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일차/독일4> 2012년 4월 27일(금) 코펜하겐-->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 기차여행의 멋
코펜하겐~함부르크를 잇는 고속열차(ICE)에서 내다 본 풍경.
유럽의 기차는 편안하고, 풍광도 멋져 여행의 맛을 더해줍니다. 질리도록 타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네덜란드 코펜하겐으로, 다시 독일 함부르크를 거쳐 프랑크푸르트까지 하루 종일 달린 날이다. 인도에서 최장 36시간 기차를 탄 적이 있는데, 유럽에서 거의 20시간 기차를 타고 달렸다. 8일 전 독일 베를린에서 함부르크와 코펜하겐을 거쳐 오슬로까지 2박3일 동안 이동했던 것을 거꾸로 돌아가는 셈이다. 3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유레일패스를 구입한 나와 동희는 터키와 그리스 여행을 마치면서부터 이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해 실제 사용기간이 2개월을 조금 넘어 패스가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분풀이하듯 지겹도록 기차를 타고 있다. 당초에 가고 싶었던 핀란드까지 가보지 못했지만, 북유럽을 실컷 돌아다녔다.
어제 저녁 저녁 11시53분 스톡홀름에서 야간열차로 출발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것이 오늘 오후 8시이므로 정확하게 20시간이 걸렸다. 날씨도 많이 변했다. 북유럽에서는 매우 쌀쌀했는데, 프랑크푸르트로 오니 완연한 봄이다. 기차에서 본 들녘에는 파랗게 싹이 돋아 있고, 튤립인지 유채인지 노란 꽃들이 지천이다. 사실 2개월 전 이탈리아를 여행할 당시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여기는 이제야 따뜻해지는 걸 보니 서유럽도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계절의 여왕이 독일에도 상륙했다. 만물이 소생하면서 도시도 활력을 찾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밤새 남쪽으로 달린 기차가 오전 7시 스웨덴의 남쪽 끝인 말뫼(Malmoe)에 도착했다. 말뫼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을 잇는 열차는 1시간에 3대나 됐다. 말뫼는 스웨덴이고, 코펜하겐은 덴마크로, 과거에는 북해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 10분이면 건너갈 수 있다. 말뫼에서 출발해 이 다리를 건너 코펜하겐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두 지역을 잇는 기차는 마치 전철 또는 교외선 같았다. 스웨덴 남부에서 국경을 넘어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출퇴근하는 주민들도 많다. 말뫼 사람들은 7시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스톡홀름보다는 코펜하겐의 경제나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 같았다. 유럽 통합이 국경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사람들의 삶, 생활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사의 시계가 8시10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8시8분 예정대로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해 중국식과 유럽식이 혼합된 음식점인 얌얌(YamYam)에서 치킨 데리야기와 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를 곁들여 먹은 식사 가격이 139DKK로 약 2만8000원 정도 했다. 그런 다음 5DKK를 내고 역의 화장실에서 간단히 양치질과 세수를 한 후, 독일 함부르크행 기차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유럽의 모든 역은 단순히 자국의 도시나 마을을 연결하는 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코펜하겐 역시 다양한 도시들로 연결되는 북유럽 교통의 중심지다. 독일 함부르크를 통해 서유럽 모든 도시로 갈 수 있고, 북유럽으로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어디든 갈 수 있다. 세계는 이렇게 통합돼가고 있는데 한국만이 좁은 영토에 갖혀 살며,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떠나고 도착하는 열차들이 전광판에 들어와 있습니다.
2~5분만에 한대씩 오고갑니다. 아주 분주합니다.
예정대로 9시45분 함부르크행 고속철(ICE 36)을 타고 코펜하겐을 출발했다. 코펜하겐에서 함부르크로 갈 때도 기차가 페리에 올라타고 북해를 넘었다. 우리가 8일 전에 넘었던 것과 반대 방향이다. 덴마크 반도를 가로질러 오후 2시20분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함부르크에 온 기념으로 독일 소시지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오후 3시24분에 출발하는 프랑크푸르트행 열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그 기차는 오지 않고, 오후 3시27분에 코펜하겐을 출발해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스트라스부르크까지 가는 기차가 3시20분경에 도착했다. 우리는 좀 망설이다가 어차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이니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 기차에 올라탔다.
페리에 올라탄 기차에서 내려, 페리의 휴게실에 왔습니다.
