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곡문화원 2018,
<매원마을 스케치산책>
글 스케치 최 상 대 /
전 대구경북건축가회 회장,
전 경북대 영남대 겸임 초빙교수,
한터시티건축 문화대로 대표
매화를 닮은 양반마을 매원마을
매원마을이 있는 칠곡은 아직도 왜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부고속도로로 찾아가는 길에서는 내릴곳이 칠곡IC가 아니라 왜관IC이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칠곡IC는 중앙고속도로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기 때문이다. 왜관IC에서 내려 곧바로 파미힐스 골프장 방향으로 가다 보면 좌측으로 기와집들이 모여있는 양지바른 동네가 바로 매원마을이다.
매원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3대 반촌(班村)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하회마을 양동마을에 비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매원마을은 5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으로 장원 급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서 ‘장원방(將元坊)’이라 불리기도 했다. 마을이 최대 번성기였던 1905년 무렵에는 가옥이 400여 채의 마을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마을 박곡종택에 지휘부를 설치하고 지경당(止敬堂)을 북한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했다. 당시 미군은 매원 마을의 북한군 지휘부를 향해 집중 폭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매원 마을 400여 채의 가옥 중 300여 채가 소실되면서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60여 채 집이 남아 있다.
최근 경상북도와 칠곡군은 선비문화가 서린 매원마을의 소중함을 느끼고 매원 마을의 고택들을 한국전쟁 이전의 상태로 복원사업 중이다. 특히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고택들을 하나씩 문화재로 평가받은 뒤 장차 마을 전체를 ‘민속마을(중요민속자료)’로 지정받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해은고택, 감호당, 지경당 등 3곳은 경상북도 지정문화재가 되어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는 매화가 떨어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매화낙지형(梅花落地)’형국이라 부른다. 마을 오른편 맨 위쪽을 상매라 하고 중간을 중매, 아래를 서매(하매)라 부른다.
매원의 뒷산은 '학의 둥지'라는 소학산(巢鶴山)이다. 주변에는 황학산(黃鶴山)과 유학산(遊鶴山) 등이 포진하고 있다. 매처학자(梅妻鶴子 -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매화가 있으면 응당 거기에는 학이 있기 마련이다.
소담한 인문학 공간 감호당(鑑湖堂)
감호당은 정신적 인문적 공간이자 건축이다. 민가의 사랑채나 자연 속에 위치하는 정자와는 입지가 다르지만 기능은 비슷하다. 마을 사람들이나 논객 제자들과 만나서 시를 읊고 글을 쓰고 바둑을 두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인문적 공간이다. 건축 규모가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 않고 겸손하다. 담소하고 즐기고 사색하고 공부하고 잠도 잘 수 있는 복합 기능의 건축공간이다. 작은 마당과 적당한 높이의 남향 바른 위치에 앉은 감호당 건축은 조선 중·후기 매원리 마을의 강학 공간 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건축이다. 박제된 과거의 건축에서 요즘에는 시낭송회와 음악회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경성판관, 담양부사를 지낸 석담 이윤우(1569~1634)가 매원마을의 자연 풍광에 매료돼 만년에 강학하며 거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감호정사라고도 한다. 나중에 아들인 이도장(1607~1690)이 물려받아서 이곳에 거처하며 독서와 강도(講道)에 힘썼다.
감호당 건립은 17세기 초로 추측하며 두 차례의 보수 두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존 건물은 창건 당시 모습으로 복원됐다. 남측 진입로를 돌아 서쪽, 대문간이 없이 양쪽에 기둥만 하나씩 세우고 문짝을 단 일각문(一角門)으로 측면 진입한다. 방형으로 구획된 돌담 안에 ‘一’자형 건물이 남향으로 배치하고 있다. 감호당 뒤에는 우측에 직교하여 부속건물이 있다.
건축형식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단순한 맞배지붕형식이다. 양 측면 비비람을 막는 풍판이 있고 평면은 중앙에 2통간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1칸 온돌방과 우측에 2칸 온돌방이 배열된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온돌방 뒤에는 반침이 설치돼 있다. 청방간에는 2분합 들문이 있고 온돌방 전면에는 쌍여닫이와 외여닫이 띠살창, 측면에는 외여닫이 띠살창 구조이다.
감호당(鑑湖堂)은 거울鑑, 클湖, ‘넓게 흐르는 물에 마음을 성찰하다’라고 나름대로 의역해 본다. 현판은 수미 허목(許穆)선생의 전서(篆書)이며 수월헌(水月軒) 현판이 회벽의 서까래와 나무 문짝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19호 지정)

기품 어린 당당한 양반집 지경당(止敬堂)
지경당을 찾았을 땐 대문이 잠겨 있어 서쪽 담의 임시 출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측면에서 바라보는 지경당 팔작지붕 모습에서 당당한 양반가문의 기품을 느낄 수가 있다.
