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25)
*관북천리 (關北千里) 안변 가학루에서
김삿갓은 살며시 장짓문을 열었다.
장짓문이 바사삭 소리를 내며 열리는데도
여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기척이 없었다. 김삿갓은 문틈으로 살며시 종이를 밀어 넣었다.
"어머나 ! "
비로서 여인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삿갓은 아무말 없이 방문을 다시 살며시 닫았다.
여인이 종이를 펼쳐 보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한동안 쥐 죽은듯 방안의 동정을 살피던 김삿갓은 애가 탔다.
지금쯤이면 글을 모두 읽었을 것인데
방안의 동정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하였다.
(젠장 , 글 뜻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게아냐 ?)
김삿갓은 자신이 여인의 교양을 너무 높이 본 것 아닌가 여겼다.
그러나 이쯤 나갔으니 이제는 그대로 물러 설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에헴!"하고 인기척을 내서
아직도 자신이 방문 앞에 서 있음을 여인에게 알리고 싶었다.
"누구셔요 ?"
여인은 딴청을 부리며 물었다.
"사랑채 선비 말고 누가 또 올 사람이 있소이까?" 이번에는 김삿갓이 튕겨 보았다.
"어찌 밖에 계셔요? 추우실터인데 .."
"글을 보셨으면 답장을 받아야 할것 아닙니까 ?"
그제서야 방문이 열렸다.
"남녀가 유별할 시각이지만 은밀히 찾아오신 손님을 내쫒을 수야 있나요.
들어오세요."
김삿갓은
여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 춥다 ! "
김삿갓은 깔아 놓은 비단 이불을 들추고
몸을 밀어 넣으며 능청을 피웠다.
"어머, 어머!"
여인은 얼굴이 상기되며
김삿갓의 무례한 행동을 새삼스럽고 흥미있게 바라 보았다.
"허, 내 오늘 부인의 미모와 교양에 취해 나비가 되어 찾아왔습니다 그려..."
"호호호 ..
그럼 제가 꽃이란 말씀이신가요?"
"아무렴요, 향기를 가득 품은 꽃이지요"
여인은 본능적으로 교태를 짓고 있었다.
김삿갓은 슬그머니 여인의 허리를 감았다.
"이러시면 안되요."
여인은 살며시 몸을 꼬며 삿갓의 애간장을 녹였다.
"아까 나의 뜻을 전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이 큰 집에는 부인과 나밖에 없습니다.
피 끓는 젊은 남녀가 하룻밤 회포를 푼다고 죄될 것이 없습니다.
부인, 모처럼의 기회 우리 두사람 .. 꼴깍~
회포 한 번 맘껏 풀어봅시다."
이렇게 말을한 김삿갓은
여인의 허리를 힘껏 껴안은 채 비단요 위에 천천히 뉘었다.
김삿갓은 초례를 마친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기듯, 떨리는 손으로 여인의 옷을 하나씩 벗겨갔다.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여인은 온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벗긴 옷 끈을 쉽게 놓지 못하고 끝을 잡고 있었다.
여인의 몸은 우윳빛처럼 희고 탄력있었다. 벗겨 놓은 몸에서는 난사향이 풍겼다.
"아아 ..이렇듯 황홀한 때가 또 있었던고?" 김삿갓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인은 얼굴이 상기되어 가볍게 떨고 있었다.
두사람이 한 데 섞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로, 육욕에 굶주린 세월과 시간이 얼마이던가?
김삿갓과 여인은 외금강과 해금강이 동해에서 섞이듯, 소용돌이치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김삿갓은 폭포수가 절벽 아래로 내리 꼿듯 모든 것을 쓷아냈다.
여인은 은절구가 되어 세찬 폭포수를 온몸으로 받아 주었다.
夜深
깊어가는 이밤
水作瀑杵 春絶銀臼
물은 세찬 폭포가 되어 은절구를 찧고
窓外
창밖에는
月白雪白 天下地白
달빛도 희고 눈빛도 희고 세상천지 모두 하얗다.
****
다음날, 김삿갓은 사랑방에서 느즈막히 일어났다. 밖에서는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온 것 같은데 여인이 뭐라고 분부를 내리는 것으로 보아, 식구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주모도 돌아왔고 머슴도 돌아왔다.
안방 여인은 사랑에 묵고 계시는 선비가 천하의 명문장가로 청원서를 써주셨으니 아침이 끝나는 대로 관아에 가지고 가야한다고 설쳐댔다.
