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알고리즘도 사라질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불과 몇시간이 지나자 다시 유트브 채널에 손이 가고있다. 이미 중독인가. 웃기는건 AI인지 만화인지 구별도 못하고, 그 얼굴이 그얼굴로 보이는데도, 한글번역 자막을 미처 읽어내지도 못하면서도 그렇다. 예쁘다. 내 시각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참 별나다. 아니, 나 말고도 누군가 진심인 사람들이 있기에 저렇게나 많이 만들어지고 방영이 되고 그러겠지. 설마하니 나 한사람 때문은 아닐거라는데 조금 위로가 된다. 여행이나 진품명품에는 돈이 들지만 숏폼드라마는 광고만 좀 뜰뿐 내돈이 드는것은 아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옳건 그르건 상관없지 싶은것은 너무 멀리간것인가. 다양한 사람들 속에는 가난한 사람도 있다. 이 가난한 사람들도 돈드는게 아닌 뭔가로 시간을 때우며 살아야한다. 그러다보니 별 하찮은 소일거리라도 있어야하고, 거기 숏폼이 있었다면? 건전하건 안하건 어떠랴. 아닌가. 남들 음주운전이나 도박이나 무차별 폭력에 대해서는 발끈하면서도? 사실 별반 다를것도 없다. 그게 그거다. 민폐가 없다면 그걸로 용서되거나 무마될뿐이다. 그냥 깜량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사실은 위험하다. 기왕 사람으로 왔으니 사람으로 살다가길 기도해보자.손주들은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잔소리를 한다. 에어컨이 혼자 돌아갈때도 그렇다. 밖에서 들어오면 더울게다. 그러면 선풍기면 된다는 것은 내 생각일게다.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이 더 시원할테니까. 그런데 에어컨은 비싼요금을 지불해야한다. 아빠가 혼자 벌어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니들 협조가 필요하다. 서로 협력하는게 가족이다, 등등,,.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을수가 없다. 마치 잔소리가 내 사명이라도 된것처럼. 스마트폰에 더 깊이 빠지고 있는 것 같다. 밥 먹으면서도 화장실에서도 목욕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것 같다. 이걸 누가 막지? 내가 자랐던 시절에는 뭐가 있었더라? 라디오나 시계도 집집마다 있는게 아니었다. 내가 라디오 연속극에 처음 빠졌을때는 동내 공영방송 스피카을 통해서였지 싶다. 밥그릇을 들고 스피카 앞에 서있다가 할아버지께서 스피카 스윗치를 끄셨던 것을 기억한다. ㅎㅎㅎ 그러고보니 할머니께 대들다가 할아버지께 등짝을 맞은 기억도 있다. 할아버지는, 소리내어 야단을 치신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게는 눈감아 주셨고, 영 아닐때는 행동하셨던 것같다. 할아버지, 뵙고 싶습니다. 이제, 곧 뵙게 되겠지요. 지금 제 나이가 할아버지 돌아가셨던 때 보다도 20년이나 더 지났어요. 할아버지보다 더 나이많은 손녀를 보시게 될것 같은대요. 감사하고 고마운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선지, 할아버지가 더 좋다. 우리 모녀를 보호해주시고 돌봐주신 분이신데 무슨말이 더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