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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시의 해설을 읽다 보면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와 같은 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비장미는 슬픔을, 숭고미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에도 종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아름다움의 여러 갈래
시를 포함한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미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어떤 작품은 인체 비례가 조화와 균형을 잘 이뤄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면에 또 다른 작품은 인체가 왜곡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만화에서 사람의 눈을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 놓았는데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을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슬프고 애잔한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범주가 존재한답니다.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름다움의 범주를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로 나누어 설명하지요.
우아미 :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우아미는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대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아미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입니다. 8등신처럼 비례가 잘 갖춰진 인체에서도 우아미를 느낄 수 있지요. 시에서도 우아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
눈 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
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흰 수염이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
조지훈, 「향문(香紋)」 중에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성터를 거닐다 깨진 질그릇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고이 닦지요. 그런데 그 깨진 질그릇에 그려진 구름무늬가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거립니다. 구름무늬가 마치 실제 구름인 것처럼 우아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적 화자는 질그릇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먼 옛날 할 아버지의 흰 수염이 등불에 비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질그릇 무늬의 우아함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고미 :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숭고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추구해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숭고미이지요. 숭고미는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시에서 숭고미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 모두 숭고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신석정, 「들길에 서서」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현실 세계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라는 구절에 현실이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시인은 생활에 집착하기보다는 생활을 초월해서 ‘푸른 별’을 바라볼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구차한 인간 세계의 생활을 초월한 것이지요.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초월적인 삶에 대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접할 때 느끼는 미적 정서를 숭고미라고 합니다.
비장미 : 비극의 아름다움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비장미입니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비극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 「꽃」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이던 이육사가 쓴 작품으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려는 몸부림을 북극 툰드라에 피어나는 꽃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는 뭇 생명들이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꽃이 오히려 빨갛게 피어난다고 표현합니다. “목숨을 꾸며”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꽃은 수도 없이 피었다가 다시 져 버리는 운명을 겪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꽃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비장하게 계속 피어납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수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비장미입니다.
골계미 : 웃음 속의 아름다움
비장미에 비해 골계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대개 풍자나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 그릴 때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골계미는 대상과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근거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재미와 기묘함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오탁번, 「토요일 오후」 중에서
이 시에는 아직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딸아이와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아빠 사이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상황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의 유년 세계와 아빠의 성인 세계는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부조화를 겪습니다. 물론 그 부조화를 보며 독자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요.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라든가, 풍자, 해학이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골계미라고 부릅니다.
풍자와 해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풍자와 해학은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은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풍자에서 ‘자(刺)’는 찌른다는 뜻으로서 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직접 비판을 하기 어려울 때 간접적으로 돌려 비꼬는 것이 바로 풍자입니다. 이에 반해 해학은 풍자보다는 비판적인 의도가 적은 것으로 익살스러운 행위에 초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참여시가 많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참여시인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영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참여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는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이었습니다. 「풀」은 민중들이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지요. 연약해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지요.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습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지요. 그런데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중에서
이 시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하는 것은 부정한 현실에 대해 용감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한 것일까요. 순결한 눈 위에서 더러운 가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수영 시인은 현실 참여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과 같은 시도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랍니다.
신동엽 : 종로 5가의 비참한 현실
참여시인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이로는 신동엽 시인이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여러분에게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동엽은 4월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남과 북이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신동엽은 1960년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 내 현실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소년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이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소년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소년이 찾으러 온 사람이 누굴까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두 번째는 위의 인용부에서 보듯이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자갈지게 등짐 지다가 허리를 다쳐 쓰러진 노동자였습니다. 신동엽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위 인용문의 마지막 세 행을 보면 이토록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외세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시인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륙, 섬나라, 은행국은 각각 중국, 일본, 미국을 가리키는데 이들에 의해서 현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김수영, 신동엽 이외에도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시인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태일, 이성부, 민영 시인의 작품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조태일의 「국토 서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우리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담긴 시이며,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성부의 또 다른 시 「봄」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는 외세에 물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화살」 같은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랍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논쟁은 무엇인가요?
문학에서의 현실 참여 논쟁은 1960년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지, 순수한 문학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두고서 벌였던 논쟁을 가리킵니다. 이 논쟁은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당시의 문학이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되었지요. 이후 이형기 시인이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평론가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다’라며 문학을 한 가지 흐름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현실 참여 논쟁은 서구의 앙가주망(참여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4 · 19 혁명을 경험하면서 싹튼 사회 참여적 흐름이 문학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영어로 ‘모던(modern)’은 근대 또는 현대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근대나 현대를 추구하는 사상을 뜻하는 건가요? 시에서 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전통과 단절하고 현대를 지향하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단절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을 추구해 오던 인간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자 기존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모더니즘은 전통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 주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은 형식적으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가,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은 기억이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장애나 간섭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들은 기존의 서술방식과 달리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고, 앞뒤 맥락이 서로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형식이 사용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모더니즘 시는 리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시들이 리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모더니즘 시는 회화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미지란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은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화자가 감정을 호소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적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지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정보다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래 시를 감상하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알아볼까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김기림 시인의 작품입니다. 일단 이 시에서는 전통적인 리듬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연과 행의 구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조적인 이미지가 쓰이고 있지요. ‘흰 나비’와 ‘청무 밭’에서 일단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대비는 ‘나비 허리’와 ‘새파란 초승달’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에는 감정 표현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나비’로 표현된 가녀리고 순진한 존재가 ‘바다’로 상징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적 대상의 좌절과 슬픔, 비극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요. ‘서글픈’이라는 감정이입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대상의 정서가 직접 표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시는 감정에 대한 절제를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모더니즘 시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기심과 탐욕에 물들게 했고, 자연을 훼손해 왔습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다음 시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줍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이 시는 도시의 쓸쓸하고 암담한 정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라는 표현에서 도시 문명이 지닌 폭력성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와 다다이즘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통과 단절한 채 새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형식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에서는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숫자를 나열한다거나 그림을 활용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추구해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라든가,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은 모두 모더니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들입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서술하는 것이며,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형식을 일부러 깨뜨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오감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더니즘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김기림, 이상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다면 모더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로 본래는 군대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흔히 전위라고 번역되지요. 전위 부대란 전투를 치를 때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킵니다. 돌격대 내지, 선봉이라고 생각하면 쉽지요. 예술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맞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혁명적인 예술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다다이즘(dadaism)은 과거의 모든 예술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예술입니다. ‘dada’라는 말도 본래는 ‘목마’를 뜻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까닭은 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일제 강점기 시들을 공부할 때면 가끔씩 카프 계열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카프 계열의 소설가도 있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깊이 알 것도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도대체 카프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나요?
