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면서 교육하셨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시공간의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시간 아니면 공간 둘 중 하나를 택하려고 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결국 삶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자칫 시간보다는 공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공간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육신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얼마 있으면 사라지고 없어진다. 세상에 사는 한 인간은 몸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공간적인 제약을 받는다. 그렇다고 하여 인간이 시간을 초월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의 현재적 시간만 생각하고 자기 시대만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살아갈까? 그것은 시간적인 인간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해서이다. 인간은 유한하지 않고 무한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시간적인 제약이 생겼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숙명적인 인간이 미래에 희망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예수님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비록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무한한 존재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월적인 분이시기에 이 세상만 생각하면서 일하지 않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시간의 단절이 없는 삶을 사셨다. 제자들을 훈련하시며 다음 세대를 위하여 준비하는 데 자기의 일생을 바치는, 우리가 볼 때는 바보스러운(?) 생애를 사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의 일정을 보면 대중적인 가르침을 끊고 소수인 열두 제자에게 치중하시면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셨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있을 다음 세대의 역사를 준비하셨다. 그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위대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일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대를 보기보다는 다음 세대의 기초를 세우면서 사람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에 집중했다. 다음 세대에 나타날 것을 미리 예견하고 그 일을 이미 착수하고 준비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교육은 다른 것과 다르게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당장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의 재목을 만들어 후대를 행복하게 하는 꿈을 늘 꾸었다. 이것이 교육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자리이다. 교육이 타락하고 부패하는 경우는 이런 장기적인 안목이 사라지고 다음 세대에 준비를 게을리 할 때이다. 당장의 현실에만 급급한 경제적인 논리나 실용성만 강조하는 교육에 사로잡히면 그 순간 교육은 저급화되고 나라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교육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것과 같다. 열매는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이지 열매 자체가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교육을 바로잡는 길은 교육의 본래적인 사명을 인식하고 그것에 충실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바라보면서 미리 앞서서 준비할 때에만 대가 끊어지지 않고 번성하며 성장이 계속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공통적인 교훈이 있다. 그것은 이런 미래적인 교육에 실패할 때 가족과 나라는 멸망했고 더 이상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교육이다. 지금의 교육의 자리를 점검해 보면 그 다음 세대의 미래를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