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를 앉히다 / 김옥순
입체감 없이 넙데데한 얼굴에 있는 둥 마는 둥한 눈썹, 거울을 집어던지고 싶다. 수년간 그려온 눈썹이지만 눈썹 그리기는 여간 까다롭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석고상을 앞에 두고 스케치하듯, 콧망울 끝에서 연필을 수직으로 세워 눈썹머리를 정하고, 콧망울 끝에서 눈 꼬리를 사선으로 겨누어 눈썹꼬리를 정한다. 허나 눈썹머리에서 눈썹 산을 거쳐 눈썹꼬리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게 녹록한 일은 아니다. 시간이 촉박하면 조급증으로 애가 타고,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주어지면 짝짝이가 되고 만다. 몇 번을 고쳐 그려도 양쪽의 눈썹을 똑같이 그리기란 피를 말리는 일이다.
어찌어찌하여 공을 들이다 보면 기러기 두 마리가 이마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쌍벽을 이룬 채 떡 버티고 앉아 있는, 좌청룡우백호 같은 기러기의 모습은 보기에 흐뭇하다. 하지만 철새의 기질인지 여름이면 가만히 붙어 있질 못한다. 이마에 땀이 흐르면 온데간데없어지는 기러기, 감시를 소홀히 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수영장이나 온천 등 물에 들어가는 것 또한 엄두도 못 낸다. 타협이나 아량이 없는 물은 내가 감춰 온 비밀을 백일하에 들춰내기에, 곶감을 무서워하는 호랑이의 심정이 된다.
내가 눈썹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한 과정도 남다르다. 서른다섯 살까지는 앞 머리카락으로 눈썹을 가렸고, 이후엔 눈썹문신을 했다. 그런데 눈썹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었으니. 눈썹머리가 너무 진해 문신한 티가 나는 눈썹은 강한 거부감을 느껴졌다. 눈썹만 고쳐 놓으면 그래도 봐 줄 만할 것 같은데, 궁리 끝에 눈썹에 파우더를 발라 고쳐 그려도 기존의 문신 자국 때문에 티가 났다.
결국 문신을 레이저로 태웠다. 문신을 지우는 데 드는 비용이 문신한 값의 다섯 배라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하얗게 타 버린 반쪽짜리 눈썹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레이저에 충격을 받은 눈썹은 반쪽에서 또 반쪽이 사라졌다. 그때의 황당함을 어찌 말로 다 할까.
유전자를 탓하며 푸념해도 소용없는 일, 3~4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자연스런 문신을 다시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 믿고 맡기라던 그녀는 내 눈썹을 비대칭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도 자신의 기술이 미숙함은 인정하지 않고 내 눈썹 뼈에 죄를 뒤집어 씌웠다. 왼쪽 눈썹 뼈는 올라갔고, 오른쪽 눈썹 뼈는 내려와서 짝짝이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나.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는 일, 오른쪽 눈썹을 수정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잠시 이젠 그마저 지워져 희미하다. 허나 모든 일에는 다 장단점이 있는 법.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얼굴에 힘을 실어 주는 눈썹,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달리 연출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누려본다.
저 혼자 고상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미간은 좁게 눈썹꼬리는 살짝 올린다. 좁은 미간은 답답하고 고집스러워 타협의 여지가 없고, 끝이 올라간 눈썹은 날카롭고 차갑게 보인다. 상대방이 “음메, 기죽어.”하면 일단 성공한 셈이다.
시댁이나 친인척의 행사에 참석할 때면 음전하고 후덕한 여자로 보여야 한다. 그럴 땐 아치형으로 둥그스럼하게 그린다. 곡선은 편안하고 여성스럽다. 굵은 눈썹은 젊음과 매력의 상징이기에 경박해 보일 수 있고, 얇게 그리면 인정이 메말라 보이니 적당한 두께로 그린다.
작가협회나 세미나에 참석할 때면 깊이 있게 보여야 한다. 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살리려면 눈썹 길이의 3분의 2지점, 즉 눈썹 산을 살리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집시의 눈썹처럼 너무 짙으면 천박해 보이니까, 약간 도톰하게 그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
부부동반 모임이 있는 날은 현모양처로 보이고 싶다. 자식에겐 어질고 남편에게는 착한 아내, 차분하고 다소곳한 분위기가 풍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 ‘미인도’ 의 눈썹이 예전 미의 기준이라면, 그 눈썹보다 조금 굵게, 조금 길게, 조금 진하게 그린다. 초승달처럼 단아하게 그리면 센스 만점이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는 날이면 젊고 매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콧물을 훌쩍이며 내 뒤를 따라다녔던, 까까머리 짝꿍 머슴아의 눈부신 변신. 일일이 챙겨 주는 그 머슴아의 작은 관심이 난 싫지 않다. 눈썹연필을 든다. 손이 바르르 떨린다.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의 깊이만큼 손이 떨리고, 심장도 두근거린다.
내가 눈썹에 공들이는 것만큼 마음도 아름답게 가꾸면 좋겠지만 마음이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 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으면서 이랬다저랬다 못 되고, 간사하고, 변덕이 심한 마음이란 놈. 나는 마음의 모습을 믿지 못한다.
혹자는 “생긴 대로, 대충 하고 살지.”라며 비아냥거리지만 천만의 말씀, 내가 모나리자도 아니고 어떻게 그냥 다닐 수 있겠는가. 내 얼굴의 자존심, 내 얼굴의 인상을 요술처럼 변화시켜 주는 기러기, 나는 내 이마에 기러기가 없으면 외출을 하지 못한다.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기러기를 내 이마에 앉히는 고통, 이 얼마나 즐거운 고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