카프, 계급 해방을 꿈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민족 해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지요.
문학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 · 농민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문학 단체가 결성된 것입니다. 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젊은 문인들에 의해서 조직된 카프는 노동자 · 농민을 위한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카프의 주요 문인들은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었습니다.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중략)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에서
카프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일부만을 발췌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가 꽤 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여타의 서정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있고 사건도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를 ‘단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세 남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세 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일제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가 잡혀간 까닭은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그사이에 거북무늬 화로도 깨어집니다. 거북무늬 화로는 오빠의 굳은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화로가 깨어졌다는 것은 오빠가 더 이상 신념을 펼칠 수도 없고 가족과 만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부정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인용된 마지막 부분에 나온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은 오빠가 잡혀간 일을 가리키지요. 시적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그다음 일은 우리 동무들이 싸우는 일이라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프에 소속된 시인들은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고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시 문학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하다
카프 시인들은 1920~1930년대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 가던 시점이었지요. 또한 일제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프 시인들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프 문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했을 뿐, 언어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모자랐지요. 「우리 오빠와 화로」가 최초의 단편 서사시로 명명될 정도로 참신한 문학적 형식미를 선보인 것과 같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품이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낯설고 생경한 정치적인 표어에 독자들이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또한 기존의 시인들도 카프 시인들이 발표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이 정치 수단화되어서 그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카프는 일제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카프 시인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말았지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사회주의 문학 운동은 없었나요?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오장환의 「병든 서울」 등을 들 수 있지요. 이들은 6 · 25 전쟁 후에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분야 | 현대 시 |
목차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시의 해설을 읽다 보면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와 같은 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비장미는 슬픔을, 숭고미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에도 종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아름다움의 여러 갈래
시를 포함한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미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어떤 작품은 인체 비례가 조화와 균형을 잘 이뤄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면에 또 다른 작품은 인체가 왜곡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만화에서 사람의 눈을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 놓았는데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을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슬프고 애잔한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범주가 존재한답니다.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름다움의 범주를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로 나누어 설명하지요.
우아미 :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우아미는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대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아미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입니다. 8등신처럼 비례가 잘 갖춰진 인체에서도 우아미를 느낄 수 있지요. 시에서도 우아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
눈 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
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흰 수염이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
조지훈, 「향문(香紋)」 중에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성터를 거닐다 깨진 질그릇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고이 닦지요. 그런데 그 깨진 질그릇에 그려진 구름무늬가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거립니다. 구름무늬가 마치 실제 구름인 것처럼 우아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적 화자는 질그릇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먼 옛날 할 아버지의 흰 수염이 등불에 비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질그릇 무늬의 우아함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고미 :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숭고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추구해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숭고미이지요. 숭고미는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시에서 숭고미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 모두 숭고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신석정, 「들길에 서서」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현실 세계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라는 구절에 현실이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시인은 생활에 집착하기보다는 생활을 초월해서 ‘푸른 별’을 바라볼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구차한 인간 세계의 생활을 초월한 것이지요.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초월적인 삶에 대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접할 때 느끼는 미적 정서를 숭고미라고 합니다.
비장미 : 비극의 아름다움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비장미입니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비극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 「꽃」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이던 이육사가 쓴 작품으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려는 몸부림을 북극 툰드라에 피어나는 꽃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는 뭇 생명들이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꽃이 오히려 빨갛게 피어난다고 표현합니다. “목숨을 꾸며”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꽃은 수도 없이 피었다가 다시 져 버리는 운명을 겪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꽃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비장하게 계속 피어납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수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비장미입니다.
골계미 : 웃음 속의 아름다움
비장미에 비해 골계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대개 풍자나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 그릴 때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골계미는 대상과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근거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재미와 기묘함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오탁번, 「토요일 오후」 중에서
이 시에는 아직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딸아이와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아빠 사이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상황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의 유년 세계와 아빠의 성인 세계는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부조화를 겪습니다. 물론 그 부조화를 보며 독자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요.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라든가, 풍자, 해학이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골계미라고 부릅니다.
풍자와 해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풍자와 해학은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은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풍자에서 ‘자(刺)’는 찌른다는 뜻으로서 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직접 비판을 하기 어려울 때 간접적으로 돌려 비꼬는 것이 바로 풍자입니다. 이에 반해 해학은 풍자보다는 비판적인 의도가 적은 것으로 익살스러운 행위에 초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참여시가 많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참여시인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영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참여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는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이었습니다. 「풀」은 민중들이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지요. 연약해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지요.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습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지요. 그런데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중에서
이 시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하는 것은 부정한 현실에 대해 용감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한 것일까요. 순결한 눈 위에서 더러운 가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수영 시인은 현실 참여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과 같은 시도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랍니다.
신동엽 : 종로 5가의 비참한 현실
참여시인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이로는 신동엽 시인이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여러분에게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동엽은 4월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남과 북이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신동엽은 1960년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 내 현실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소년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이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소년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소년이 찾으러 온 사람이 누굴까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두 번째는 위의 인용부에서 보듯이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자갈지게 등짐 지다가 허리를 다쳐 쓰러진 노동자였습니다. 신동엽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위 인용문의 마지막 세 행을 보면 이토록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외세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시인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륙, 섬나라, 은행국은 각각 중국, 일본, 미국을 가리키는데 이들에 의해서 현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김수영, 신동엽 이외에도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시인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태일, 이성부, 민영 시인의 작품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조태일의 「국토 서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우리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담긴 시이며,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성부의 또 다른 시 「봄」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는 외세에 물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화살」 같은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랍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논쟁은 무엇인가요?
