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초가을 햇살이 백제 큰길로 쏟아졌다. 그 아스라한 햇살조차 찌뿌둥하게 석연치 않은 것은 강 건너 포크레인과 부유하는 거품들 그리고 벌써부터 여기저기 널린 현수막 문장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난 금강,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런 부류의 문장에 대한 거슬림의 포커스는 기실 개발도상국 시국이던 나의 청소년기부터 시작되었다.
한가롭던 고향 냇가가, 어느 날 국무총리의 긴급지시로 콘크리트 직선으로 바뀌면서 장마철만 되면 물살이 엄청 빨라졌다. 물고기들이 급류 따라 떠밀려가면서 한동안 물고기 대가리가 콘크리트에 부딪치는 비명의 환청에 시달렸다. 파낸 모래가 급류에 쓸려 다시 높아지는 현상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생명체’라는 화두를 곱씹어 보았던가.
한겨레 신문 전진식 기자와 함께 취재하는 ‘금강보’는 세 곳이다. 그는 단아하고 말을 아꼈으나 움직임이 부지런한 체질이었다.
그와 함께 상류의 ‘세종보’와 중류의 ‘공주보’ 그리고 하류의 ‘백제보’인데 아래로 갈수록 강폭이 넓어지면서 보의 높이가 커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설명을 들었다.
오전 10시, 먼저 하류인 백제보에 도착했다.
몇 해 전인가. 신동엽시인 추모 행사에서, 某지역 인사가 마이크를 잡더니 ‘시인의 금강이라는 시를 보니 ‘4대강 공사의 희망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의 지역구다. 전교조 부여지회 김대열 선생의 뒤풀이 항의 풍경을 쓸쓸히 지켜봤던 그 자리였고.
백제보는 댐 모양인데 강을 가로지르는 교각이 거의 완성 중이며 20미터 남짓 전망대를 세우는 중이었고 발전소 시설도 예정된 듯하다. 개발된 둔치는 직선이고 포크레인이 지나간 자리는 운동장이 되어버렸다. 환경단체에서는 보나 제방 밑이 급류에 패여 통째로 훼손될까 봐 우려를 표한다. 특히 전망대 공사는 소모된 재정에 비해 찾는 발길이 드물 것 같은 예감도 문제지만 왠지 농촌 분위기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백제보에서 물을 가두면 하류의 물이 흐려질 것 같다고 동행인이 귀띔해준다. 둔치 백사장이 육상 준설로 사라졌고 구드레 나루도 수상 준설로 모양이 바뀌었다. 여기는 지난 해 세계 대백제전 행사를 치렀던 자리라서 행사 전 수문을 닫아 물을 채웠던 토사의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 움푹 패인 리아스식 만(灣)의 축소판으로 행사 자취만 덩그라니 보이고 강바닥에는 주차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작년 ‘세계 대백제전 행사’는 예산 규모가 컸지만 올해 ‘백제 문화제’에는 대규모 공연이 어려우므로 아무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단 한 차례 ‘행사성 건설’의 공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둔치는 나무와 풀꽃이 곡선으로 어우러져야 하는데 지금은 모래 진흙을 다진 공사판이 더 눈에 띈다. 장마철 급류에 훼손될 때마다 옮겨온 풀과 나무를 다시 심어야 한다면 홍수 때마다 걱정이 마를 날 없을 것이다. 출입 인구가 없으므로 관리의 효율성 면에서도 도심지 공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곳 왕흥사지는 백제 시대 부여 천도 후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곳이다. 왕이 유람선 배를 탔던 자리이므로 유물이 산재되어 있을 것 같아 공사판이 더욱 우려스럽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 준비설이 있지만 원형 보존을 요구하므로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래도 고란사 관광객들의 표정은 밝고 아기자기하다, 현장의 실체는 그렇게 구경꾼의 눈과 당사자들이 겪는 체감의 차원이 다르다. 수변지에서 10여 년 넘게 수박과 메론 농사를 지었다는 김某씨는.
“달고 시원한 백마강 수박 농사도 막을 내려야 한다. 수변지는 국가소유이므로 15년 농사의 보상 방법도 마땅치 않다.”
한숨을 뻑뻑 내뿜는 등허리로 콩이 튀는 것 같다. 그 자리에 관청에서 조성할 초하류의 토질 적응 여부도 아슬아슬하고.
이번에는 중류의 공주보는 이십 년 넘게 살아온 필자의 생활 거주지이므로.
포크레인과 대형트럭들이 밤낮으로 엔진을 돌리던 그 자리를 수도 없이 바라보았다. 건설 현장 근방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니 교각 맞은편 모래톱 구석으로 거품을 품은 ‘길 잃은 물’들이 보인다. 맞은편은 전설의 고마나루터다. 사내에게 버림받은 암곰이 자식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다는 슬픈 내용의 그 고마나루 전설이 지금 웅진의 어원이다.
공주보 공사 이후 곰나루 소나무 솔숲의 로망도 사라졌다. 여기저기 아름드리나무들의 베어진 밑동 너머로 소녀들의 수건돌리기나 연인들의 첫 사랑 고백 풍경이 오버랩되지만 이제는 황망히 흘러간 풍경이다.
우성 쪽으로 가는 국도 오른쪽에는 논 위에 벼 대신 강에서 퍼낸 모래를 쌓아둔 공간이 눈에 띈다. 장마와 태풍 때는 이 모래 리모델링이 우수수 잦아지기도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시도하면 자연도 당연히 거칠게 저항하므로 사라진 늪지에서는 해마다 준설 공사와 지천의 둑 공사를 되풀이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생명체와의 단절이다. 강변을 메우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호프집 조명을 매달수록 수억 년 고락을 함께 한 생명붙이들과 단절되는 것이다.
나는 기우에 빠진다. 자칫 장마철 공주보에서 막힌 물이 석장리 박물관까지 차지 않을까, 유람선 사고가 나면 강물이 어떤 모양으로 오염될까,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떠오르며 강물이 시커멓게 덮어지는 화면이 제발 소심증의 환각이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세종보는 24일 17시 개막식 행사에 일정을 맞췄다.
세종보는 2.3미터 높이와 300여 미터 남짓의 아담 사이즈 공사판이다. 원래 합강리는 미호천과 금강 본류가 합쳐지는 곳으로 수달과 같은 야생동물의 보고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공사판 철조 괴물들이 우르르 덤벼든 것이다. 기자들에게 배포된 자료에는 공사비가 대략 2,300여원으로 적혀 있다. 2,000여 명 인파 옆 수상에서 놀고 있는 윈드서핑과 카누가 연출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보도 자료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기념품인 항아리와 보온병들은 참석표를 가져온 사람들에게만 배급된단다.
하나 더.
세종보 가장자리로 어도(魚道)가 만들어져 있다. ‘물고기들이 과연 저리로 지나갈까’하는 의문도 그렇지만 문제는 한번 통과한 물고기들이 다시는 상류로 올라올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한 자 남짓 보를 계단식으로 뛰어넘어 역류하는 피라미들의 도정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관점의 차이는 ‘자연 대 인공’이며 ‘개발 대 복지’이며 ‘직선과 곡선’의 문제다. 나는 ‘강변 살자’ 부류의 음유문사는 절대 아니지만 의식 있는 적극적 환경운동가도 못 된다. 단지 지구 생태계 위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감상주의자일 뿐이다. 금강의 물새알을 보듬고 싶은데 포크레인 굉음에 짓눌린 생명체들의 가위눌림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세종보 개막 행사를 위해 동원된 인파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길목으로 썩은새 같은 어둠이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