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영웅 바벨탑 근친결혼
사촌형제 루카스와 오스카는 숲정이마을삼촌 ‘키예프’를 만나 들었다는‘막시’이야기에 반전의 감동이 밀려왔다.
막시는 목사가 되어 군목으로 들어가서‘크리스천 징집 묘책 방안’을 만들어 독일군대를 속였다.
속인 것은 군대만이 아니라 루카스도 속아서 독일 군이 되었고, 전투에 참여해서 생사의 사투만 벌인 터라
막시에 대한 미움만 태산처럼 쌓아서 돌아왔었다.
그 당시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같은 ‘영웅’과 신화의 인물들을 추앙하는 풍조와 문학으로 서사시에 흠뻑
빠져든 피 끓는 청년들을‘영웅 만들기’라는 미명하에 모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 독실한 크리스천을 비밀리에
교육하여 전쟁에 죽어갈 폴란드와 유대인 슬라브족 그리고 주변국가 청년들을 자신이 만든 건축회사로
빼돌려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맡겼다.
루카스는 이제야 밝혀진 진실 앞에 늘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위해 한 박자 늦은 대답으로 해답을 찾았지만
아직도 지혜가 많이 부족했다고 느꼈다.
“내가 그동안 막시 형을 너무 미워하고 오해해서‘숭고한 생명사랑정신’에 한 몫을 담당하는 영웅이 되지
못하고 돌아 왔구나. 막시 형은 진정 숲정이와 폴란드 그리고 유대인과 주변국가 청년들에게 마땅히
추앙받을만한 진정한 영웅이었는데.”
눈물까지 글썽이는 감동을 말하자 리나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루카스의 입대 동기‘하리코프’이야기를 꺼냈다.
“복면신사 하리코프는 우크라이나 청년인데 불속에까지 뛰어드는 용기와 사랑으로 막시 목사님을 구했는데
당신은 같은 마을 형이고 존경하는 에밋 장로님 아들인데 하리코프처럼 뛰어들 용기가 있었을까요?”
“어? 그게 그러니까......”
루카스는 리나의 돌발 질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여전히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현명한 답을 찾으려고 한 박자
늦은 대답을 했다.
“그때는 속아서 왔다는 생각에 막시 형을 미워했고, 나는 반드시 숲정이로 돌아가서 리나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내가 당신을 하리코프 같은 영웅을 만들지 못하게 한 걸림돌이 되었네요?”
루카스는 걸림돌이라는 말에 마음이 걸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실을 가감 없이 말했다.
“아니요 그건. 전쟁이 끝나고 막시 형이 나를 영웅을 만들려고 붙잡았지만 내가 막시를 너무 미워해서
우격다짐으로 숲정이로 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형이 암묵적으로 리나와 결혼해서 숲정이를 지키라고
돌려보낸 거잖아요.”
루카스의 재빠른 대답에 모두 웃으며 아멘으로 화답했다.
벤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숲정이의 유일한 생존자인 ‘제인’과 ‘필릭스’를 만났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 주었다.
하지만 심중에 말인 제인에게서 났다는 꽃향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늦은 밤 피곤함이 몰려오자 모두 잠자리로 돌아가고 리나와 이자벨라는 벤과 요하나의 결혼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자벨라, 벤이 요하나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왔을까?”
“아직 모르겠어요. 다른 이야기만 하는 것으로 보아서 좀 더 두고 물어 봐야 할 것 같아요.”
지질학자들은 헤이든을 보자 설명이 시작되었다. 벨라루스에 민스크 소비에트 브랸스크 교수는 그동안
살펴본 주상절리 주변의 토양과 지질 환경들을 말하고 헤이든은 기록했다.
“화산 활동으로 생긴 주상절리가 관광 목적으로는 장관이지만 1번 지역으로 난 계곡은 토사가 흘러내리고
쌓인 흙과 참나무 가시나무등 낙엽이 1미터를 넘어요.”
“맞아요. 2,3번 지역도 땅이 많은 퇴적층을 이루어 폭신하고 습기를 머금고 있어요.”
“그건 그렇지만 강수량이 적어요. 그러면 가뭄이 유기물 분해 작용을 방해하고 증발이 심해서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서 부식토를 증가 시키지요.”
“부식토에 칼슘 성분은 봄에 녹는 눈으로 지층까지 스며들고 산성 함유가 낮고 부식물이 많아지면 농사
짓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 될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4,5 구역을 살펴봅시다.”
아침이 왔다. 벤은 그동안 갑갑했던 목과 헛기침도 깨끗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코끝으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양을 넣어둔 동굴로 갔다. 양을 보며 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들과 호수 한 바퀴를 돌았다. 각종 새와 오리가 날고 계곡과 집 뒤로 펼쳐진 주상절리 한 폭의 그림에
새삼스럽게 반한 아침이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다가 우물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어머니를 만났다.
두 어머니는 이미 둘의 결혼 문제를 많이 상의한 것처럼 번갈아가며 물었다.
“요하나는 반승낙을 했거든? 벤은 어떻게 결정하고 왔을까?”
“예? 아 아직요.”
“왜? 아버지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결정을 하려고 아직 못했나?”
“그건 아닙니다.”
“아들, 요하나가 완전히 승낙한다면 할 거야?”
“어머니. 승낙여부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큰일을 앞두니 결정이 어려워서 그래요.”
“인생은 다 첫 경험이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나와 이자벨라도 숲정이에서 결혼할만한 남자가 딱 두 명
뿐이라 결혼한 케이스지. 그리고 여기엔 요하나 밖에 없으니 너의 선택도 요하나 뿐이야 안 그래?”