문학에서의 현실 참여 논쟁은 1960년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지, 순수한 문학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두고서 벌였던 논쟁을 가리킵니다. 이 논쟁은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당시의 문학이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되었지요. 이후 이형기 시인이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평론가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다’라며 문학을 한 가지 흐름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현실 참여 논쟁은 서구의 앙가주망(참여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4 · 19 혁명을 경험하면서 싹튼 사회 참여적 흐름이 문학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영어로 ‘모던(modern)’은 근대 또는 현대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근대나 현대를 추구하는 사상을 뜻하는 건가요? 시에서 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전통과 단절하고 현대를 지향하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단절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을 추구해 오던 인간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자 기존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모더니즘은 전통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 주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은 형식적으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가,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은 기억이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장애나 간섭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들은 기존의 서술방식과 달리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고, 앞뒤 맥락이 서로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형식이 사용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모더니즘 시는 리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시들이 리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모더니즘 시는 회화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미지란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은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화자가 감정을 호소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적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지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정보다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래 시를 감상하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알아볼까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김기림 시인의 작품입니다. 일단 이 시에서는 전통적인 리듬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연과 행의 구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조적인 이미지가 쓰이고 있지요. ‘흰 나비’와 ‘청무 밭’에서 일단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대비는 ‘나비 허리’와 ‘새파란 초승달’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에는 감정 표현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나비’로 표현된 가녀리고 순진한 존재가 ‘바다’로 상징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적 대상의 좌절과 슬픔, 비극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요. ‘서글픈’이라는 감정이입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대상의 정서가 직접 표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시는 감정에 대한 절제를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모더니즘 시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기심과 탐욕에 물들게 했고, 자연을 훼손해 왔습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다음 시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줍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이 시는 도시의 쓸쓸하고 암담한 정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라는 표현에서 도시 문명이 지닌 폭력성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와 다다이즘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통과 단절한 채 새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형식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에서는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숫자를 나열한다거나 그림을 활용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추구해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라든가,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은 모두 모더니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들입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서술하는 것이며,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형식을 일부러 깨뜨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오감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더니즘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김기림, 이상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다면 모더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로 본래는 군대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흔히 전위라고 번역되지요. 전위 부대란 전투를 치를 때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킵니다. 돌격대 내지, 선봉이라고 생각하면 쉽지요. 예술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맞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혁명적인 예술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다다이즘(dadaism)은 과거의 모든 예술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예술입니다. ‘dada’라는 말도 본래는 ‘목마’를 뜻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까닭은 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일제 강점기 시들을 공부할 때면 가끔씩 카프 계열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카프 계열의 소설가도 있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깊이 알 것도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도대체 카프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나요?
카프, 계급 해방을 꿈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민족 해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지요.
문학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 · 농민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문학 단체가 결성된 것입니다. 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젊은 문인들에 의해서 조직된 카프는 노동자 · 농민을 위한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카프의 주요 문인들은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었습니다.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중략)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에서
카프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일부만을 발췌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가 꽤 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여타의 서정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있고 사건도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를 ‘단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세 남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세 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일제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가 잡혀간 까닭은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그사이에 거북무늬 화로도 깨어집니다. 거북무늬 화로는 오빠의 굳은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화로가 깨어졌다는 것은 오빠가 더 이상 신념을 펼칠 수도 없고 가족과 만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부정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인용된 마지막 부분에 나온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은 오빠가 잡혀간 일을 가리키지요. 시적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그다음 일은 우리 동무들이 싸우는 일이라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프에 소속된 시인들은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고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시 문학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하다
카프 시인들은 1920~1930년대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 가던 시점이었지요. 또한 일제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프 시인들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프 문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했을 뿐, 언어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모자랐지요. 「우리 오빠와 화로」가 최초의 단편 서사시로 명명될 정도로 참신한 문학적 형식미를 선보인 것과 같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품이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낯설고 생경한 정치적인 표어에 독자들이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또한 기존의 시인들도 카프 시인들이 발표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이 정치 수단화되어서 그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카프는 일제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카프 시인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말았지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사회주의 문학 운동은 없었나요?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오장환의 「병든 서울」 등을 들 수 있지요. 이들은 6 · 25 전쟁 후에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참여시가 많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참여시인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영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참여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는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이었습니다. 「풀」은 민중들이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지요. 연약해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지요.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습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지요. 그런데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중에서
이 시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하는 것은 부정한 현실에 대해 용감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한 것일까요. 순결한 눈 위에서 더러운 가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수영 시인은 현실 참여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과 같은 시도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랍니다.
신동엽 : 종로 5가의 비참한 현실
참여시인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이로는 신동엽 시인이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여러분에게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동엽은 4월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남과 북이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신동엽은 1960년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 내 현실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소년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이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소년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소년이 찾으러 온 사람이 누굴까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두 번째는 위의 인용부에서 보듯이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자갈지게 등짐 지다가 허리를 다쳐 쓰러진 노동자였습니다. 신동엽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위 인용문의 마지막 세 행을 보면 이토록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외세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시인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륙, 섬나라, 은행국은 각각 중국, 일본, 미국을 가리키는데 이들에 의해서 현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김수영, 신동엽 이외에도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시인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태일, 이성부, 민영 시인의 작품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조태일의 「국토 서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우리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담긴 시이며,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성부의 또 다른 시 「봄」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는 외세에 물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화살」 같은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랍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논쟁은 무엇인가요?
