처럼 잔소리를 덧붙인다.
‘선생님, 하늘의 순리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무리하지 마시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정성스럽게 하시면 돼요.’
‘감사해요.’
‘참 감사해요.’
(2023.7.14.)
첫댓글 요즘처럼 선생님들의 일이
힘든 때가 있었을까..
최근의 몇가지 사건만 돌이켜봐도
안타깝습니다.
애쓰시는 선생님들! 힘내시고
'정성스럽게'라는 말이
와닿네요...
소박하나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선물에 빙긋이 미소짓습니다.
그 선생님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어집니다.
최선을 다해서 맡은바 일에 전념할 모습이 그려져 요샛말로 웃픕니다.
성큼성큼이 아닌 쭈뼛쭈뼛 소박하고 진실된 모습이 그려져, 참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푸른꿈창작학교의 선생님답습니다.
하늘이 합당하게 하실 것이니...
진인사대천명, 같은 맥락이겠죠.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어른이 계셔서 그 선생님 이미 힘 얻으셨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