여자란 낮과 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더니 그말이 옳다고 김삿갓은 생각했다.
지난밤에 있었던 두 사람의 황홀한 순간을 생각한 것이다.
잠시후 아침상이 들어왔다. 역시 상다리가 휘어졌다.
"저는 마당쇠를 데리고 관아에 들어가 어제 써주신 글을 직접 사또께 드리고 오겠습니다.
떠나지 마시고 사또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보셨으면 좋겠어요."
여인은 남편에게 대하는 모양으로
말을 하며 은근히 김삿갓을 붙잡았다.
김삿갓은 대답대신 빙그레 웃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관아로 떠난 여인은 점심나절이 되자 만면에 희색을 띄며 돌아왔다.
앞으로 열흘안에 안진사네 산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또의 약속을 받아왔다고 하였다.
"청원서를 써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기에 삿갓을 쓴 젊은 과객이라 하였더니 사또의 낯빛이 변하더군요. 암행어사라도 되는 줄 알았던가봐요."
여인은 다녀온 관아에서의 일을 소상히 말하며 김삿갓을 향해 은근한 추파를 던져왔다.
그날밤 김삿갓은 아랫 사람들 모르게 주인여자와 다시 은근한 정을 나누었다.
다음날 일찍, 관아에서 나졸 하나가 찾아왔다.
"주인 마님 계십니까?"
나졸은 사또의 분부라며 급히 주인 여자를 찾았다. 주인 여자가 나오자 나졸은 이렇게 말을 했다.
"아주머니, 어제 올리신 청원서를 보신 우리 사또께서 크게 탄복을 하시고 오늘중에 안진사를 불러 해결을 한다고 하셨으니 염려는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사또께서 어제 그 글을 쓰신 선비께서 아직도 댁에 유하고 계신지 알아보고 오라 하셨습니다."
"아직 유하고 계십니다만 무슨 일 이신지요?"
"만나 뵙고 사또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김삿갓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그러시다면 이리 오세요."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문밖으로 가까워졌다.
"저 손님!"
여인이 김삿갓을 불렀다. 그는 방문을 열었다.
"뉘시오?"
김삿갓은 밖에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지만 시침을 떼고 물었다.
"선비님이셨군요. 저희 사또께서 분부를 하셔서 찾아뵈었습니다."
"사또께서요? 나는 죄 지은 일이 없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선비님께서 어느때 이곳을 떠나실지 모르겠사오나, 떠나시기전에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무슨 일이랍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희 사또께서 풍월을 즐기시는 터이라 어제 선비님이 써 올리신 청원서를 보시고 몇 번씩 감탄하신 것으로 보아 모셔다가 풍월을 즐겨 보시려는가 봅니다."
"허, 이거 영광이로소이다. 내 오늘 중에 찾아 뵙겠다고 말씀 올리시구려."
나졸은 삿갓에게 고개를 굽신하더니 물러갔다.
김삿갓은 더 머물러 있으라는 여인의 청을 뿌리치고 길을 떠났다.
그가 관아에 도착한 때는 정오가 조금 비켜서였다.
"어서 올라오시오."
사또는 마치 구면을 대하듯이 그를 반겨주었다.
"보잘것 없는 일개 과객을 이렇듯 환대해 주시니 황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김삿갓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사또는 사십쯤 된 장년으로 안색도 허옇고 살집도 있어 호인의 인상으로 보였다.
"앉으십시다. 어제 보낸 글을 보고 내 무척 탄복했소이다. 그래 한번 만나뵙고 술이라도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김삿갓은 자신의 글을 알아보는 사또에게 호감을 느꼈다.
아울러 사또도 상당한 실력가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권오익이라 합니다."
사또가 먼저 자기 이름을 밝혔다.
"죄송합니다만 삿갓을 쓰고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근본이 있겠습니까.
다만 본관은 장동 김가이오니 김립(金笠)이라 불러주십시오."
"김립이오?"
사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습니다."
"그럼 금강산 일대에서 시선 (詩仙)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 김삿갓이십니까?"
김삿갓은 흠칫 놀랐다. 어떻게 이런 조그만 고을의 수령이 자기의 행장을 알고 있단 말인가.
"시선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그저 금강산에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허허허, 이거 무척 반갑소이다. 이건 분명히 하늘이 내리신 인연이외다.
내 김선비의 선성을 벌써부터 듣고 내심 부러워 하고 있던 참입니다."
사또는 김삿갓의 손을 덥썩 잡기까지 했다.
김삿갓은 일개 방백이지만 한