문학에서의 현실 참여 논쟁은 1960년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지, 순수한 문학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두고서 벌였던 논쟁을 가리킵니다. 이 논쟁은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당시의 문학이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되었지요. 이후 이형기 시인이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평론가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다’라며 문학을 한 가지 흐름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현실 참여 논쟁은 서구의 앙가주망(참여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4 · 19 혁명을 경험하면서 싹튼 사회 참여적 흐름이 문학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영어로 ‘모던(modern)’은 근대 또는 현대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근대나 현대를 추구하는 사상을 뜻하는 건가요? 시에서 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전통과 단절하고 현대를 지향하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단절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을 추구해 오던 인간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자 기존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모더니즘은 전통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 주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은 형식적으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가,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은 기억이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장애나 간섭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들은 기존의 서술방식과 달리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고, 앞뒤 맥락이 서로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형식이 사용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모더니즘 시는 리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시들이 리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모더니즘 시는 회화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미지란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은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화자가 감정을 호소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적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지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정보다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래 시를 감상하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알아볼까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김기림 시인의 작품입니다. 일단 이 시에서는 전통적인 리듬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연과 행의 구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조적인 이미지가 쓰이고 있지요. ‘흰 나비’와 ‘청무 밭’에서 일단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대비는 ‘나비 허리’와 ‘새파란 초승달’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에는 감정 표현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나비’로 표현된 가녀리고 순진한 존재가 ‘바다’로 상징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적 대상의 좌절과 슬픔, 비극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요. ‘서글픈’이라는 감정이입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대상의 정서가 직접 표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시는 감정에 대한 절제를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모더니즘 시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기심과 탐욕에 물들게 했고, 자연을 훼손해 왔습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다음 시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줍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이 시는 도시의 쓸쓸하고 암담한 정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라는 표현에서 도시 문명이 지닌 폭력성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와 다다이즘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통과 단절한 채 새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형식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에서는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숫자를 나열한다거나 그림을 활용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추구해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라든가,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은 모두 모더니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들입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서술하는 것이며,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형식을 일부러 깨뜨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오감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더니즘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김기림, 이상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다면 모더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로 본래는 군대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흔히 전위라고 번역되지요. 전위 부대란 전투를 치를 때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킵니다. 돌격대 내지, 선봉이라고 생각하면 쉽지요. 예술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맞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혁명적인 예술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다다이즘(dadaism)은 과거의 모든 예술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예술입니다. ‘dada’라는 말도 본래는 ‘목마’를 뜻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까닭은 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일제 강점기 시들을 공부할 때면 가끔씩 카프 계열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카프 계열의 소설가도 있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깊이 알 것도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도대체 카프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나요?
카프, 계급 해방을 꿈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민족 해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지요.
문학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 · 농민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문학 단체가 결성된 것입니다. 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젊은 문인들에 의해서 조직된 카프는 노동자 · 농민을 위한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카프의 주요 문인들은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었습니다.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중략)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에서
카프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일부만을 발췌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가 꽤 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여타의 서정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있고 사건도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를 ‘단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세 남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세 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일제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가 잡혀간 까닭은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그사이에 거북무늬 화로도 깨어집니다. 거북무늬 화로는 오빠의 굳은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화로가 깨어졌다는 것은 오빠가 더 이상 신념을 펼칠 수도 없고 가족과 만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부정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인용된 마지막 부분에 나온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은 오빠가 잡혀간 일을 가리키지요. 시적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그다음 일은 우리 동무들이 싸우는 일이라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프에 소속된 시인들은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고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시 문학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하다
카프 시인들은 1920~1930년대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 가던 시점이었지요. 또한 일제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프 시인들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프 문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했을 뿐, 언어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모자랐지요. 「우리 오빠와 화로」가 최초의 단편 서사시로 명명될 정도로 참신한 문학적 형식미를 선보인 것과 같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품이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낯설고 생경한 정치적인 표어에 독자들이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또한 기존의 시인들도 카프 시인들이 발표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이 정치 수단화되어서 그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카프는 일제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카프 시인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말았지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사회주의 문학 운동은 없었나요?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오장환의 「병든 서울」 등을 들 수 있지요. 이들은 6 · 25 전쟁 후에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분야 | 현대 시 |
목차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시의 해설을 읽다 보면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와 같은 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비장미는 슬픔을, 숭고미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에도 종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아름다움의 여러 갈래
시를 포함한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미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어떤 작품은 인체 비례가 조화와 균형을 잘 이뤄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면에 또 다른 작품은 인체가 왜곡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만화에서 사람의 눈을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 놓았는데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을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슬프고 애잔한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범주가 존재한답니다.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름다움의 범주를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로 나누어 설명하지요.
우아미 :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우아미는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대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아미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입니다. 8등신처럼 비례가 잘 갖춰진 인체에서도 우아미를 느낄 수 있지요. 시에서도 우아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
눈 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
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흰 수염이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
조지훈, 「향문(香紋)」 중에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성터를 거닐다 깨진 질그릇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고이 닦지요. 그런데 그 깨진 질그릇에 그려진 구름무늬가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거립니다. 구름무늬가 마치 실제 구름인 것처럼 우아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적 화자는 질그릇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먼 옛날 할 아버지의 흰 수염이 등불에 비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질그릇 무늬의 우아함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고미 :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숭고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추구해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숭고미이지요. 숭고미는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시에서 숭고미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 모두 숭고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신석정, 「들길에 서서」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현실 세계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라는 구절에 현실이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시인은 생활에 집착하기보다는 생활을 초월해서 ‘푸른 별’을 바라볼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구차한 인간 세계의 생활을 초월한 것이지요.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초월적인 삶에 대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접할 때 느끼는 미적 정서를 숭고미라고 합니다.
비장미 : 비극의 아름다움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비장미입니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비극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 「꽃」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이던 이육사가 쓴 작품으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려는 몸부림을 북극 툰드라에 피어나는 꽃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는 뭇 생명들이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꽃이 오히려 빨갛게 피어난다고 표현합니다. “목숨을 꾸며”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꽃은 수도 없이 피었다가 다시 져 버리는 운명을 겪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꽃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비장하게 계속 피어납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수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비장미입니다.
골계미 : 웃음 속의 아름다움
비장미에 비해 골계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대개 풍자나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 그릴 때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골계미는 대상과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근거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재미와 기묘함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오탁번, 「토요일 오후」 중에서
이 시에는 아직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딸아이와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아빠 사이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상황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의 유년 세계와 아빠의 성인 세계는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부조화를 겪습니다. 물론 그 부조화를 보며 독자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요.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라든가, 풍자, 해학이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골계미라고 부릅니다.