북유럽의 해변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력발전 단지.
풍력과 태양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계속적으로 늘려 원전을 폐쇄할 계획입니다.
북적이는 함부르크 중앙역. 역사의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확인해 보니 우리가 탄 그 기차는 일종의 완행열차였다. 주요 도시를 잇는 고속철(ICE)이 아니라 독일 내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IC(Inter-City)였던 것이다. 출발은 늦게 하지만 이 기차가 코펜하겐 역에 먼저 도착했던 것이고, 우리가 타려 했던 ICE는 출발시간이 이르지만 이 기차보다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1~2분 더 기다렸다 3시24분에 출발하는 고속철(ICE)을 탔으면 7시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IC를 타는 바람에 그보다 1시간이 더 걸린 7시55분이 돼서야 도착했다. 하지만 덕분에 차창 밖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정차하는 역도 많았고, 열차 안의 분위기도 서민적이어서 오히려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함부르크에서 독일 중부지방으로 오니 드넓은 평원에 밀이 무럭무럭 자라고, 나무에도 제법 새싹이 돋아 있다. 완연한 봄기운이 넘실거린다. 사람들도 간편한 봄옷에 발걸음이나 표정이 경쾌해 보인다. 불과 며칠 사이에 여러 계절을 맛보며 여행하고 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추운 북유럽, 산악지방에는 흰 눈이 펑펑 내리던 곳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로 온 기분이었다.
오후 8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Frankfurt Main Hauptbahnhof)에 도착했다. 동희가 아이폰을 통해 GPS를 검색해 역 앞에 있는 호스텔(Frankfurt Hostel)을 어렵지 않게 찾아 체크인(10% 예약금 제외 111.6유로 지불)을 했다. 많은 여행자들로 들썩들썩한다. 소란스러울 정도로 활기가 느껴진다. 체크인을 한 다음 호스텔 건너편의 중국음식점에서 면 요리에 모처럼 맥주까지 곁들여 식사를 했다. 13유로(약 1만8000원)로 저렴한 식사였다. 함부르크에서 먹은 소시지와 기차에서 먹은 빵 때문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기나긴 기차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밤 11시 스웨덴 스톡홀름을 출발해 덴마크를 횡단하며 20여 시간만에 도착했습니댜.
이것으로 동희와의 일주일 북유럽 여행이 끝났다. 사실상 둘만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제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오면 모든 여정이 끝났다. 동희는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라 나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몸이 따라가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다. 북유럽을 여행하는 내내 아이폰으로 게임을 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가능하면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냈지만 너무 안타까웠다. 그는 사흘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선 게임과 인터넷의 유혹이 더 심할 텐데 걱정이다. 물론 아내가 잘 도와주겠지만,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가도록 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다. 동희가 꿈을 활짝 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안타까운 마음만 앞선다. 어찌하면 좋은가. 그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수밖에....
나는 동희와 함께 유럽여행을 마치고 영국에 가서 남미 여행계획을 세운 다음, 브라질로 넘어갈 것이다. 남미에선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가능하면 남미의 남쪽 끝인 푼타 아레나스까지 간 다음에 칠레 산티아고를 거쳐 페루 리마까지 육로로 여행하고, 또 가능하다면 콜롬비아까지 여행한 후 미국으로 넘어갈 계획이다. 남미 여행은 한 달 정도로 예상한다. 가족이 함께 한다면 시간을 더 잡아야 하지만, 나 혼자 하는 여행이므로 속도를 낼 것이다.
남미에 이어 미국으로 넘어가 20일~1개월 정도 주요 도시들을 돌아본 다음,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물론, 이 계획은 상당 부분 수정됐지만)이다. 귀국은 6월말~7월초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략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셈이지만, 가보지 못한 곳도 많다. 하지만 당초 나와 가족만의 시간을 갖고자 했던 의도는 달성할 것으로 생각된다. 남미와 미국을 여행하면서 다시 한 번 내 삶을 정리하고, 글 쓰는 데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렇다면 내 여행의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할 것이다.
특히 남미와 미국을 여행하면서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풍경이나 여건이 괜찮은 곳이 있으면 상당기간 체류하면서 글을 쓰는 데 집중하고 싶다. 아무래도 혼자 하는 여행이므로 시간 조절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글 쓰는 일에 집중한다면, 그래서 나름 만족도를 높인다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장기 이동에 따른 피로도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