오랜 세월 흔적이 밴 집은 연로한 노인의 모습이다. 삭은 흙 기와, 목조기둥, 툇마루, 찌그러진 처마,,, 마당 한켠 채마밭 배추잎은 연두색을 띠고 있었다.
지경당은 세 칸 규모의 평대문을 안에는 사랑 마당과 함께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와 나란히 중 문간채가 붙어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마치 중 문간채를 나중에 붙혀서 지은 느낌이다. 잘 생기고 당당한 사랑채를
나 들어가면 안채가 나온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좌측에는 며느리가 처음으로 시댁에 오면 머무르는 곳간 채가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살림집 구조를 잘 보여준다.
지경당의 건물은 완만한 경사지에 남동향으로 2단 터를 닦고 정침(正寢), 사랑채, 중문간채, 대문간 등 4동으로 배치되어 있다. 배치형태는 대문(3×1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있고 그 너머로 사랑채와 중문간채가 연접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중문간채는 북쪽에 위치한 정침쪽으로 날개처럼 꺾이어, 각 실이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와 중문간채가 연접되어 있음은 아주 특이한 평면구조이다.
특히 사랑채 건축은 수려한 처마선과 함께 아름다운 건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연결된 중문간체로 인하여서 동측의 처마선을 바라볼수 없음이 아쉽다.
한편 이 건물은 경북 남부지방에서 주로 나타나는 상류 주택형인 튼 ㅁ 자형 배치양식으로, 좌측으로 사랑채, 우측으로 중문간채, 그 중문간채를 들어서면 안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랑대청 천장에 연화문양 조각, 태극문양 등은 다른 곳에서 없는 멋과 여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높은 기단 위 사랑채 마루에서는 매원마을 전체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 지경당은 6.25전쟁 때 북한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어 졌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0호 지정)
해은고택(海隱故宅)
매원마을의 가장 윗쪽 상매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마을에서 가장 어르신의 집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상매 가장 가장 윗자리에는 붉은벽돌의 뽀쪽 첨탐 십자가의 매원교회가 들어서 있다. 해은고택 진입골목에 들어서면 흙담이 모이는 대문간 기와지붕위에 서양식 붉은 벽돌 교회가 버티고 있다.
해은고택은 매원마을의 주택 중에서도 그 건립 연대가 18세기 말로 아주 오래되었고, 그 규모도 잘 갖추어진 조선시대 주거 건축물로서, 그 시대적 특징과 지역의 특색이 잘 나타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고택의 3칸 규모 평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나온다. 사랑마당과 높이를 달리해 안마당이 이어진다. 사랑채, 곳간채, 안채가 ‘ㄷ’자형으로 배치되고 안채 우측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반, 측면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자연석 기단을 설치한 후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다. 평면 구성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방과 부엌을 연접시키고, 우측에 건넌방은 안 사랑의 기능이다.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기단은 자연석 기단을 다소 높게 조성한 후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전면 좌측의 4본만 원주를 사용했다. 평면 구성은 좌로부터 2통간 대청, 2칸 사랑방, 문간방, 중문간 순으로 연접돼 있다. 대청과 사랑방 사이에는 4분합 들문을 달고, 2칸의 사랑방 사이에는 4짝 미서기문을 달아 필요에 따라 4칸을 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꾸몄다. 사랑방 배면에는 출입문을 두어 안채와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랑방과 사랑마루 사이의 뒤로는 가림담장을 설치해 내외의 공간을 분명하게 구분해 놓았다. 예의를 중시하던 선비댁답게 사랑채에서 안채의 여인네를 쉽게 볼 수 없도록 담을 쌓은 것이다. 이처럼 고택 담장 하나에도 은근한 매력이 숨어 있다.
(경북문화재자료 제275호)
------------------------------------------------------------------------





---------------------------------------------------------------------
첫댓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이나 가봤지 이 매원마을은 아직 못 가봤습니다. 많이 타버려서 그런지 알려지지 않은 점이 좀 안타깝네요. 그만큼 동네를 돌면 한적하고 운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케치로 보니 더 분위기 있는 듯합니다. 감호당 의역한 뜻이 마음에 듭니다. 예로부터 거울은 성찰의 의미였지요. 매화 피는 봄날 감호당에 앉아 독서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겠지요. ^^
학이사 작가가 계시는 곳,그래서 더 아름다운 곳.
봄에 가보면 더 좋을 매원마을이네요 멋진 스케치 잘 감상하고 갑니다
흑백 사진을 보는듯한 정교한 스케치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