풍자와 해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풍자와 해학은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은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풍자에서 ‘자(刺)’는 찌른다는 뜻으로서 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직접 비판을 하기 어려울 때 간접적으로 돌려 비꼬는 것이 바로 풍자입니다. 이에 반해 해학은 풍자보다는 비판적인 의도가 적은 것으로 익살스러운 행위에 초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참여시가 많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참여시인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영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참여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는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이었습니다. 「풀」은 민중들이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지요. 연약해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지요.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습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지요. 그런데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중에서
이 시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하는 것은 부정한 현실에 대해 용감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한 것일까요. 순결한 눈 위에서 더러운 가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수영 시인은 현실 참여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과 같은 시도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랍니다.
신동엽 : 종로 5가의 비참한 현실
참여시인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이로는 신동엽 시인이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여러분에게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동엽은 4월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남과 북이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신동엽은 1960년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 내 현실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소년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이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소년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소년이 찾으러 온 사람이 누굴까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두 번째는 위의 인용부에서 보듯이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자갈지게 등짐 지다가 허리를 다쳐 쓰러진 노동자였습니다. 신동엽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위 인용문의 마지막 세 행을 보면 이토록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외세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시인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륙, 섬나라, 은행국은 각각 중국, 일본, 미국을 가리키는데 이들에 의해서 현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김수영, 신동엽 이외에도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시인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태일, 이성부, 민영 시인의 작품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조태일의 「국토 서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우리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담긴 시이며,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성부의 또 다른 시 「봄」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는 외세에 물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화살」 같은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랍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논쟁은 무엇인가요?
문학에서의 현실 참여 논쟁은 1960년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지, 순수한 문학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두고서 벌였던 논쟁을 가리킵니다. 이 논쟁은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당시의 문학이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되었지요. 이후 이형기 시인이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평론가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다’라며 문학을 한 가지 흐름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현실 참여 논쟁은 서구의 앙가주망(참여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4 · 19 혁명을 경험하면서 싹튼 사회 참여적 흐름이 문학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영어로 ‘모던(modern)’은 근대 또는 현대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근대나 현대를 추구하는 사상을 뜻하는 건가요? 시에서 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전통과 단절하고 현대를 지향하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단절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을 추구해 오던 인간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자 기존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모더니즘은 전통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 주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은 형식적으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가,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은 기억이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장애나 간섭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들은 기존의 서술방식과 달리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고, 앞뒤 맥락이 서로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형식이 사용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모더니즘 시는 리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시들이 리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모더니즘 시는 회화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미지란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은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화자가 감정을 호소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적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지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정보다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래 시를 감상하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알아볼까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김기림 시인의 작품입니다. 일단 이 시에서는 전통적인 리듬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연과 행의 구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조적인 이미지가 쓰이고 있지요. ‘흰 나비’와 ‘청무 밭’에서 일단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대비는 ‘나비 허리’와 ‘새파란 초승달’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에는 감정 표현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나비’로 표현된 가녀리고 순진한 존재가 ‘바다’로 상징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적 대상의 좌절과 슬픔, 비극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요. ‘서글픈’이라는 감정이입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대상의 정서가 직접 표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시는 감정에 대한 절제를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모더니즘 시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기심과 탐욕에 물들게 했고, 자연을 훼손해 왔습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다음 시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줍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이 시는 도시의 쓸쓸하고 암담한 정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라는 표현에서 도시 문명이 지닌 폭력성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와 다다이즘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통과 단절한 채 새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형식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에서는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숫자를 나열한다거나 그림을 활용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추구해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라든가,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은 모두 모더니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들입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서술하는 것이며,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형식을 일부러 깨뜨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오감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더니즘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김기림, 이상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다면 모더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로 본래는 군대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흔히 전위라고 번역되지요. 전위 부대란 전투를 치를 때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킵니다. 돌격대 내지, 선봉이라고 생각하면 쉽지요. 예술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맞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혁명적인 예술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다다이즘(dadaism)은 과거의 모든 예술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예술입니다. ‘dada’라는 말도 본래는 ‘목마’를 뜻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까닭은 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일제 강점기 시들을 공부할 때면 가끔씩 카프 계열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카프 계열의 소설가도 있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깊이 알 것도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도대체 카프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나요?
카프, 계급 해방을 꿈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민족 해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지요.
문학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 · 농민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문학 단체가 결성된 것입니다. 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젊은 문인들에 의해서 조직된 카프는 노동자 · 농민을 위한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카프의 주요 문인들은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었습니다.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중략)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에서
카프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일부만을 발췌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가 꽤 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여타의 서정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있고 사건도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를 ‘단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세 남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세 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일제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가 잡혀간 까닭은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그사이에 거북무늬 화로도 깨어집니다. 거북무늬 화로는 오빠의 굳은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화로가 깨어졌다는 것은 오빠가 더 이상 신념을 펼칠 수도 없고 가족과 만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부정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인용된 마지막 부분에 나온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은 오빠가 잡혀간 일을 가리키지요. 시적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그다음 일은 우리 동무들이 싸우는 일이라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프에 소속된 시인들은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고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시 문학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하다
카프 시인들은 1920~1930년대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 가던 시점이었지요. 또한 일제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프 시인들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프 문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했을 뿐, 언어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모자랐지요. 「우리 오빠와 화로」가 최초의 단편 서사시로 명명될 정도로 참신한 문학적 형식미를 선보인 것과 같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품이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낯설고 생경한 정치적인 표어에 독자들이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또한 기존의 시인들도 카프 시인들이 발표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이 정치 수단화되어서 그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카프는 일제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카프 시인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말았지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사회주의 문학 운동은 없었나요?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오장환의 「병든 서울」 등을 들 수 있지요. 이들은 6 · 25 전쟁 후에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분야 | 현대 시 |
목차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시의 해설을 읽다 보면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와 같은 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비장미는 슬픔을, 숭고미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에도 종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아름다움의 여러 갈래
시를 포함한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미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어떤 작품은 인체 비례가 조화와 균형을 잘 이뤄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면에 또 다른 작품은 인체가 왜곡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만화에서 사람의 눈을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 놓았는데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을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슬프고 애잔한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범주가 존재한답니다.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름다움의 범주를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로 나누어 설명하지요.