“예. 알겠습니다.”
벤은 여행을 간 사이에 이미 가족들은 부부로 맺어 버린 느낌이었다. 아니라고 대답할 용기도 없어 정해진
수순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제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렇다고 요하나는
기다리는 체르노빌이 있으니 결혼은 못하겠고, 몇 년 만에 한번 본 제인과 결혼을 하겠다는 말은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말이어서 삼켜 버렸다.
두 어머니는 기쁨에 번갈아 벤을 안아 주는데 벤은 자꾸만 제인이 마음에 걸렸다. 제인의 꽃향기는 지울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허상이라 생각했다. 너무나 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제인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등 떠밀려 결정하고 말았다.
지질학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일정을 상의하고 있었다.
두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벤의 결혼승낙에 하나가 되어 들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요하나는 오늘따라 더 밝은 두 어머니들을 훔쳐보다가 벤과 결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생각을 하자 얼굴이 붉어졌다.
요하나는 미루어 짐작해서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멀리서부터 개들이 짖으며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요하나는 두 손을 들어 반기자 와락 달려들고
그 힘에 밀려 넘어졌다. 헤이든은 얼른 요하나를 일으키며 개들이 힘이 엄청 세다며 다친 곳은 없느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리투아니아 산 순종이라고 아버지가 사온 개인데 워낙 힘이 넘쳐서 가끔 그래요.”
“와우! 듣고 보니 성견이 되면 엄청 나겠어요.”
헤이든은 순종이라는 말에 개를 어떻게 사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때 루카스와 오스카가 둘의 대화를
듣고 오스카가 끼어들었다.
“숲정이 마을에 늑대가 나타나서 장로님아내를 물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마을 회의를 열어 개를
사오자고 했지요. 제가 키예프 삼촌과 먼 길을 나섰다가 마침 두 달 쯤 된 새끼 개를 만났어요.
할아버지에게 6마리를 중에 암수 두 마리만 팔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팔기로 예약된 개이고 한사람한테
두 마리를 못 판다고해서 암컷 한 마리만 사 오게 되었어요.”
“그럼 수캐는 다른데서 사오셨나요?”
“아니요. 1시간 가까이 산길을 넘어 왔는데 멀리서 개가 따라오는 겁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은 멀고 늑대가
나올까 두려워 그냥 가지고 왔지요. 그래서 암수 한 쌍을 키우게 됐어요.”
학자들은 축복이라며 웃었다. 헤이든은 친절한 의사와 기자 근성은 끝나지 않았다.
“그럼 새끼들은 잘 낳고 지금까지 아무 일없이 건강하게 키우신 겁니까?”
“아니죠~ 건강하다는 순종이 새끼만 낳으면 기형으로 다 죽고 겨우 두 마리씩만 남았어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우리가 채식주의자라 먹이를 잘 주지 못해서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그랬군요.”
리나가 식사를 하자고 불렀다. 식사 후 티타임에 헤이든은 또 다시 궁금증이 발동했다.
“여긴 늑대가 많이 사나요?”
“예. 겨울 추위에 배고픈 늑대 십여 마리가 몰려와서 쫒아낸 이후로는 못 보았는데 늑대가 나타날까봐
무서워서 그러세요?”
헤이든은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늑대는 무리를 지어 사는데 성장하면 독립을 하지요. 그런데 무리가 많아지면 다툼이
일어나거나 또 다른 무리에 들어가 살기도 하는데 왜 그러는지 아시나요?”
모두 대답을 하지 못하자 헤이든이 자문자답을 했다.
“그것은 만물을 창조한 창조자의 위대한 법칙입니다.”
“예?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나요?”
“예? 그건 아니지만 바벨탑 사건은 아시지요?”
“예. 노아 자손들이 신에게까지 오르려는 교만함으로 탑을 쌓다가 노한 신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대화를 못하게 되자 탑이 중단되고 그 후로 흩어져 살게 되었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예?”
“늑대가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면 어떻게 될까요?”
“예? 조금 전에 다툰다고 했지 않나요?”
가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헤이든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투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일이 생깁니다.”
“예? 무슨 큰일이.”
“그건 바로 ‘근친교배’ 입니다. 그럼 기형이 나오고 늑대는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벨탑 사건으로 사람들을 흩어지게 했다고 봅니다.”
“예? 바벨탑 사건에 그런 큰 뜻이 있었나 봅니다. 놀라워요 창조자의 계획이.”
근친교배라는 말에 잠시 모두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 이유는 부모가 사촌이고 벤과 요하나는‘근친결혼’
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헤이든이 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개도 늑대와 흡사하지요 근친교배를 하면 잠복해 있던 유전자로 기형을 낳게 되지요. 그래서 말씀인데
개는 순종일수록 기형이 나올 확률이 높아요. 잡종과 교배를 하면 아무런 탈이 없는 거지요.
다시 말씀 드리자면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흩어져 모든 땅을 정복하고 살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게 하려는 창조자의 놀라운 계획이라고 봅니다.”
“주여~”
“그래서 할아버지가 한 배에서 나온 암수를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하셨고, 저도 어렸을 때 새끼를 낳으면
따로 떼어 멀리 보내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분명히 저 개들은 근친 교배로 기형을 낳아
겨우 두 마리만 살아남았을 겁니다.”
“주여~우리는 영양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개들이 죽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개는
천공이 있고, 항문이 없고, 다리도 하나 부족하고 그랬나 봅니다.”
헤이든은 이번엔 개들의 수명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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