우아미 :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우아미는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대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아미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입니다. 8등신처럼 비례가 잘 갖춰진 인체에서도 우아미를 느낄 수 있지요. 시에서도 우아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
눈 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
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흰 수염이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
조지훈, 「향문(香紋)」 중에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성터를 거닐다 깨진 질그릇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고이 닦지요. 그런데 그 깨진 질그릇에 그려진 구름무늬가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거립니다. 구름무늬가 마치 실제 구름인 것처럼 우아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적 화자는 질그릇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먼 옛날 할 아버지의 흰 수염이 등불에 비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질그릇 무늬의 우아함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고미 :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숭고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추구해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숭고미이지요. 숭고미는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시에서 숭고미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 모두 숭고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신석정, 「들길에 서서」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현실 세계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라는 구절에 현실이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시인은 생활에 집착하기보다는 생활을 초월해서 ‘푸른 별’을 바라볼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구차한 인간 세계의 생활을 초월한 것이지요.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초월적인 삶에 대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접할 때 느끼는 미적 정서를 숭고미라고 합니다.
비장미 : 비극의 아름다움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비장미입니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비극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 「꽃」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이던 이육사가 쓴 작품으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려는 몸부림을 북극 툰드라에 피어나는 꽃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는 뭇 생명들이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꽃이 오히려 빨갛게 피어난다고 표현합니다. “목숨을 꾸며”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꽃은 수도 없이 피었다가 다시 져 버리는 운명을 겪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꽃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비장하게 계속 피어납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수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비장미입니다.
골계미 : 웃음 속의 아름다움
비장미에 비해 골계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대개 풍자나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 그릴 때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골계미는 대상과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근거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재미와 기묘함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오탁번, 「토요일 오후」 중에서
이 시에는 아직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딸아이와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아빠 사이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상황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의 유년 세계와 아빠의 성인 세계는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부조화를 겪습니다. 물론 그 부조화를 보며 독자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요.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라든가, 풍자, 해학이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골계미라고 부릅니다.
풍자와 해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풍자와 해학은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은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풍자에서 ‘자(刺)’는 찌른다는 뜻으로서 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직접 비판을 하기 어려울 때 간접적으로 돌려 비꼬는 것이 바로 풍자입니다. 이에 반해 해학은 풍자보다는 비판적인 의도가 적은 것으로 익살스러운 행위에 초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참여시가 많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참여시인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영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참여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는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이었습니다. 「풀」은 민중들이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지요. 연약해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지요.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습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지요. 그런데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중에서
이 시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하는 것은 부정한 현실에 대해 용감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한 것일까요. 순결한 눈 위에서 더러운 가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수영 시인은 현실 참여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과 같은 시도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랍니다.
신동엽 : 종로 5가의 비참한 현실
참여시인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이로는 신동엽 시인이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여러분에게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동엽은 4월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남과 북이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신동엽은 1960년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 내 현실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소년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이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소년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소년이 찾으러 온 사람이 누굴까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두 번째는 위의 인용부에서 보듯이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자갈지게 등짐 지다가 허리를 다쳐 쓰러진 노동자였습니다. 신동엽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위 인용문의 마지막 세 행을 보면 이토록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외세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시인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륙, 섬나라, 은행국은 각각 중국, 일본, 미국을 가리키는데 이들에 의해서 현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김수영, 신동엽 이외에도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시인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태일, 이성부, 민영 시인의 작품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조태일의 「국토 서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우리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담긴 시이며,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성부의 또 다른 시 「봄」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는 외세에 물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화살」 같은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랍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논쟁은 무엇인가요?
문학에서의 현실 참여 논쟁은 1960년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지, 순수한 문학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두고서 벌였던 논쟁을 가리킵니다. 이 논쟁은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당시의 문학이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되었지요. 이후 이형기 시인이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평론가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다’라며 문학을 한 가지 흐름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현실 참여 논쟁은 서구의 앙가주망(참여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4 · 19 혁명을 경험하면서 싹튼 사회 참여적 흐름이 문학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영어로 ‘모던(modern)’은 근대 또는 현대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근대나 현대를 추구하는 사상을 뜻하는 건가요? 시에서 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전통과 단절하고 현대를 지향하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단절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을 추구해 오던 인간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자 기존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모더니즘은 전통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 주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은 형식적으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가,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은 기억이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장애나 간섭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들은 기존의 서술방식과 달리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고, 앞뒤 맥락이 서로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형식이 사용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모더니즘 시는 리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시들이 리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모더니즘 시는 회화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미지란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은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화자가 감정을 호소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적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지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정보다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래 시를 감상하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알아볼까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김기림 시인의 작품입니다. 일단 이 시에서는 전통적인 리듬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연과 행의 구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조적인 이미지가 쓰이고 있지요. ‘흰 나비’와 ‘청무 밭’에서 일단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대비는 ‘나비 허리’와 ‘새파란 초승달’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에는 감정 표현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나비’로 표현된 가녀리고 순진한 존재가 ‘바다’로 상징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적 대상의 좌절과 슬픔, 비극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요. ‘서글픈’이라는 감정이입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대상의 정서가 직접 표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시는 감정에 대한 절제를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모더니즘 시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기심과 탐욕에 물들게 했고, 자연을 훼손해 왔습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다음 시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줍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이 시는 도시의 쓸쓸하고 암담한 정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라는 표현에서 도시 문명이 지닌 폭력성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와 다다이즘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통과 단절한 채 새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형식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에서는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숫자를 나열한다거나 그림을 활용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추구해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라든가,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은 모두 모더니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들입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서술하는 것이며,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형식을 일부러 깨뜨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오감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더니즘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김기림, 이상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다면 모더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로 본래는 군대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흔히 전위라고 번역되지요. 전위 부대란 전투를 치를 때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킵니다. 돌격대 내지, 선봉이라고 생각하면 쉽지요. 예술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맞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혁명적인 예술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다다이즘(dadaism)은 과거의 모든 예술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예술입니다. ‘dada’라는 말도 본래는 ‘목마’를 뜻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까닭은 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일제 강점기 시들을 공부할 때면 가끔씩 카프 계열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카프 계열의 소설가도 있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깊이 알 것도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도대체 카프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나요?
카프, 계급 해방을 꿈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민족 해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지요.
문학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 · 농민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문학 단체가 결성된 것입니다. 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젊은 문인들에 의해서 조직된 카프는 노동자 · 농민을 위한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카프의 주요 문인들은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었습니다.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중략)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에서
카프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일부만을 발췌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가 꽤 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여타의 서정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있고 사건도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를 ‘단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세 남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세 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일제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가 잡혀간 까닭은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그사이에 거북무늬 화로도 깨어집니다. 거북무늬 화로는 오빠의 굳은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화로가 깨어졌다는 것은 오빠가 더 이상 신념을 펼칠 수도 없고 가족과 만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부정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인용된 마지막 부분에 나온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은 오빠가 잡혀간 일을 가리키지요. 시적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그다음 일은 우리 동무들이 싸우는 일이라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프에 소속된 시인들은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고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시 문학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하다
카프 시인들은 1920~1930년대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 가던 시점이었지요. 또한 일제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프 시인들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프 문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했을 뿐, 언어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모자랐지요. 「우리 오빠와 화로」가 최초의 단편 서사시로 명명될 정도로 참신한 문학적 형식미를 선보인 것과 같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품이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낯설고 생경한 정치적인 표어에 독자들이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또한 기존의 시인들도 카프 시인들이 발표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이 정치 수단화되어서 그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카프는 일제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카프 시인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말았지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사회주의 문학 운동은 없었나요?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오장환의 「병든 서울」 등을 들 수 있지요. 이들은 6 · 25 전쟁 후에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분야 | 현대 시 |
목차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시의 해설을 읽다 보면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와 같은 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비장미는 슬픔을, 숭고미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막상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에도 종류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아름다움의 여러 갈래
시를 포함한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미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어떤 작품은 인체 비례가 조화와 균형을 잘 이뤄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면에 또 다른 작품은 인체가 왜곡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만화에서 사람의 눈을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려 놓았는데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을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밖에도 슬프고 애잔한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에는 다양한 범주가 존재한답니다.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름다움의 범주를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로 나누어 설명하지요.
우아미 : 조화와 균형, 통일성의 아름다움
우아미는 조화롭고 균형을 잘 갖춘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대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아미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입니다. 8등신처럼 비례가 잘 갖춰진 인체에서도 우아미를 느낄 수 있지요. 시에서도 우아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
눈 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
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흰 수염이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
조지훈, 「향문(香紋)」 중에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성터를 거닐다 깨진 질그릇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그것을 고이 닦지요. 그런데 그 깨진 질그릇에 그려진 구름무늬가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거립니다. 구름무늬가 마치 실제 구름인 것처럼 우아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적 화자는 질그릇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동화되어 먼 옛날 할 아버지의 흰 수염이 등불에 비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요. 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정체는 질그릇 무늬의 우아함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고미 : 장엄하고 거룩한 초월적 아름다움
숭고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추구해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바로 숭고미이지요. 숭고미는 대체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시에서 숭고미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 모두 숭고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신석정, 「들길에 서서」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인간의 현실 세계를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라는 구절에 현실이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시인은 생활에 집착하기보다는 생활을 초월해서 ‘푸른 별’을 바라볼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구차한 인간 세계의 생활을 초월한 것이지요.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초월적인 삶에 대해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접할 때 느끼는 미적 정서를 숭고미라고 합니다.
비장미 : 비극의 아름다움
비장미는 현실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주어진 여건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비장미입니다. 비극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모순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비극이 아름다운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 「꽃」
이 시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이던 이육사가 쓴 작품으로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려는 몸부림을 북극 툰드라에 피어나는 꽃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는 뭇 생명들이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꽃이 오히려 빨갛게 피어난다고 표현합니다. “목숨을 꾸며”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꽃은 수도 없이 피었다가 다시 져 버리는 운명을 겪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꽃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비장하게 계속 피어납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수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비장미입니다.
골계미 : 웃음 속의 아름다움
비장미에 비해 골계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대개 풍자나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 그릴 때 이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골계미는 대상과 상황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근거로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재미와 기묘함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세 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나? 내 불알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나?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오탁번, 「토요일 오후」 중에서
이 시에는 아직 사물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딸아이와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아빠 사이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상황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의 유년 세계와 아빠의 성인 세계는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부조화를 겪습니다. 물론 그 부조화를 보며 독자들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요.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라든가, 풍자, 해학이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골계미라고 부릅니다.
풍자와 해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풍자와 해학은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은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풍자에서 ‘자(刺)’는 찌른다는 뜻으로서 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직접 비판을 하기 어려울 때 간접적으로 돌려 비꼬는 것이 바로 풍자입니다. 이에 반해 해학은 풍자보다는 비판적인 의도가 적은 것으로 익살스러운 행위에 초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장미, 골계미, 숭고미는 무슨 뜻인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참여시가 많이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참여시인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김수영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참여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는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풀」은 부당한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 저항의지를 불태운 작품이었습니다. 「풀」은 민중들이 힘겹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었지요. 연약해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그려졌지요.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적인 시를 쓰던 작가였습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식을 지닌 시인이었지요. 그런데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부패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중에서
이 시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권하는 것은 부정한 현실에 대해 용감하게 대응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자고 한 것일까요. 순결한 눈 위에서 더러운 가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김수영 시인은 현실 참여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과 같은 시도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랍니다.
신동엽 : 종로 5가의 비참한 현실
참여시인 중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이로는 신동엽 시인이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여러분에게 「껍데기는 가라」라는 작품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동엽은 4월 혁명의 정신과 동학 혁명의 정신적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남과 북이 외세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화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신동엽은 1960년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 내 현실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시적 화자인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어떤 소년 하나를 마주합니다. 그 소년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이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소년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소년이 찾으러 온 사람이 누굴까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상상 속의 인물들은 모두 어렵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을 파는 여자였고 두 번째는 위의 인용부에서 보듯이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자갈지게 등짐 지다가 허리를 다쳐 쓰러진 노동자였습니다. 신동엽은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당시의 현실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위 인용문의 마지막 세 행을 보면 이토록 현실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외세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시인이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대륙, 섬나라, 은행국은 각각 중국, 일본, 미국을 가리키는데 이들에 의해서 현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제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조태일, 이성부, 민영, 김지하, 고은의 작품도 주목하길!
김수영, 신동엽 이외에도 현실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자 했던 시인은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조태일, 이성부, 민영 시인의 작품은 여러분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조태일의 「국토 서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우리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담긴 시이며, 이성부의 「벼」는 민중의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태도가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성부의 또 다른 시 「봄」은 부정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는 외세에 물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화살」 같은 작품도 꼭 읽어 보길 바랍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논쟁은 무엇인가요?
문학에서의 현실 참여 논쟁은 1960년대,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지, 순수한 문학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두고서 벌였던 논쟁을 가리킵니다. 이 논쟁은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당시의 문학이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되었지요. 이후 이형기 시인이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또다시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평론가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영 시인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다’라며 문학을 한 가지 흐름에만 가두어 놓으려는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현실 참여 논쟁은 서구의 앙가주망(참여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4 · 19 혁명을 경험하면서 싹튼 사회 참여적 흐름이 문학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여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영어로 ‘모던(modern)’은 근대 또는 현대라고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근대나 현대를 추구하는 사상을 뜻하는 건가요? 시에서 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전통과 단절하고 현대를 지향하다
모더니즘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단절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성과 도덕을 추구해 오던 인간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자 기존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모더니즘은 전통보다는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인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또한 도시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 주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은 형식적으로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든가, 자동기술법과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은 기억이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런 장애나 간섭 없이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이 방법들은 기존의 서술방식과 달리 문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고, 앞뒤 맥락이 서로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형식이 사용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모더니즘 시는 리듬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시들이 리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모더니즘 시는 회화성을 중시했습니다. 이미지란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는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성의 작용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관과 상상력은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화자가 감정을 호소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었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를 주지주의적이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주지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감정보다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래 시를 감상하며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더 분명하게 알아볼까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끌었던 김기림 시인의 작품입니다. 일단 이 시에서는 전통적인 리듬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연과 행의 구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운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 시에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조적인 이미지가 쓰이고 있지요. ‘흰 나비’와 ‘청무 밭’에서 일단 흰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대비는 ‘나비 허리’와 ‘새파란 초승달’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지요.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에는 감정 표현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나비’로 표현된 가녀리고 순진한 존재가 ‘바다’로 상징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시적 대상의 좌절과 슬픔, 비극이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요. ‘서글픈’이라는 감정이입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적 화자라든가 시적 대상의 정서가 직접 표출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시는 감정에 대한 절제를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모더니즘 시의 내용상 특징으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기심과 탐욕에 물들게 했고, 자연을 훼손해 왔습니다. 모더니즘 시는 이런 현대 도시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습니다. 다음 시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줍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이 시는 도시의 쓸쓸하고 암담한 정서를 그려 내고 있습니다.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라는 표현에서 도시 문명이 지닌 폭력성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다고 말합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와 다다이즘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통과 단절한 채 새로움을 추구하려 합니다.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형식적으로도 그렇지요. 그런 까닭에 모더니즘 시에서는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숫자를 나열한다거나 그림을 활용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추구해 왔습니다.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초현실주의라든가,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은 모두 모더니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들입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서술하는 것이며, 다다이즘과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형식을 일부러 깨뜨려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사조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의 「오감도」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더니즘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김기림, 이상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다면 모더니즘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와 다다이즘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로 본래는 군대 용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흔히 전위라고 번역되지요. 전위 부대란 전투를 치를 때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킵니다. 돌격대 내지, 선봉이라고 생각하면 쉽지요. 예술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맞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과거에 없었던 혁명적인 예술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지요.
다다이즘(dadaism)은 과거의 모든 예술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예술입니다. ‘dada’라는 말도 본래는 ‘목마’를 뜻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예술이 등장한 까닭은 1차 세계대전 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미 없는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모더니즘 시는 어떤 점이 모던한가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분야 | 현대 시 |
목차
일제 강점기 시들을 공부할 때면 가끔씩 카프 계열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카프 계열의 소설가도 있고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깊이 알 것도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도대체 카프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창작했나요?
카프, 계급 해방을 꿈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민족 해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주의 운동이었지요.
문학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 · 농민을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문학 단체가 결성된 것입니다. 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젊은 문인들에 의해서 조직된 카프는 노동자 · 농민을 위한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카프의 주요 문인들은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었습니다.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중략)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애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에서
카프 문학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는 시입니다. 아쉽게도 일부만을 발췌했는데 그 까닭은 이 시가 꽤 길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여타의 서정시와는 달리 등장인물도 있고 사건도 있어서 마치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를 ‘단편 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세 남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세 남매의 맏이인 오빠가 일제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가 잡혀간 까닭은 노동자 단체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그사이에 거북무늬 화로도 깨어집니다. 거북무늬 화로는 오빠의 굳은 신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화로가 깨어졌다는 것은 오빠가 더 이상 신념을 펼칠 수도 없고 가족과 만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두 남매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부정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인용된 마지막 부분에 나온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은 오빠가 잡혀간 일을 가리키지요. 시적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그다음 일은 우리 동무들이 싸우는 일이라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프에 소속된 시인들은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받아들이고 시를 사회 혁명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시 문학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하다
카프 시인들은 1920~1930년대 적지 않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널리 퍼져 가던 시점이었지요. 또한 일제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프 시인들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프 문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행과 연을 구분했을 뿐, 언어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많이 모자랐지요. 「우리 오빠와 화로」가 최초의 단편 서사시로 명명될 정도로 참신한 문학적 형식미를 선보인 것과 같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한 작품이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낯설고 생경한 정치적인 표어에 독자들이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또한 기존의 시인들도 카프 시인들이 발표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이 정치 수단화되어서 그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카프는 일제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카프 시인들의 활동도 뜸해지고 말았지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사회주의 문학 운동은 없었나요?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을 더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오장환의 「병든 서울」 등을 들 수 있지요. 이들은 6 · 25 전쟁 후에 좌익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왜 카프 작품은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나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교과 연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